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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매 사교육이 34개···MBC '공부가 머니?'가 위험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MBC '공부가 머니?'. 탤런트 임호의 유치원생 두 아들이 일요일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다. [방송캡처]

MBC '공부가 머니?'. 탤런트 임호의 유치원생 두 아들이 일요일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다. [방송캡처]

MBC ‘공부가 머니?’ 파일럿 방송이 끝났다. 지난달 22일과 29일 두 차례 방송된 ‘공부가 머니?’는 각각 시청률 4.1%, 4.3%(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마무리됐다. MBC의 대표적인 스타 PD 김태호 PD의 새 예능 ‘놀면 뭐하니?’ 의 시청률(31일 6회 방송 3.6%)을 웃도는 수준이니, 파일럿 프로그램으로선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MBC는 “파일럿 단 2회 만에 2049 시청률이 지상파ㆍ케이블ㆍ종편을 모두 합쳐 정상을 차지했다”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고, “정규 편성되면 사교육 사각지대 혹은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해 공교육과 IT를 활용한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제작진의 포부까지 밝혔다.
하지만 ‘공부가 머니?’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사교육 열풍을 흥밋거리로 다루며 일반적인 시청자들에게까지 불안감을 불어넣는다는 면에서 정규편성돼선 안되는 프로그램이다. ‘공영방송’을 앞세운 MBC에서 방송하기엔 더욱이 부적합하다.

MBC '공부가 머니?'에 출연한 탤런트 임호의 아홉 살 딸. 학습지 교사와 공부하고 있는 모습이다. 초등 2학년 스케줄엔 저녁식사 할 시간도 제대로 없다. [방송캡처]

MBC '공부가 머니?'에 출연한 탤런트 임호의 아홉 살 딸. 학습지 교사와 공부하고 있는 모습이다. 초등 2학년 스케줄엔 저녁식사 할 시간도 제대로 없다. [방송캡처]

숙제 지친 일곱 살 가출해도 "엉덩이 힘 중요" 강조 #5세 아이 두고 "또래보다 수준 높도록 선행시키라"

MBC '공부가 머니?'에서 탤런트 임호의 일곱 살 아들이 숙제를 하다 지쳐 방바닥에 누워있다. [방송캡처]

MBC '공부가 머니?'에서 탤런트 임호의 일곱 살 아들이 숙제를 하다 지쳐 방바닥에 누워있다. [방송캡처]

‘교육비는 반으로 줄이고, 교육 효과는 배 이상 높이는 에듀 버라이어티 관찰 예능’을 표방하고 나선 ‘공부가 머니?’는 유명인들의 자녀 교육 컨설팅 형식으로 진행됐다. 1회 방송의 의뢰인은 대치동에서 삼 남매를 키우고 있는 탤런트 임호 부부였다. 1주일 동안 9살, 7살, 6살인 삼 남매가 받는 사교육은 무려 34개. 초등 2학년인 첫째뿐 아니라, 아직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ㆍ셋째까지 일요일은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해야 했다. 쉼 없이 계속되는 사교육 스케줄 때문에 밥 먹을 시간도 제대로 없어 저녁식사를 여러 번에 나눠 먹어야 했고, 취침 시간이 밤 12시를 넘기기도 했다. 또 일요일에 유치원생 두 아들의 방에서 웃으며 노는 소리가 들리자 “신발 신고 나가”라는 엄마의 호통이 이어졌다. 일곱 살 아들은 “엄마 나빠”라며 눈물을 보였고 결국 집까지 나갔지만, 부모 모두가 수학 문제 하나 더 풀리는 데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극단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진행자인 신동엽과 유진은 “우리집도 똑같은 상황인데 하시는 분 많을 것”이라며 보편적인 상황인 양 분위기를 몰아갔다.

MBC '공부가 머니?'에서 교육컨설턴트 최성현씨를 소개하는 장면. 자녀의 입시 이력이 엄마의 이력이 되는 세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방송캡처]

MBC '공부가 머니?'에서 교육컨설턴트 최성현씨를 소개하는 장면. 자녀의 입시 이력이 엄마의 이력이 되는 세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방송캡처]

이들 가족에게 진동섭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 등으로 구성된 ‘교육 전문가 군단’이 솔루션을 제시했지만 이들의 해법 역시 ‘미친 사교육 열풍’ 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교육 컨설턴트’라고 신분을 밝힌 최성현씨의 조언은 특히 위험했다. 방송은 최씨를 소개하며 “자녀의 이력이 대단하다. 스카이는 물론, 포항공대ㆍ카이스트까지 총 5개 대학 수시에 모두 합격한 수재를 키운 어머니”라고 했다. “(교육 포트폴리오를 얻으려는 엄마들 때문에) 커피를 내 돈 내고 마셔본 적이 없다”는 최씨의 발언엔 거침이 없었다.
아이들과의 갈등이 불거지자 삼 남매의 엄마는 “이렇게 안 하면 꼭 뭘 못하는 것 같고 그런 불안감에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반복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며 갈등했다. 하지만 최씨는 “나는 더 나쁜 엄마였지만 지금 아이들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다. 아이들이 오히려 더 고마워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온 거에 대해 굉장히 감사의 표시를 한다”며 ‘엄마 주도 학습’의 자부심을 내비쳤다.

MBC '공부가 머니?'에서 교육컨설턴트 최성현씨가 '엉덩이 힘'을 강조하고 있다. [방송캡처]

MBC '공부가 머니?'에서 교육컨설턴트 최성현씨가 '엉덩이 힘'을 강조하고 있다. [방송캡처]

탤런트 임호의 일곱살 아들이 억지로 숙제를 하며 일부러 틀린 답을 쓰는 이상행동을 보이는데도 “저 엉덩이 힘밖에는 믿을 게 없다”고 했다. 상상력ㆍ창의력이 중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 사칙연산을 하는 힘이 정말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프로그램 말미 해법으로 나온 방안은 34개 사교육을 11개로 줄이는 것이었다. 대신 연산 공부는 엄마가 맡기로 했고, 토요일마다 했던 숲 체험은 엄마와 함께 하는 역사 탐방으로 바뀌었다. 교육컨설턴트 최씨는 “숲 체험은 뭐를 얻어오는 게 아니라 그냥 휴식이지 않냐. 차라리 어머니가 데리고 역사체험을 가라. 선사시대 경기도 연천 전곡리부터 시작해 조선의 경복궁까지 오면 답이 나온다”고 했다. 또 “일요일엔 아빠와 함께 역사 체험북을 만드는 시간을 가지라”니, 모든 것이 학습으로 연결되는 스케줄은 여전했다.

2회 방송에선 전 마라토너 이봉주의 고1 아들과 MC 유진의 다섯 살 딸에 대한 상담이 이어졌다. 1회만큼은 아니지만 자극적인 설정과 황당한 조언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손정선 아동심리전문가가 유진에게 한 조언은 충격적이었다. “딸 로희에게 꼭 선행을 시키라”면서 “로희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다. 어디를 가든 또래들과 비교한다. 이왕이면 가서 잘난 척하고 더 신나서 잘하면 좋지 않냐. 주위 또래의 평균 수준보다 높게 만들면 로희가 알아서 성취감을 느끼면서 잘할 수 있다”고 했다. 모든 부모들이 그런 생각으로 선행을 시키다보니 1회에서 삼남매 엄마가 말한 대로 “초등 2학년이 6학년 수학을 끝내고 중학교 과정까지 하는” 상황이 빚어진 게 아닐까. 온라인 카페 ‘레몬테라스’ 등에 “저런 아이들과 경쟁해야 할텐데… 방송을 보고나니 더 불안해진다” “잘못 지적해주는 척하면서 은근히 사교육 분위기 조장한다” 는 글이 줄을 잇는 게 당연해 보였다.

MBC '공부가 머니?'에서 손정선 아동심리전문가가 MC 유진에게 "꼭 선행을 시키라"고 조언하고 있다 . [방송캡처]

MBC '공부가 머니?'에서 손정선 아동심리전문가가 MC 유진에게 "꼭 선행을 시키라"고 조언하고 있다 . [방송캡처]

‘공부가 머니?’의 이런 자극적인 설정은 지난 7월 종영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와 일맥상통한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며느리 불러 자기 딸 집 화장실 청소를 시키는 시어머니 등의 사례를 보여주며 왜곡된 고부관계 상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물론 현실을 고발하고 이를 바로잡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자극적인 소재 전파의 부작용을 낳았다. 심각한 문제 상황을 웃겨야 하는 ‘예능’으로 처리한 것도 프로그램의 한계였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대해 역사학자인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남녀 갈등을 조장하고 분노할 ‘거리’를 제공하는 문화 콘텐트”라고 진단한 바 있다. 당시 전 교수는 “이런 콘텐트들이 범람함으로써 실제 성차별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내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한다. 이는 우리 사회 젠더 갈등을 일으키고 혐오 범죄로 이어질 우려까지 있다”고 짚었다.웃자고 만든 예능 프로그램이 사회 병리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폐해는 ‘공부가 머니?’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하지만 화제성이 높아 시청률은 보장될 터다. 이는 욕하면서도 보는 막장 드라마와 뭐가 다를까. 아니, 가상 현실이 아닌 실제 현실에서 막장을 펼친다는 점에서 훨씬 더 위험하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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