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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대사 비건, 일 대사 해리스? 한반도 흔드는 '트럼프 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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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청와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 국무부 장관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한미 확대 정상회담 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6월 청와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 국무부 장관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한미 확대 정상회담 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반도 정세를 흔들 수 있는 또 하나의 복병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 일본 대사로 누구를 낙점하느냐다. 주일 미국 대사는 현재 공석, 주러 미국 대사는 10월부터 공석이 될 예정이다. 미국 내에선 지난 주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대사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인터넷 매체 복스(Vox)가 9일(현지시간) 비건 대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주러 대사 ‘최우선 카드(top choice)’라고 보도했다. 이어 11일엔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의 엘리아나 존슨 기자가 CNN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비건 대표를 후보로 고려할 만한다”며 ‘비건 주러 대사’ 설에 무게를 실었다. 13일엔 로이터 통신이 국무부 관계자를 익명으로 인용해 “비건 대표가 주러 대사로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건 대표는 미국의 북핵 실무협상 총책임자다. 그가 워싱턴을 떠나 러시아 대사로 부임한다면 대북 업무 최일선에서 손을 떼게 된다. 비건을 중심으로 판이 짜여진 한ㆍ미, 미ㆍ일, 한ㆍ미ㆍ일의 대북 실무협상의 판이 바뀌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건 대표를 북핵 협상판에서 뺀다는 것은 재선을 앞두고 북한과의 실무협상을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깜짝 회동을 한 뒤, 비건 대표를 실무협상 책임자로 지목하면서 “행운을 빈다”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런 비건 대표를 주러 대사로 임명한다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우선순위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밀린다는 해석을 낳을 수 있다.

새로 대북특별대표를 인선하는 데도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폴리티코의 존슨 기자 역시 “(비건 대표가 주러 대사로 임명된다면) 북한과의 협상이 잘 안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며 “주러시아 대사도 그다지 즐거운 자리는 아니지만 (대북특별대표 자리보다는)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도훈(왼쪽)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 5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 양자회의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도훈(왼쪽)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 5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 양자회의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비건 대표는 지난해 6월12일 1차 북ㆍ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뒤인 8월 임명됐다. 올해 2월 하노이 2차 북ㆍ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위해 평양에 직접 가서 당시 카운터파트였던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에선 외교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그의 카운터파트였고, 이들은 ‘단짝’이라 불릴 정도로 찰떡 호흡을 과시해왔다. 비건 대표는 일본의 대북 협상 실무 총책인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국장과도 가깝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왼쪽)와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연합뉴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왼쪽)와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연합뉴스]

임명된 지 갓 1년이 된 비건 대표가 주러 대사에 거론되는 것은 그가 러시아통이기 때문이다. 미시간대에서 정치학과 러시아어를 전공한 그는 젊은 시절 공화당 모스크바 지부에서 미ㆍ러 관계개선과 함께 구 소련의 경제개혁개방 조치를 연구하기도 했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 인재 풀이 그다지 넓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비건만한 주러 대사 감은 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비건 대표는 현재 침묵을 지키고 있다. 국무부 역시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최근 그를 만난 이들에 따르면 그는 "현재로선 북한 업무에 집중하고 싶다"는 입장인 것으로 파악됐다. 익명을 원한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13일 본지에 “비건 대표는 북한 이슈에 대해 순수한 열정이 있다”며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이대로 대표직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의 진전 매듭을 짓고 나가길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 간 대북 공조 방안 조율을 위한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를 방문,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면담에 앞서 한반도 지도를 붙여놓은 바인더를 들고 있다. 우상조 기자

한미 간 대북 공조 방안 조율을 위한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를 방문,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면담에 앞서 한반도 지도를 붙여놓은 바인더를 들고 있다. 우상조 기자

그러나 ‘러시아 스캔들’로 골치를 앓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주러시아 대사직이 더 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 스캔들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러시아가 개입해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일조했다는 의혹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주러 대사로 낙점할 경우 비건 대표가 항명할 가능성은 작다.

현재 주러시아 미국 대사인 존 헌츠맨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정통 공화당으로 보수파이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시 중국 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뉴욕타임스에 ‘나는 트럼프 행정부 내의 레지스탕스 일원이다’라는 제목의 익명 기고문이 나오자, 일각에선 헌츠맨이 필자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헌츠맨 본인은 의혹을 부인했다.

지난 5월 존 헌츠맨 주러시아 미국대사(맨 왼쪽)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 있는 인물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AP=연합뉴스]

지난 5월 존 헌츠맨 주러시아 미국대사(맨 왼쪽)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 있는 인물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주일 대사 인선도 해야 한다. 윌리엄 해거티 주일 미국대사가 상원의원 출마를 위해 사임했기 때문이다. 마이니치 신문은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이 후임 주일 대사로 스캇 브라운 뉴질랜드 대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브라운 대사와 함께 하마평에 오른 인물군에 현재 한국에 부임 중인 해리 해리스 대사도 포함됐다는 것이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달 대사관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김경록 기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달 대사관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김경록 기자

마이니치 신문은 “브라운 대사가 유력하지만 해리스 대사를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보하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외교소식통은 본지에 “해리스 대사의 모친이 일본인이라는 점 등이 고려된 보도인 것 같은데, 현재로선 가능성이 크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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