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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은 이제 페트렌코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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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베를린 필하모닉 취임 공연을 마친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 [사진 Stephan Rabold, 베를린필]

23일(현지시간) 베를린 필하모닉 취임 공연을 마친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 [사진 Stephan Rabold, 베를린필]

 “베를린필의 카라얀 사운드가 돌아올 듯하다.” 독일의 미디어인 도이치 벨레가 쓴 표현이다. 23일(현지시간) 저녁 베를린 필하모니 홀에서는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47)의 공연이 있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12대 상임 지휘자로 임기를 시작하는 첫 무대였다. 페트렌코는 20세기 작품인 베르크 ‘룰루’ 모음곡과 베토벤 합창 교향곡으로 신고식을 치렀다.

베를린필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 취임 연주

취임 연주의 베토벤 '합창' 교향곡을 함께 한 페트렌코와 베이스 연광철(오른쪽) [사진 Stephan Rabold,베를린필]

취임 연주의 베토벤 '합창' 교향곡을 함께 한 페트렌코와 베이스 연광철(오른쪽) [사진 Stephan Rabold,베를린필]

온라인을 통해 생중계 된 이날 연주의 특징은 흠결 없는 사운드였다. 베를린 필의 팀파니 주자인 라이너 지게르스는 “우리 오케스트라 특유의 무결점 사운드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카라얀 시대의 베를린 필이 돌아온 듯했다. 아마 이것이 페트렌코의 취임 계획이자 바람일 것”이라고 독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9대 상임 지휘자로 1954년부터 35년 동안 베를린 필에 머물렀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매끄러운 사운드로 이해 가능한 음악을 빚어내 청중의 사랑을 받았던 지휘자다. 베를린 필의 비올리스트인 미국인 매튜 헌터도 “베를린 필의 특징적인 소리가 돌아온 듯하다”고 했다.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지휘자 페트렌코. [사진 Stephan Rabold, 베를린필]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지휘자 페트렌코. [사진 Stephan Rabold, 베를린필]

페트렌코가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로 선정된 것은 4년 전이다. 러시아 태생의 오스트리아인이며 베를린 필과 자주 무대에 서지 않았던 페트렌코는 단원들의 투표에서 상임 지휘자로 낙점됐다. 언론에 잘 나서지 않고 오페라를 주로 지휘했던 페트렌코의 선임은 의외의 결과였다. 페트렌코는 18세에 러시아에서 오스트리아로 옮겨왔고 빈에서 경력을 시작해 독일 마이닝겐 극장, 베를린 코미셰 오퍼의 음악 감독으로 일했다. 또 2013년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음악 감독을 맡아 2020년까지인 임기를 채우는 중이다. 2017년 내한 무대에 페트렌코와 함께 했던 악단도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였다.

이번 취임 연주에 앞서 “무대에서 겸손한 자세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시험해보겠다”고 했듯 페트렌코는 카라얀과 같은 스타성보다 성실성으로 대표되는 지휘자다. 23일 베토벤 합창 교향곡을 지휘한 페트렌코는 작품의 전체 구조와 세부적 표현 모두에서 놓치는 것 없이 음악을 이끌어갔다. 자신의 지휘 스타일대로 무리 없는 해석 안에 세밀한 완벽함을 더해 청중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페트렌코와 베를린 필은 취임 연주 다음 날인 24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에서도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연주했다. 2만명 넘는 시민이 무료로 취임 연주를 지켜본 것은 베를린 필 역사상 처음이었다.

베를린필에 페트렌코 시대가 열렸다. [사진 Stephan Rabold, 베를린필]

베를린필에 페트렌코 시대가 열렸다. [사진 Stephan Rabold, 베를린필]

취임 연주와 함께 페트렌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번 시즌 페트렌코는 공연 39회와 오페라 다섯 번을 지휘한다. 내년 탄생 250주년이 되는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 장엄 미사를 포함하고 있다. 카라얀 시절의 화려한 영화를 감지한 단원ㆍ청중과 함께, 조용한 완벽주의자 페트렌코의 베를린 시대가 시작됐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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