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남 선비처럼 ‘낙강’에 배 띄우고 놀아볼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경북 상주는 예부터 영남 선비들이 산수 유람을 즐겼던 장소다. 요즘 사람들은 낙동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캠핑도 한다. 청룡사에서 낙동강에 들어앉은 경천섬을 굽어봤다. 오는 12월에는 회상나루로 연결되는 도보교가 완공된다. 최승표 기자

경북 상주는 예부터 영남 선비들이 산수 유람을 즐겼던 장소다. 요즘 사람들은 낙동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캠핑도 한다. 청룡사에서 낙동강에 들어앉은 경천섬을 굽어봤다. 오는 12월에는 회상나루로 연결되는 도보교가 완공된다. 최승표 기자

구순목 상주시 관광마케팅팀장 집에는 자전거가 4대 있다. 구 팀장 부부와 두 자녀가 한 대씩 자전거를 갖고 있다. 김대수 공보실 계장은 한 수 위다. 여섯 식구 사는 집에 자전거가 7대다. 알고 보니 경북 상주는 전국서 자전거 보유율이 가장 높은 도시(가구당 2대)였다. 1924년 ‘조선 팔도 자전거 대회’가 열린 상주는 자전거 국토 종주 길도 지난다. 과연 ‘자전거 수도’라 할 만하다. 이게 다가 아니다. ‘곶감의 도시’로만 알려진 상주는 반전 매력이 넘친다. 전국 최고 수준의 승마장이 있는가 하면 남이섬 절반 크기(20만㎡)인 인공 섬도 있다. 옛 선비들이 산수 유람을 즐긴 ‘낙동강의 중심’ 상주에서 노는 법은 실로 다채롭다.

경북 상주 낙동강 여행 #자전거 박물관·생물자원관 보고 #국내 최대 승마장서 말 타기 체험 #카약·폰툰 보트 … 수상 레저까지

무더위엔 박물관 순례

상주는 스케일이 남다른 도시다. 서울(605㎢)의 곱절이 넘는 면적(1255㎢)부터 그렇다. 여느 도시보다 박물관, 전시관도 많은데 모두 큼직큼직하다. 박물관 근처만 가도 졸린 사람도 상주에서는 박물관부터 찾을 일이다. 무더운 여름, 박물관만큼 훌륭한 피서지도 없다.

상주박물관에서 선비 복장을 착용한 아이들. 최승표 기자

상주박물관에서 선비 복장을 착용한 아이들. 최승표 기자

사벌면 ‘상주박물관’부터 가보자. 상설전시관에서 장구한 도시 역사를 살필 수 있다. 비옥한 낙동강을 낀 상주에서는 선사 시대부터 여느 지역보다 문화가  발달했다. 원삼국시대 ‘사벌국’이 상주에서 융성했다. 당시 출토된 토기부터 유교 문화가 꽃피었던 조선 시대 그림과 온갖 유물이 전시돼 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국난 극복과 임진왜란’ 코너에서 초등학생을 안내하는 해설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1593년 상주 판관으로 부임한 정기룡 장군이 용화동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상주성을 탈환했고 의병과 힘을 합쳐 왜군을 깡그리 몰아냈습니다.”

12월 말까지 진행하는 ‘영남 선비들의 여행’ 기획전도 흥미로웠다. 상주에서는 1196년부터 1862년까지, 무려 666년간 ‘낙강 뱃놀이 시회(詩會)’가 이어졌다. 낙동강을 유람하며 풍류를 즐기던 모임이다. 시와 그림뿐 아니라 옛 선비의 여행용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조연남 학예연구사는 “큰 배에는 50명 이상 탔고, 수박 100여 덩이와 거문고·퉁소 같은 악기를 싣고 최대 나흘간 강을 유람했다”고 설명했다. 조선판 크루즈 여행이었던 셈이다.

낙동강생물자원관에 전시된 동물들. 최승표 기자

낙동강생물자원관에 전시된 동물들. 최승표 기자

요즘 방문객이 가장 많은 명소는 2015년 개관한 ‘낙동강생물자원관’이다. 국내 담수 환경을 조사·연구하는 기관으로, 동물원·식물원처럼 전시 공간을 잘 갖춰서 어린이에게 인기다. 재두루미·담비처럼 낙동강에 사는 동물뿐 아니라 북극곰, 호랑이 박제도 있다.

엄복동 선수가 1925년 조선 팔도 자전거 대회 때 탔던 자전거. 최승표 기자

엄복동 선수가 1925년 조선 팔도 자전거 대회 때 탔던 자전거. 최승표 기자

상주에는 전국 유일의 자전거 박물관도 있다. 전시된 자전거를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경북 내륙 산골 도시가 자전거의 도시가 된 역사 자체가 흥미롭다. 부자가 아니면 자전거 한 대 갖기 쉽지 않던 20세기 초부터 상주에는 부자가 많았다. 무엇보다 완벽한 분지 지형이어서 자전거 타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 지금도 학생과 직장인 대부분이 자전거로 통학, 출퇴근을 한단다. 자전거 도시답게 상주시는 모든 시민에게 자전거 보험을 공짜로 들어준다.

남이섬 절반 크기 인공 섬

국제승마장에서 말을 타는 아이들. 최승표 기자

국제승마장에서 말을 타는 아이들. 최승표 기자

자전거 도시 상주는 말 타기 좋은 도시이기도 하다. 예부터 말을 숭배하는 사당인 ‘마당(馬堂)’이 있었고, 경천대 관광지 인근에 전국 최고 수준의 시설을 자랑하는 국제승마장이 있다. 승마 선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상주시민에게는 레저 장소로, 관광객에게는 필수 방문 코스로 꼽힌다. 5000원만 내면 말을 타고 승마 체험장을 돌아볼 수 있다. 말 먹이 주기 체험도 인기다. 상주에 사는 학생에게는 무료 10회 강습 기회가 제공된다. 8회째 강습을 마친 이아라(11)양은 “처음엔 말이 무서웠는데 지금은 안아주고 갈기도 땋아줄 수 있다”며 웃었다.

“글 읽는 것이 산을 유람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지금 보니 산을 유람하는 것이 글 읽는 것과 비슷하네.”

경천대 옆에 있는 무우정. 최승표 기자

경천대 옆에 있는 무우정. 최승표 기자

퇴계 이황(1502~71)의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 시 구절이다. 퇴계가 낙동강 뱃놀이 모임에 참가하진 않았지만 당시 선비들도 비슷한 감상에 젖었을 터이다. 낙동강 1300리 중에서도 상주 ‘경천대(擎天臺)’ 풍경을 예부터 으뜸으로 쳤다. 하늘이 스스로 만들었다 하여 ‘자천대(自天臺)’라고도 했다. 주변에 드라마 세트장, 출렁다리, 밀리터리 테마파크 같은 별별 관광지가 조성됐지만 작은 바위 전망대인 경천대에서 풍광을 감상하는 게 가장 좋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푸른 들녘,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장관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마음이 누그러진다. 경천대 옆 솔숲을 산책한 뒤 배롱나무 한 그루 서 있는 무우정(舞雩亭)에 걸터앉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경천섬도 있다. 원래는 모래가 쌓여 형성된 삼각주였다. 주민들이 감자, 무 심던 땅이었는데 2012년 4대강 사업을 벌이면서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경천섬은 서쪽에 도보교가 있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다. 오는 12월에는 맞은편 회상나루로 이어지는 국내 최장(345m) 도보교도 생긴다. 섬 안에는 둘레길과 산책로가 조성돼 있고 계절따라 유채꽃, 코스모스가 만발한다.

상주 낙동강에서는 수상자전거, 카약 등을 즐길 수 있다. [사진 상주시]

상주 낙동강에서는 수상자전거, 카약 등을 즐길 수 있다. [사진 상주시]

섬 인근 낙동강 유역은 수상 레저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무더운 여름에는 카약, 스탠드업 패들(SUP), 수상자전거를 즐기기 좋다. 12명까지 탈 수 있는 ‘폰툰 보트’도 인기다. 옛 선비들이 낙강에 배 띄우고 노는 재미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낙동강 여행

낙동강 여행

◆여행정보

상주박물관·자전거박물관은 어른 입장료 1000원, 낙동강 생물자원관은 2000원이다. 박물관과 낙동강생물자원관은 월요일에 쉰다. 카누·SUP 등 무동력 수상 레저 체험은 30분 5000원, 보트 같은 동력 레저는 어른 1만5000원. 경천대 관광지 인근 식당 중 ‘농우마실’을 추천한다. 차돌박이된장찌개(7000원) 같은 식사뿐 아니라 돼지갈비(1인분 9000원), 소 갈빗살(1인분 2만2000원) 등 고기도 저렴하다. 상주시 홈페이지 참조.

상주=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