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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민의 시선

조국 vs 최순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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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정민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민 논설위원

이정민 논설위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추락은 극적이다. 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그는 ‘죽창가’를 띄우며 국정의 제1선을 자처했던 ‘기대주’였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뉴스의 초점이 됐고, 그가 핏발 선 트윗 글을 올릴 때마다 정국은 출렁댔다. 2년3개월간의 민정수석 재임에 이어 곧바로 장관 티켓을 거머쥔 것은 신기(神技)에 가깝다. 입시·사학 비리, 추잡한 ‘머니 게임’ 의혹까지 ‘비리 백화점’을 연상시킬 정도인데 어떻게 까다로운 검증의 문턱을 넘었는지 놀라울 뿐이다. ‘셀프 검증’이란 뒷말이 무성한 이유다.

공정·정의 핵심가치 망가졌는데 #‘밀리면 끝’이란 인식은 안이한 것 #문, 조국과 결별해 불행 막아야

이 정부 들어 내내 공석으로 방치돼 온 특별감찰관의 부재가 뼈아프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게다. 특별감찰관제는 권력 내부의 상호 견제 수단이다. 대통령 배우자와 친족, 청와대 실장·수석이 감찰 대상이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최순실이 연루된 미르·K스포츠재단 사건의 내사에 착수하면서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과 갈등을 빚었던 건 알려진 대로다. 돌이켜보면 특별감찰관의 견제 없는 민정수석실은 조국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조국은 개혁 카드를 선점했다. 이 말은 정권의 입장에서 그를 내치는게 쉽지 않다는 얘기도 된다. 검찰의 압수수색과 가족들에 대한 출국금지가 내려지자 그가 보인 반응은 “저와 제 가족이 고통스럽다 해서 내가 짊어진 짐을 함부로 내려놓을 수 없다”였다. 일반의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는 이 말에서, 그의 강한 권력 집착을 엿볼 수 있다.

조국의 원대한 꿈은 그러나 물거품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자신의 모교이자 직장인 서울대의 후배, 제자들로부터도 거센 퇴진 압박을 받는 처지가 됐다. 서울대·부산대와 사모펀드 코링크PE 등 20여 곳에 대한 압수수색과 함께 시작된 검찰의 전방위 수사는 그가 언제든 ‘피의자’ 신분이 될 수 있다는걸 말해준다. 만약 그가 법무부 수장이 된다면, 자신이 관할하는 검찰로부터 수사를 받는 ‘블랙 코미디’가 펼쳐질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이미 국민의 마음으로부터 탄핵됐다. 부패·독재 권력과의 오랜 투쟁과 저항 과정에서 길러진 국민들의 발달된 ‘촉(觸)’은 이미 그걸 직감한다. 거리에 나붙은 “NO 조국. 시험치지 않습니다. 공부하지 않습니다. 학비 내지 않습니다. 우리 아빠는 조국입니다”라는 조롱섞인 플랭카드는 “이건 나라냐”의 다른 버전이다. ‘돈도 실력이야. 너희 부모를 원망해’라는 정유라에 분노해 촛불을 들었든 손들은 2주간의 고교생 신분 인턴십으로 의학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되고, 두번의 유급에도 1200만원의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절망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터뷰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줄 잘 서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부와 권력을 누렸던 게 관행화되고 일상화되면서 정의가 실종된 거죠. 그게 극단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 박근혜 게이트고요. 반칙이나 특권을 통해 이익을 보고 혜택을 누리면 결국 심판받는다는 걸 이제 분명히 보여줘야 합니다.”

어떤 것과도 맞바꿀 수 없고 희생될 수 없는게 핵심 가치다. 지금 이 정권이 핵심 가치로 내세운 평등·공정·정의가 송두리째 망가지고 부정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걸 뻔히 목격하면서도 침묵하고 있는 집권 세력의 대응이 어리둥절할 뿐이다. ‘내로남불’이 습관화돼 눈앞에 닥친 위기조차 체감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학생운동권 수준 집단 사고의 발동인가.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이다. ‘박근혜 탄핵’을 부른 촛불 쓰나미도 정유라의 학점 특혜 의혹이라는 작은 불씨에서 발화된 것임을 상기한다면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의 불행은 경고음을 무시한 독선과 자만, 불통 때문이었다. 최순실과의 결별을 주문하는 경고음을 무시하고 오히려 ‘40년 지기’라며 감싸고 돌았다. 정권 2년차에 불거진 ‘십상시 문건’ 파동을 ‘지라시’로 깔아뭉개고 배석한 장관들을 돌아보며 “대면보고가 필요하세요”라고 한 불통의 정치에서 불행은 잉태되고 있었지만, 이미 고장난 ‘청와대 독주’ 열차를 멈춰세우지 못했다. 그 혹독한 대가가 어제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문에 나와있다.

문재인 정부가 조국 후보자와 결별할 것을 주문하는 경고음이 지금 사방에서 울리고 있다. ‘조국의 실패’는 표리부동한 그 한사람의 실패로 끝나야 더 큰 불행을 막을 수 있다는 경고음이다. 듣지 못한다면 큰 일이다. 조국이 제2의 최순실이 될 것인가, 대한민국이 지금 그 기로에 서있다.

이정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