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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던 노트북을 파격세일 득템! 마케팅에 당한 걸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경랑의 4050세일즈법(16)

가성비에 가심비까지 따져 노트북을 구매한 A씨, 친절한 직원의 상담을 받고 노트북을 선택한 B씨, 두 사람 모두 만족스럽게 매장을 빠져나왔지만 그 만족의 '크기'와 '수준'은 조금 다르다. [사진 pexels]

가성비에 가심비까지 따져 노트북을 구매한 A씨, 친절한 직원의 상담을 받고 노트북을 선택한 B씨, 두 사람 모두 만족스럽게 매장을 빠져나왔지만 그 만족의 '크기'와 '수준'은 조금 다르다. [사진 pexels]

1년이 넘게 노트북이 말썽을 피워 바꾸고 싶었던 A씨. 마침 쇼핑센터에서 식사하고, 다음 약속까지 시간이 남아 대형 전자제품 판매점에 들어갔다. 평소 구매 후기도 꼼꼼히 보고, 가성비에 가심비까지 따져가며 쇼핑하는 A씨이지만 노트북만큼은 어렵다.

금액도 크고, 이것저것 따져야 할 것도 많지만 노트북을 어떤 기준으로 사야 할지 자신이 없는 상태. 그래서 나름 브랜드를 정하고, 최신 사양은 가격에 거품이 낄 가능성이 크니 작년 모델 정도로 하자는 전략도 세웠다.

이것저것 구경하던 중에 친구가 얼마 전 자랑했던 제품이 눈에 들어왔다. ‘파격 세일’이라는 반가운 문구와 함께 디자인도 좋고, 가격도 적당하고, 아주 최신 사양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핸드폰으로 슬쩍 검색하니 카드 구매 프로모션까지 적용하면 꽤 괜찮은 조건! 몇 가지 조건만 더 확인하고 구매를 결정하니 미루던 숙제를 해결하게 돼 직원들도 좋아하는 눈치다. A씨는 역시 스스로 좋은 결정을 한 현명한 소비자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노트북을 매일 사용하는 B씨도 오늘 노트북을 샀다. 노트북을 알아보러 매장을 방문해 친절하게 인사하는 직원에게 자세한 상담을 받았다. 해당 직원은 B씨에게 노트북을 어떤 용도로 얼마나 자주 활용하는지 묻고, 기존 사용 노트북의 사양과 불편과 만족 여부, 사용 기간 등도 확인했다.

B씨는 궁금한 것은 질문해 해결하면서 어떤 노트북이 좋을지 판단할 수 있었다. 덕분에 자신에게 꼭 맞는 제품의 사양과 구매 조건으로 노트북을 샀다. B씨 역시 A씨처럼 기분 좋은 구매를 하였고, 만족스럽게 매장을 빠져나왔다.

마케팅과 영업의 차이 

마케팅이든 영업이든 가치있고, 고객 지향적이며,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사진 pxhere]

마케팅이든 영업이든 가치있고, 고객 지향적이며,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사진 pxhere]

여러분이 혹 최근에 노트북을 샀다면 A씨와 B씨 중 어떤 스타일로 샀을까? A, B 모두 만족스러운 구매라는 결과에 도달했지만 나는 A와 B의 만족에는 ‘크기’와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A씨의 만족감은 정해진 기준, 즉 다양한 광고, 주변 지인의 사용 만족도, 가격 할인 정책과 프로모션 등에 영향을 받아 설정된 프레임 속에서 현명한 판단을 했다는 것일 것이다.

B는 좀 다르다. 본인은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잘 모른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판매자의 설명에 도움을 받아 그 과정에서 자신의 요구사항과 필요를 잘 정리해 판단했다. 아마 이제까지 몰랐던 노트북의 성능, 사용 기한, 자신이 추가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을 확인했을 수도 있다. 공장에서 찍어나오는 제품 중 하나지만 마치 ‘나를 위해 탄생한 듯’한 제품과 만났으니 만족감이 다르지 않을까?

좀 극단적으로 비교해보면 이렇다. A는 무의식적으로 관여된 ‘마케팅’에 당했고, B는 의도되고 당연한 절차인 ‘영업’에 당했다. 둘 다 만족했으니 ‘당했다’라는 뉘앙스가 적절하지 않지만, 실은 현실에서 자주 사용하는 언어라 한번 붙여본다.

결국 소비자인 ‘내’가 판단하지만 그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 하나는 마케팅, 하나는 영업 또는 세일즈라고 간결하게 정리해 보자. 마케팅에 의해 결정되고 싶은가? 아니면 영업에 의해 결정되고 싶은가?

우문이다. 왜냐하면 마케팅이든 영업이든 가치 있고, 고객 지향적이며,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만 된다. 그런데 마케팅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영업은 바로 ‘나’라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분명 큰 차이가 있다. B에게 자세한 상담을 했던 직원은 사실 실제 매장에서 자주 만나기 어려운 캐릭터다.

대개는 간단한 제품 설명 등과 함께 고객의 질문에 대답하는 직원이 다수다. 여기에 고객을 존중하며,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질문을 통해 전문가로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페셔널 세일즈 과정이 대입되면(사실 시간도, 에너지도 아주 많이 드는 것은 아니다. 준비만 잘 되어 있다면) 최고 수준의 영업을 하게 돼 고객을 만족시키게 된다.

가격 전략, 홍보와 마케팅, 프로모션과 화려한 포장 등 세상의 많은 제품은 서로 자신을 봐달라고 마케팅을 펼친다. TV 드라마에서도, 인터넷 블로그에서도 다양한 정보와 영향력이 넘쳐 난다. 나도 모르게 그 정보의 영향력 속에서 제품 구입의 방향이 정해지고, 한순간 나의 감정과 과거의 경험이 합쳐져 의사결정 과정이 진행된다. 쉴새 없이 마케팅의 소리 없는 공격에 노출된 셈이다.

21세기 세일즈는 풍요속의 빈곤에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수많은 제품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제공한다. [사진 pixabay]

21세기 세일즈는 풍요속의 빈곤에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수많은 제품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제공한다. [사진 pixabay]

영업, 세일즈는 어떠한가? 내가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누군가의 설명을 직접 듣고, 그의 질문에, 혹은 나의 질문에 서로 간의 대화가 구성된다. 그의 설명과 상담의 수준·방법·느낌 등이 나에게 다가온다.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도움이 되기도 하고,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야말로 ‘나’의 직접적인 경험이다.

소비자로서의 ‘나’는 기업의 많은 활동에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물건값에는 마케팅 비용이 녹아있고, 세일즈맨의 노고에 대한 값도 당연히 들어 있다. 그렇다면 무의식적인 혹은 의식적인 마케팅 때문에 혼자 쓸쓸히 결정하고, 그 판매자의 권유는 듣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왠지 좀 아깝지 않은가?

마케팅은 대중을 대상으로, 영업은 ‘나’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인간관계의 피로도가 높은 현대 사회에서 그래서 ‘영업’은 더 피곤한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그래서 더 영업의 수준이 높아져야 하고 소비자인 우리도 영업이 주는 만족감을 제대로 느껴야만 한다.

영업, 가치 찾고 만족 얻는 과정

21세기 세일즈는 풍요 속의 빈곤에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수많은 제품이 ‘스스로 결정’하라고 엄청난 양의 자세한 정보를 내놓고 있다. 제품의 가치를 고객이 스스로 판단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시대다. 조언하기보다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조언을 구하기보다, 어디 새로운 정보가 없나 탐험하는 시대다. 제품도, 정보도 최대의 풍요로움을 보여주지만 그래서 더 빈곤하다. 가치를 찾고 만족을 얻는 과정이 자주 생략되기 때문이다.

가끔 마트보다 재래시장이 좋고, 디지털 음원보다 잡음이 섞인 LP 음반이 그리운 이유가 무엇일까? 하루에도 몇 번의 구입을 결정하는 소비자에게 좀 더 만족스러운 영업 과정을 제공하는 기업은 어디일까?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 서비스뿐 아니라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임을 소리높여 광고만 하는 데 그치지 말고 고객과 만나는 현장에서 직접 실천해 주면 좋겠다.

영업을 당할 기회가 있으면 한번 당해보자. 나의 의도와 필요, 나의 상황과 욕구를 잘 이해하고자 하는 세일즈맨이라면 그와의 대화 속에서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 제품의 가치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기왕 사는 물건이라면 그 물건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때 같은 값에 만족이 더 커지는 ‘가심비’를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경랑 SP&S 컨설팅 공동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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