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쏙] 셈 빠르다고 수학 잘하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초등학생 자녀를 둔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수학 공부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녀의 수학 학습을 위해 시간적, 심적, 물적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5~6학년생이 미리 중학교 수학 과정을 배우는 경우도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수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효율적인 결과로 이어지려면 수학 공부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 기계적 암기식 연산은 좁은 사고 낳아=12÷3을 열두 개의 어떤 대상을 세 등분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던 아이가 5÷3을 배우게 될 때 "다섯 개를 어떻게 삼등분할 수 있어요?"라는 의문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자연수의 개념을 더 넓게 파악하면서 동시에 분수(유리수)의 개념을 파악하는 단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이런 단계에서 개념 파악 없이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단순 반복적 문제 풀이만으로 넘어가게 되면, 이후에 등장하는 수 연산에서 좁은 사고에 머물게 되고 자율적, 창의적 사고와는 멀어지게 된다. 다양한 사칙연산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이 될 수 있는 지식을 빠뜨리고 나가는 꼴이다. 원리 파악 없이 진도를 나간 아이는 마치 테니스 경기에서 '백핸드 치기'를 못하는 사람이 오직 '포핸드 치기'만으로 공을 막아낼 때 느끼는 답답함과 무력함을 겪게 될 것이다.

◆ 단계적 과정에서 충분한 이해 필요=많은 학부모들은 수학적 개념 또는 원리를 파악하는 일이 어렵고 시간이 더 걸린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 배우는 수학 내용에 대해 개념 및 원리 이해가 안 된 상태에서 암기와 단순 반복학습만으로 성적 올리기에 급급하며, 또 이것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잘못된 생각이다. 수학은 단계적 과정을 거쳐야 하는 학문이므로 한 단계에서의 부실한 학습은 다음 단계에서 학습부진을 낳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수학적 사고의 힘)가 없어 언젠가는 멈추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이전 단계의 내용을 다시 학습해야 하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서두르는 것이 결코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아이의 자신감마저 상실할 수 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부실하게 건설된 고속도로가 초래하는 끔찍한 사고와 끝없는 보수공사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 원리 알면 수학의 재미가=그렇다면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 한 아이가 초등수학 내용에 대해 개념적.원리적 이해를 한다는 것은 그 아이의 '단계와 수준에 맞는 개념과 원리 이해'를 하도록 하는 것이기에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 아이의 수준이 향상된 후에 같은 수학 내용에 대하여 보다 깊고 폭넓은 개념과 원리 이해가 이루어지는데 밑거름이 되며, 오히려 수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데 길잡이가 된다. 즉 수학을 잘하고 재미있게 하고 싶으면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는 학습을 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아이의 단계와 수준에 맞는 개념.원리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다. 수학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기계적으로 암기하여 대입하는 식으로 수학을 한 사람들은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그래서 답답하고 재미없는 '수학 아닌 수학'을 한 경우이다. 수학과 물리 교사였던 솔제니친은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다. 그의 문학적 재능은 수학적 사고의 힘이 가져다 준 열매가 아닐까.

김성아 교수.동국대 사범교육대학 수학교육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