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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아이를 한 공간에…야생동물카페 사람도, 동물도 위험”

중앙일보

입력

야생동물 카페 한가운데서 잠을 청하는 라쿤을 어린이 3명이 만지고 있다. 휴메인벳 최태규 대표는 "자는 동물을 만질 수 있게 하는 건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어웨어, 휴메인벳 제공]

야생동물 카페 한가운데서 잠을 청하는 라쿤을 어린이 3명이 만지고 있다. 휴메인벳 최태규 대표는 "자는 동물을 만질 수 있게 하는 건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어웨어, 휴메인벳 제공]

전국적으로 야생동물 카페가 늘고 있지만, 관리는 여전히 부실한 것으로 조사됐다. 동물복지단체들은 질병 감염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와 수의사단체 휴메인벳은 29일 오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2019 전국 야생동물 카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이 파악한 전국의 야생동물 카페는 64개 업소로, 2017년의 35개보다 약 2배로 늘었다. 라쿤, 개가 대부분이던 2년 전보다 왈라비, 코아티, 앵무새 등 종이 다양해졌고, 은여우·북극여우·자칼을 취급하는 곳도 있었다. 이들은 이 중 12개의 동물카페를 3회 이상 방문해 조사했다.

육식성인 여우의 활동공간 안에 들어가 여우를 관찰하는 어린이들. [어웨어, 휴메인벳 제공]

육식성인 여우의 활동공간 안에 들어가 여우를 관찰하는 어린이들. [어웨어, 휴메인벳 제공]

"동물과 사람, 공간 분리 제대로 안 돼" 

케이지 안에 넣어져 관찰대상이 된 라쿤들. [어웨어, 휴메인벳 제공]

케이지 안에 넣어져 관찰대상이 된 라쿤들. [어웨어, 휴메인벳 제공]

식품위생법상 동물이 있는 구역과 사람이 있는 음료 섭취 구역을 완전히 분리해야 하지만 카페 안에서는 이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휴메인벳 최태규 대표(수의사)는 “라쿤이나 제넥고양이 등 점프력이 뛰어난 동물은 칸막이를 뛰어넘어 음료 만드는 곳까지 들락날락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육식동물이자 포식동물인 여우의 활동공간에 어린이들이 들어가서 함께 있는 등 공간 분리가 제대로 안 돼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위험하고 해로운 환경이 다수였다”고 말했다.

정형 행동(스트레스를 받은 동물이 보이는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행동)도 12개 업소 중 8개 업소에서 발견됐다. 최 대표는 “대부분의 공간에 숨을 곳이 없어, 라쿤이 쓰레기통에 머리를 박고 숨거나 아예 다 보이는 곳에서 할 수 없이 잠을 자기도 한다”며 “숨을 곳뿐만 아니라 동물의 본능적인 특성을 하나도 배려하지 않은 환경에서는 이상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8개 업소에서는 공격성을 나타내거나 컨트롤이 힘든 동물, 어려서 활동량이 큰 동물 등을 케이지(우리)에 넣어뒀다”며 “케이지에서 나갈 수 없는 좌절, 지루함, 답답함 때문에 공격성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땅을 차며 닳아야 할 왈라비의 발톱이 닳지 않아 길게 자란 모습. 주기적으로 깎아줘야 하지만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어웨어, 휴메인벳 제공]

땅을 차며 닳아야 할 왈라비의 발톱이 닳지 않아 길게 자란 모습. 주기적으로 깎아줘야 하지만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어웨어, 휴메인벳 제공]

캥거루과 동물인 왈라비는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행동을 하는 동물인데, 매끄러운 바닥에서는 뛸 수가 없어 엉거주춤 걸어 다녔다. 땅을 박차면서 자연스럽게 갈려야 할 발톱이 길게 자라기 때문에 별도로 잘라줘야 하지만, 관리하지 않아 길게 발톱이 자란 왈라비도 많았다.

유리장 안의 분양용 새끼 라쿤들(맨 오른쪽은 털 색이 흰 라쿤이다). 온도조절, 환기가 되지 않아 장 안에 김이 끼어있고, 물을 마실 수 있는 장치도 없이 텅 빈 유리장 안에 들어있다. [어웨어, 휴메인벳 제공]

유리장 안의 분양용 새끼 라쿤들(맨 오른쪽은 털 색이 흰 라쿤이다). 온도조절, 환기가 되지 않아 장 안에 김이 끼어있고, 물을 마실 수 있는 장치도 없이 텅 빈 유리장 안에 들어있다. [어웨어, 휴메인벳 제공]

현재 야생동물을 취급하는 업소에 대한 관리규정을 강화하는 야생생물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어린 동물들, 임신한 동물 등 전시에 적절하지 않은 동물도 판매용으로 진열된 경우가 있었고, 심지어 인터넷으로 버젓이 야생동물을 판매하고 있었다”며 “규정 미비로 2년 동안 미적거린 탓에 동물들의 복지는 더 나빠졌다”고 말했다.

“신종 바이러스 감염 우려”

라쿤들이 유리문 앞에서 서성이는 모습. 문을 여닫는 과정에서 끼여 다칠 수도 있고, 문이 열린 틈을 타 탈출해 유기 야생동물이 될 우려도 있다. [어웨어, 휴메인벳 제공]

라쿤들이 유리문 앞에서 서성이는 모습. 문을 여닫는 과정에서 끼여 다칠 수도 있고, 문이 열린 틈을 타 탈출해 유기 야생동물이 될 우려도 있다. [어웨어, 휴메인벳 제공]

동물복지단체들은 야생동물이 옮길 수 있는 신종 감염병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최 대표는 “말레이시아에서 과일박쥐의 ‘니파바이러스’가 돼지를 통해 사람에게 감염돼 100여명이 사망한 뒤, ‘과일박쥐가 있는 곳에 돼지를 키우지 말라’는 규정이 생겼다”며 “우리나라에선 과일박쥐가 사람과 직접 접촉하고 있는데, 언제 어떤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직접 전달될지 모르는 공중보건학적으로도 위험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검역장에서 수입 동물을 5일 동안 관찰한 뒤 증상이 없으면 통과시킨다. 최 대표는 “증상이 없는 것만 확인할 뿐, 모든 바이러스를 검사한 게 아니기 때문에 무분별한 사람 접촉은 일단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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