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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고이즈미의 구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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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베(51)는 일본의 젊은 세대를 상징한다. 흔히 '고이즈미의 아이들(고이즈미가 발탁하거나 길러낸 신인 정치인 집단)'의 황태자로 불리는 그는 TV 출연을 즐기고 고이즈미처럼 직설 화법을 구사한다.

반면 후쿠다(70)는 일본의 구세대를 상징한다. 그는 TV 스튜디오보다 문을 걸어 잠그고 동료와 밀담을 나누는 데 익숙하다. 도쿄의 한 미국인 관측통은 "후쿠다는 세련됐으며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다. 특정 이데올로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달변가는 아니다"라고 평했다.

아베와 후쿠다의 경쟁은 단순히 인물 대결이 아니다. 두 사람은 각자 일본의 보수적 현실주의 진영과 국가주의 진영을 대표한다.

후쿠다로 상징되는 현실주의 진영은 중국이 급부상하는 마당에 일본이 지금처럼 아시아에서 고립돼 가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또 이들은 일본이 한.중과 긴장 관계에 있는 것을 우려한다. 이런 맥락에서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비판적이다. 또 일본이 지금처럼 이란과 이라크 문제를 놓고 미국의 부시 행정부를 추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베로 상징되는 국가주의 진영은 중국을 일본 안보를 위협하는 1차적 위협 세력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미국은 가장 소중한 존재다. 이런 이유로 중.일 관계와 한.일 관계를 희생하더라도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중국의 야스쿠니 관련 비난을 '겁주기'로 간주하고 이를 무시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현실주의자와 국가주의 진영 모두 미.일 동맹이 일본 외교안보의 핵심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아베와 후쿠다는 야스쿠니 참배, 아시아 정책, 북한 문제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우선 야스쿠니 참배와 관련, 후쿠다는 A급 전범 14명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분리하고 새로운 국립묘지를 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후쿠다는 5월 "야스쿠니를 둘러싼 일본 내 논의가 즉각 한국.중국에 전달돼 상황이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며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도 야스쿠니 참배가 문제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중국은 너무 고압적이다. 만일 일본이 이 문제에서 밀리면 다른 분야에서도 밀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야스쿠니 참배를 계속할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한.일 관계와 중.일 관계,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다른 시각이다. 후쿠다는 한.중.일의 경제 통합을 강조한다. 그는 3월에 서울을 방문,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반면 아베는 부시 행정부를 본받아 인도.호주 같은 아시아 민주국가와 전략적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배경에는 아시아 민주국가들이 힘을 합쳐 중국에 대항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이며, 일본 평화헌법은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후쿠다는 북한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는 쪽을 선호한다. 또 일본이 헌법 개정 문제를 지나치게 서두를 경우, 한.중 같은 인접국들에 나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쿠다와 아베 두 사람 중 누가 차기 총리가 되느냐에 따라 일본 현대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될 전망이다.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선임연구원

정리=최원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