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하락 품목 비중, 7년새 2배…짙어지는 ‘D의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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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 구성 품목 중 전년 동기대비 가격이 하락한 품목의 비중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8월 소비자물가 등락률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디플레이션(경제 전반에 걸쳐 상품·서비스의 가격이 지속해서 하락하는 현상) 우려는 커지고 있다.

소비자물가 가격 하락 품목비율.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소비자물가 가격 하락 품목비율.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1~7월) 소비자물가를 구성하는 460개 품목 가운데 1년 전보다 가격이 하락한 품목의 비율은 29.8%(137개)다. 이는 7년 전인 2012년(16.2%)보다 2배 가까이 높은 것이다. 특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사상 최저치(-0.04%)를 기록한 올해 8월 한 달만 보면 전년 동기대비 상승률이 0% 미만인 품목 비율은 32.8%(151개)에 달했다.

정부는 국제유가·농산물 등 공급 측면의 요인이 일시적으로 물가하락을 주도했다고 설명했지만, 경기둔화에 따른 수요부진도 저물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국내외 주요 경제전망기관은 한국이 올해 사실상 1%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에 무게를 두고 있고, 수출이 지난해 12월부터 9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는 등 경기 부진의 징후가 물가 하락과 함께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소비자물가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국은행을 비롯한 물가 관련 당국은 근원물가 하락 품목의 비율이 제한적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비율이 상승 추세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디플레이션 징후는 짙어지고 있다. 농산물·석유류 등 계절적 요인을 제외한 '근원물가'가 소비자물가와 비슷한 추세를 보이는 것도 그렇다. 총 407개 근원물가 구성 품목 중 가격이 하락한 품목의 비율은 2012년(15.4%)에서 올해 1~7월(27.1%)까지 상승 흐름을 보였다. 특히 민간분야 성장에 대한 우려가 본격화한 2018년에 증가 폭(22.1%→26.2%)이 크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화 강세 등 요인에 따라 수입물가가 떨어지는 현상과는 정반대 상황”이라며 “경제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디플레이션이 사실상 진행 중인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상황도 낙관하기 어렵다. 한은이 지난 7월 경제전망에서 국내총생산(GDP) 갭률이 올해와 내년 중 마이너스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GDP 갭률은 경기과열·침체를 판단하는 척도로, 마이너스일 경우 경기 침체로 해석한다. 특히 GDP 갭률은 국제유가·환율 등 다른 물가 요인보다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디플레이션에 가까운 상황이 지속하면 세수확보가 어렵고 기업도 수입이 감소한다”며 “재정·통화정책 등을 전방위적으로 완화하는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세종=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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