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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의 거인 50년 음악 인생 무대 밖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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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잊지 못하네…"

'록의 대부' 신중현(67)의 은퇴 콘서트는 부슬비와 함께 시작됐다. 콘서트 초반 한국 가요사의 명곡이자 그의 대표곡인 '빗속의 여인' 전주가 시작되자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더하던 비는 '거인'의 열창이 끝나자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15일 인천 송도유원지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신중현의 은퇴기념 전국순회공연 '라스트 콘서트'.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4000여명의 청중을 불러모으며 성황리에 끝났다. 신씨는 당초 1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순회공연 첫 단추를 채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비 때문에 연기해 이날 야외공연장에서 열리게 됐다.

음악 인생 50년을 마무리 하는 은퇴 공연에 나선 신중현이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히트곡 '빗속의 여인'을 열창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이날도 비가 예상됐지만, 팬들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 없다는 신씨의 뜻에 따라 강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신씨는 '빗속의 여인'을 비롯해 '커피 한잔' '봄비' '꽃잎' '님은 먼 곳에' '미인' '아름다운 강산' 등 주옥같은 20여 곡을 들려줬다.

공연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전날 한숨도 못잤다는 신씨. 무대에 오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혼을 실은 열창과 신들린 기타 연주로 '거인'의 면모를 과시했다. 청중석의 대부분을 차지한 장년층 팬은 쏟아지는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에 옛 생각이 나는지 흥겨운 어깨춤을 추는 노신사가 있었다. '봄비'의 애잔한 선율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감성을 쏟아내는 중년여성들도 있었다.

김추자의 '빗속의 여인'부터 모든 청중을 일어서게 한 김완선의 '리듬 속에 그 춤을' 까지, 그는 이날 음악인생 50년을 그대로 쏟아냈다. 그것은 시대를 관통해온 서민들의 감성, 그 자체이기도 했다. 신씨는 '한국적 록의 창시자' 라는 찬사를 받으며 1960~70년대를 주름잡은 대중음악인. 하지만 정권에 밉보이면서 1975년 연예인 대마초 파동에 휘말리는 바람에 전성기를 빼았겼다. 방송출연과 공연은 물론, 음반판매까지 금지당했다.'비운의 스타'로 불리는 이유다.

여성팬 김모(43.인천 연수구)씨는 "비가 추억을 되살려주며 공연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며 "신씨의 은퇴가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아쉬워하기는 후배가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윤도현과 함께 대선배의 은퇴공연에 게스트로 나선 김종서. 그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거인이신 선생님은 내게는 음악적 아버지이기도 하다"며 "음악적 정진을 멈추지 마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공연을 마친 신씨는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스타'라는 딱지를 떼어버려도 될 만큼 청중의 호응에 가슴 벅찬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방송이나 무대에 오르지는 않겠지만, 사적인 음악활동은 계속할 것이며 팬들과 인터넷으로 교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몇개 도시를 더 돌고 서울에서 화려한 피날레 은퇴공연을 하겠다는 신중현. 그의 음악인생은 아직도 진행형이며, 새로운 열정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인천 송도=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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