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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상무·전무는 일본식…'꼰대 임원제' 깨기 점차 번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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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로고. SK그룹은 올해 8월부터 임원 인사 제도를 하나로 통일해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평적 조직문화를 확산하고 있다. [사진 SK그룹]

SK그룹 로고. SK그룹은 올해 8월부터 임원 인사 제도를 하나로 통일해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평적 조직문화를 확산하고 있다. [사진 SK그룹]

김 이사와 박 전무가 기업에서 사라지고 있다. ‘기업의 별’이라 불리는 임원 인사 제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다. 직급을 단순화하고 맡은 업무에 맞춰 부르는 게 변화의 방향성이다.

올들어 임원 인사 제도를 가장 먼저 손본 건 현대자동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3월 임원 직급체계를 6단계에서 4단계로 간소화했다. 개편에 따라 이사대우-이사-상무-전무-부사장-사장 등 6단계였던 임원 직급체계는 상무-전무-부사장-사장 등 4단계로 줄었다. 기존 이사대우-이사-상무 직급은 상무로 통합했다.

현대차그룹은 임원 인사 제도 개편 이유로 직책 중심의 전문성 강화를 앞세웠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통해 직책과 역할 중심의 업무환경 조성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타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축에 속하는 현대차그룹은 임원 인사 제도 개편을 놓고 지난해 중순부터 1년 가까이 검토에 검토를 거쳤다고 한다.

이달 초부터 시행에 들어간 SK그룹의 개편 임원 인사 제도는 현대차그룹보다 파격적이다. SK그룹은 부사장·전무·상무로 구분했던 임원 직급을 없애고 하나로 통합했다. 호칭은 실장이나 본부장 등 직책 중심으로 바꿨다. 김 전무 대신 구매 본부장으로 부른다. SK그룹 관계자는 “위계를 강조하는 한국식 기업문화에서 탈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2・3위 그룹사의 임원 인사 제도 개편을 놓고 재계에선 직급 중심의 일본식 인사 제도에서 탈피하는 과정이란 해석이 나온다. 국내 기업에 흔히 사용하는 직급 체계는 일본에서 들여왔다. 상무-전무-부사장으로 이어지는 국내 기업의 임원 직급 체계도 일본식 기업 시스템과 문화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들여온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일본에선 죠우무(じょうむ)라 부르는 상무(常務) 직급을 사용한다. 여기에 센무(せんむ)라 부르는 전무(專務) 직급도 쓴다. 재계 관계자는 “사원-과장-부장-상무-전무로 이어지는 한국 기업의 직급 체계는 일본에서 들여왔다”며 “전문 경영이란 추세에 따라 직급이 아닌 직책 중심으로 기업의 인사 제도가 바뀌면서 임원 제도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를 살펴보면 국내 기업의 임원 인사 제도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기를 거치면서 가장 크게 변화했다. 임원 성과주의를 도입하면서 임원 직급을 세분화했다. 상무 갑, 상무 을이란 요즘엔 낯선 임원 직급 체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의사 결정 단계가 복잡하고 기업 임원의 전문화 추세가 이어지면서 직급 간소화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현대자동차 로고. 현대차그룹은 올해 3월부터 6단계 임원 제도를 4단계로 줄였다. [사진 현대차]

현대자동차 로고. 현대차그룹은 올해 3월부터 6단계 임원 제도를 4단계로 줄였다. [사진 현대차]

재계에선 현대차와 SK의 임원 인사 제도가 다른 기업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임원 직급 간소화가 최근 각 기업에서 자리 잡고 있는 수평적 조직문화 확산에 긍정적으로 작동할 것이란 해석이다. 기업 인사 제도를 연구한 김환일 전북대 취업지원본부 교수는 “기업 경영에서 전문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며 임원 인사 제도에도 전문성 평가가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이런 경향이 직책 중심의 기업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이 임원 인사 제도 개편을 주도하고 있어 재계 전반으로 퍼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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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전무-부사장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임원 직급 체계와 달리 미국 등에선 최고경영자(CEO)를 제외한 임원 직급은 바이스 프레지던트(Vice President)와 시니어 바이스 프레지던트(Senior Vice President)로 단순하게 구분된다. 국내 기준으로 바이스 프레지던트는 상무와 전무로 분류할 수 있다. 시니어 바이스 프레지던트는 부사장이나 전무에 가깝다. 미국 기업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직급과 직책을 함께 사용한다. 아이폰을 생산하는 애플을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다. 애플이 올해 초 공개한 임원 연봉 지급표에 따르면 이 회사 부사장(시니어 바이스 프레지던트)은 모두 3명인데 직급과 직책을 함께 쓴다. 예를 들어 루카 마에스트리 애플 부사장은 연봉 지급표를 통해 시니어 바이스 프레지던트라는 직급과 최고 재무책임자(CFO)라는 직책을 함께 공개하고 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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