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촛불판사' 불린 박재영 "고유정과 촛불, 내겐 똑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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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의 변호인이었던 박재영 변호사의 모습. [박재영 변호사]

고유정의 변호인이었던 박재영 변호사의 모습. [박재영 변호사]

촛불판사 박재영은 왜 고유정의 변호를 맡았나 

고유정(36)의 변호인이었던 박재영 변호사(51·연수권 27기)는 현직 시절 '촛불 판사'라 불렸다.

"고유정 사건 돈 때문에 맡지 않아, 변호인 조력은 헌법상 권리"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촛불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안진걸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보석으로 석방하며 그가 요청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0조'의 위헌 제청 신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당시 박 판사의 위헌제청 이후 촛불집회 참석자 1400여명에 대한 재판 일부가 중단됐다. 이듬해 9월 헌법재판소는 야간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한 집시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이 지난 12일 제주지법에서 첫 재판을 받고 나와 호송차에 오르려하자 시민들이 머리채를 잡고 있다. [뉴스1]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이 지난 12일 제주지법에서 첫 재판을 받고 나와 호송차에 오르려하자 시민들이 머리채를 잡고 있다. [뉴스1]

박재영 "촛불집회와 고유정 나에겐 똑같은 사건"

박 변호사는 20일 중앙일보와 만나 "고유정 사건과 촛불집회는 나에게 똑같은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제21조와 피고인의 변론권을 보장한 헌법 제12조를 지키려는 '똑같은 소신'이었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유명해지려거나 거액의 수임료 때문에 고유정씨의 사건을 맡은 것도 아니었다"며 "고씨의 사건 기록과 증거를 보니 언론 보도와 달리 고씨에게 억울한 점이 있어 사건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악마의 변호인'이라며 자신에게 쏟아진 인신공격에 노모(79)가 쓰러지고 고씨의 변호를 포기했다. 노모의 생명과 소신을 바꿀 수 없어 소신을 완전히 꺾었다는 것이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열린 촛불집회의 모습. 당시 검찰은 10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을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중앙포토]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열린 촛불집회의 모습. 당시 검찰은 10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을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중앙포토]

박 변호사는 "내가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로 변론권을 침해받은 마지막 변호사이길 바란다"며 이날 중앙일보에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배경과 경위를 자세히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고씨의 변호는 포기했지만 자신의 변론권을 침해했다며 '고유정 사건'의 수사를 지휘한 박기남 전 제주동부서장을 피의사실공표죄로 고소할 예정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고유정 사건에서 완전히 손을 뗀 건가. 
고유정씨와 관련한 모든 사건에서 손을 뗀 상태다. 지난 12일 고유정씨가 처음 재판에 나온 다음날 그만뒀다. 어머니가 쓰러지셨고 어머니의 생명과 내 소신을 바꿀 수는 없었다.
변호사 입장에선 부담되는 사건이다. 왜 맡으셨나 
후배 법조인에게 "억울한 사람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고유정씨를 만났다. 이렇게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고씨에게 "당신이 만약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면 자백하고 선처를 받는게 낫다"고 말한 뒤 사건 기록을 보기 시작했다. 살인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론 보도와 달리 고씨에게 억울한 부분이 있었고 변호인의 조력이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피고인에게 모두가 등을 돌릴 때도 변호사는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봐야 한다. 그게 내 소신이다. 그래서 맡았다.
고유정의 무엇이 억울하다는 것인가
사건에 손을 뗀 상황이라 자세히 말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다만 계획적 살인이라 보기에는 이와 배치되는 객관적 증거가 많이 나왔다. 우발적 살인의 요소도 있다. 경찰에서 부실 수사 논란이 있은 뒤 일방적으로 언론에 피의사실을 공표하며 고씨를 악마로 만들었다. 하지만 사건 기록과 객관적 증거는 그 방향만을 가리키고 있지 않다. 
12일 오전 제주지방법원에서 한 시민이 고유정이 탑승한 호송차량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뉴스1]

12일 오전 제주지방법원에서 한 시민이 고유정이 탑승한 호송차량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뉴스1]

언론에 보도가 잘못됐다는 것인가
모든 사건에는 음과 양이 있지만 양으로 나간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이번 사건의 경우 수사 초기 경찰의 부실 수사 논란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이 언론에 선정적 피의사실을 공표하며 고유정을 악마화시킨 것은 아닐까. 이런 식의 변론권 침해는 막아야 한다. 법정에 가기도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변창훈 전 검사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고유정 사건 수사를 맡았던 박기남 전 제주동부서장을 피의사실공표죄로 고소할 예정이다.
거액의 수임료 때문에 사건을 맡은 것은 아닌가
여론이 악화할수록 양심상 사건에서 손을 떼기가 더더욱 어려웠다. 이 사건을 계속 맡았다면 현재 소속된 로펌을 떠나려고 했다. 동료 변호사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맡은 사건은 모두 포기해야 하는데 2억~3억원의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 변호사로서 내 소신을 지킬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시간과 돈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피고인은 나를 깊이 신뢰하며 울었던 적이 있다. 변호인이 신뢰를 받았다면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판사 그만둔 뒤 민주당 영입제안도 거절, 튀는 것 싫어해" 

튀는 사건을 맡아 유명해지려 한다는 의구심도 있다 
내가 사건을 맡는 기준은 피고인의 억울함이다. 그리고 난 튀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판사 시절 유명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직접 겪어봐서 안다. 판사를 그만두고 2년 뒤에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서 수차례 영입제안이 왔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당시 성남시장)가 직접 찾아와 같이 밥도 먹었지만 거절했다. 내가 법원을 나와 당에 들어간다면 법원을 지키고 있는 판사님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 때문이다. 난 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변호사로서의 소신과 양심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촛불판사'와 '악마의 변호인'이란 별칭이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나에게 두 사건은 똑같은 성질의 사건이다. 그때는 집회·결사 자유를 보장한 헌법 21조를, 지금은 변호인에게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 헌법 12조를 지키려는 것이다. 촛불집회 당시 안진걸씨는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약자였다. 난 고유정씨도 현재 상황에선 약자적 상황에 놓였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당시 안진걸씨 보다 고유정씨가 더 약자라고 생각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고유정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약자는 고유정씨가 아니라 그에게 살해당한 전 남편 아닌가
어머니는 항상 피해자의 가족이 약자라는 말씀을 하셨다. 전 남편과 그의 가족분들이 약자라고, 그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유정씨의 변호인이 돼선 안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지금 그분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주는 분들은 많이 계시지만 고씨에겐 그의 가족 외에 아무도 없다. 최소 한명 정도는, 변호사라면 피고인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건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억울한 입장에 놓여 있다면 옆에 서줘야 한다. 하지만 난 내 의뢰인을 버리고 말았다. 

모든 피고인에게 변호사의 조력은 필요하다  

사람들은 고유정과 같은 살인범에겐 변호사가 필요없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에겐 변호인의 조력이 필요하다. 헌법상 권리이며 거기서 고유정도 예외일 수는 없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한 것처럼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긴 사람들에겐 변호사가 필요하다. 변호사의 변론권이 침해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보장받아야 할 헌법적 권리가 침해된다는 뜻이다. 그 권리를 지키고 싶고 그 권리의 중요성을 말씀드리고 싶다.
판사 입장에서 고유정씨 사건을 맡았다면 어땠을 것 같나
나는 모든 판사님이 공정한 판단을 하실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법원이 공정하게 판단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지금 상황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판사들은 자신들의 판결이 사법부의 신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고심한다. 지금의 여론과 다른 결론이 내려졌을 때 사법부에 쏟아질 공격을 생각한다면 이번 사건의 재판장도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 생각한다.
고유정씨 사건을 맡았던 것, 후회하진 않나
후회하지 않는다. 변호사라면 피해갈 수 없는 사건이었고 맡아야 할 것을 맡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변호사의 변론권에 대해 보다 진지한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로 변론권이 침해된 한국의 마지막 변호사이길 바란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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