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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신뢰 붕괴한 대학 입시…공정사회는 공염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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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수시 축소·폐지론자들을 만나다

지난 7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0학년도 ‘수시 박람회’를 찾은 수험생과 학부모. [연합뉴스]

지난 7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0학년도 ‘수시 박람회’를 찾은 수험생과 학부모. [연합뉴스]

‘리얼미터’가 지난 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3.2%가 정시가 수시보다 ‘바람직하다’고 응답했다. 수시가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낸 사람은 22.5%였다. 대학생이 다수 포함된 20대 응답자 중에서는 ‘정시 바람직’ 이 72.5%로 압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대입 제도 전반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입시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는 점을 직시하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지난 4일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정시와 수시 비율을 조정하는 문제로 불평등과 특권의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기소개서나 학생부를 축소·단순화했는데, 그 부분을 더 보완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전반 재검토’ 주문했는데 #교육부 장관 ‘보완’ 언급하며 ‘항명’ #안선회 교수 “자칭 교육진보진영이 #현실과 사실 왜곡하며 수시 옹호”

대통령은 ‘입시 전반 재검토’를 명령했는데, 주무 장관은 3일 만에 ‘보완’을 얘기했다. 일종의 ‘항명’으로도 볼 수 있다. 현 정부 출범 초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문 대통령이 “입시는 단순·공정하다고 국민이 느껴야 한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했음에도 교육부는 ‘공론화’라는 과정을 거친 뒤 2022학년도부터 정시를 30%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다. 공론화 참여인단에서 ‘정시 최소 45%’ 안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는데도 결론은 그랬다. 올해 대입의 수시·정시 비율은 77.3%대 22.7%다.

정시 확대론자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조국 사태’가 다시 불을 붙였고, 대통령 지시를 무시하는 듯한 교육부 장관의 태도가 부채질했다. 그 앞에는 숙명여고 쌍둥이 전교 1등 사건과 ‘SKY 캐슬’ 파동이 있었다. 화가 잔뜩 난 수시 축소·폐지론자들을 만났다.

수시 축소·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 왼쪽에서부터 안선회 중부대 기획처장, 박소영 ‘정시확대를 위한 학부모 모임’ 대표, 이종배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대표.

수시 축소·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 왼쪽에서부터 안선회 중부대 기획처장, 박소영 ‘정시확대를 위한 학부모 모임’ 대표, 이종배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대표.

안선회 중부대 기획처장. 그는 대입 제도에 관한 논문을 가장 많이(‘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기준) 쓴 교육학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활동 때문에 해직된 교사 출신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3월에 발표한 「대입제도 정책 결정과 정책집행 연계성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수시 확대로 인해 교육 불평등이 심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5·16년의 국가장학금 자료를 분석해 소득 9·10분위(기초생활수급∼10분위 중 최상위 2개 층) 가정 출신이 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포함한 서울의 주요 8개 대학 학생의 72.5%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는 수시가 ‘금수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역설한다.

수시가 정시보다 부모의 지위나 경제력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주장도 있다. 통계가 제시되기도 한다. 분석이 잘못된 것인가.
“‘고른기회’ 전형 합격자가 수시에 포함되기 때문에 그런 수치가 나온다. 지역 균형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전형 합격자가 전체 학생의 13%가량 된다. 그래서 수시가 저소득층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이는 분석이 나온다. 일종의 통계 오류다. 사회적 약자 선발 부분을 빼고 계산하면 수시가 상류층에 상당히 유리한 것으로 나타난다.”
정시 모집이 늘면 서울 강남, 특목·자사고 출신 학생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서울 강남, 특목·자사고 학생이 아닌 일반고 학생에게 유리하게 하려면 학교 교과성적을 똑같이 반영하는 ‘학생부 교과’ 전형을 확대해야 한다. 그런데 서울 주요 15개 대학은 7% 정도만 학생부 교과 전형으로 뽑고, 45% 정도를 ‘학생부 종합(학종)’ 전형으로 선발한다. 상위 8개 대학의 학종 비율은 더 높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수능은 단편적 지식을 평가하기 때문에 나쁜 시험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수능은 고급 사고력, 종합 사고력을 측정한다. 단편적 지식에 얽매이는 것은 오히려 고등학교의 중간·기말고사다. 수능보다 훨씬 수준 낮은 문제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이다. 대학생핵심역량평가(K-CESA) 결과를 보면 수능으로 입학한 학생이 학종으로 입학한 학생에 비해 종합 사고력이 뛰어나다. 학부모와 학생은 수행평가 점수나 학생부 비교과 기록의 공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수능을 통해 특권층이나 일부 부정한 교사·교수의 자녀가 부당한 방법으로 우수 대학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창의적 사고력 향상을 위해 수능에 논술·서술형 문항을 도입할 필요가 있기는 하다. 수능을 이렇게 바꾸려면 학교 교육을 먼저 정비해야 한다.”
공정성 면에서 정시가 낫다는 것에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는데, 도대체 왜 ‘진보’ 교육계에서는 이토록 정시 확대에 반대하나.
“자칭 ‘교육진보진영’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과거 대학 운동권 출신의 교사·교수 또는 전문가다. 기득권층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학종은 각 학교 내에서 평가한 성적과 교사가 부풀린 기록을 위주로 학생을 뽑기 때문에 교사의 교육 책무성 확인이 불가능하다. 반면, 수능은 교육성과가 객관적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교사들이 제대로 가르쳤는지 알 수 있다. 전교조는 이런 평가 지표가 나오는 것을 싫어한다. 학종은 학생 평가에서 교수들의 권한과 권력을 극대화한다. 전문 지식과 지위를 자기 자녀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들은 이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지 않는다.”
교육부가 대통령의 주문을 따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통령은 단순·공정을 강조했다. 그런데 교육부 최고위 관료들과 ‘진보 교육감’들은 이를 거부한다. 그 뒤에는 ‘교육진보진영’ 집단이 있다. 그들에게 교육 정책을 의존하다 보니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 명령을 무시하는 ‘하극상’ 사태까지 벌어진다. 지금의 교육부는 입시 제도를 개선할 능력과 의지가 없다. 대통령이 진정으로 개혁을 원한다면 국무총리실 등의 제3의 기관에 그 일을 맡겨야 한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정시확대를 위한 학부모 모임’의 박소영 대표. 재수해 정시로 대학에 간 큰 아이와 현재 고3 수험생인 둘째를 둔 학부형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정시 확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각종 토론회에 참석했다. 그가 주도하는 이 모임의 회원은 약 1300명이다. 박 대표는 “지난달 30일에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광화문에서 촛불 집회를 열었다. 그 뒤 대통령이 입시 개선을 언급해 ‘이젠 바뀌려나 보다’ 하고 기대했는데 교육부 장관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이 정권에 절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능에 사교육비가 많이 든다는 일부 교육단체의 주장은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1타 강사(최고 인기 강사) 강의를 50만원만 내면 1년 내내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는 세상이다. 아이들이 ID를 공유해 듣기도 하기 때문에 그 비용마저 줄일 수 있다. 학종 컨설팅 한 시간에 30만∼50만원이 든다. 컨설팅 한 차례로 끝나는 게 아니고 계속 관리를 받게 된다. 사교육비 부담은 주로 내신 때문이다. 학교별로 시험이 다르기 때문에 인터넷 강의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 사교육비 투입 효과를 뚜렷하게 보는 게 내신이다. 돈으로 수능 점수를 올리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수시를 극도로 불신했다. “조국 교수 딸 사례에서 보듯 수시에 낸 서류 검증을 대학이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아마 정부가 감사해서 허위·조작 서류를 내고 인기 대학에 합격한 사례를 찾는다면 당장 수천 건 이상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수능 성적도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아니냐”고 묻자 이렇게 반문했다. “그래도 수능 시험은 부모가 대신 쳐줄 수 없잖아요?”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의 이종배 대표. 사법시험 존치 운동을 하다 학부모들과 연계해 정시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조직된 이 모임 회원은 약 7200명이다. 그는 “조국 교수 딸 문제로 입시 신뢰가 완전히 붕괴했다. 대통령과 정부가 ‘공정’을 아무리 얘기해도 이제는 공염불이다”고 말했다. 그는 씁쓸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학생·청년들이 ‘세습’ 사회를 받아들이면서 현실에 체념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 망국의 길로 가는 것 아닌가.”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