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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월드] '대기만성 비둘기' 비건 美 대북협상대표, 해뜰날 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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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6월28일 오전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위해 서울 도렴동 외교부청사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환한 미소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뉴스1]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6월28일 오전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위해 서울 도렴동 외교부청사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환한 미소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뉴스1]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열린 사실상의 3차 북ㆍ미 정상회담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있겠지만 실무진에선 단연 이 인물입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U.S. Special Representative for North Korea)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53분간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회담한 뒤 기자들을 만났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뒤에 서있도록 한 인물이 비건 대표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곧 북ㆍ미 실무협상이 열릴 것이라면서 “비건 대표가 미국의 (협상) 실무팀을 이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비건 대표를 뒤돌아보며 이렇게 덧붙였죠. “굿 럭, 스티브(Good luck, Steve).”

긴장한 듯한 표정이었던 비건 대표는 활짝 웃으며 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Thank you, sir).” 비건 대표의 공무원 생활 중 최고의 순간이었을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4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입니다.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에게 북한 관련 보고를 받는 장면이네요. [트위터 캡처]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4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입니다.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에게 북한 관련 보고를 받는 장면이네요. [트위터 캡처]

그래서일까요, 비건 대표는 현재 대북 초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후임으로도 거론됩니다. 미국 유력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토머스 라이트 미ㆍ유럽센터 국장은 6일 더 애틀랜틱에 “볼턴을 대체할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스티븐 비건 미 대북특별대표”라고 못 박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비건 대표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자리에 오른다면, 강경파인 매파가 아닌 온건파인 비둘기파에게 좀 더 힘이 실리는 구도가 될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대북 제재를 완화해주지는 않을 거라는 게 복수의 외교·안보 당국자들 전언입니다. 익명을 원한 한 외교·안보 소식통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미국 행정부는 물론 의회에서 여야가 거의 유일하게 의견 일치를 보는 문제는 대북 제재 유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대북 제재의 효용성을 잘 알고 있다.”

판문점에서 최고의 순간을 맛보긴 했지만, 비건 대표에게 좋은 날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사실 지금을 사자성어로 표현하자면 ‘고진감래(苦盡甘來)’ 정도가 맞을 겁니다.

비건 대표가 대북 특별대표로 임명된 건 지난해 8월23일입니다. 싱가포르에서 1차 북ㆍ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약 두 달이 지난 시점이죠. 비건 대표는 그러나 임명된 후 100일이 지나도록 북한 카운터파트의 소위 코빼기도 보질 못했습니다. 직속 상관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지만 그의 카운터파트인 최선희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은 보란 듯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합니다. 비건 대표를 일부러 바람 맞힌 거라는 해석이 분분했죠. 곡절 끝에 2차 북ㆍ미 정상회담이 올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고, 비건 대표가 실무협상을 위해 평양에도 들어갔었지만 정상회담 결과는 결렬. 빈손으로 귀국하는 비건 대표는 속으로 “인생 참 맘대로 안 되네” 싶었을 겁니다.

비건의 국무부 사무실은 ‘장관 층’

하지만 비건 대표에겐 맷집이 있습니다. 비가 오면 묵묵히 맞죠. 그러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찾아 열심히 합니다. 그를 만나본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참 열심이다.”

 비건 대표가 항상 갖고 다니는 바인더가 있는데요, 한반도 지도를 붙여놓아서 꽤 유명해졌죠. 비건 대표와 긴밀히 협상해온 한 외교·안보 핵심 당국자는 “만날 때마다 바인더가 두꺼워진다”고 했습니다. 비건 대표는 지난달 방한해서 이 핵심당국자에게 “이 바인더가 나를 닮아서 자꾸 뚱뚱해진다”는 농담을 했다고 하네요.

스티븐 비건 대표의 유명한 '한반도 바인더.' [연합뉴스]

스티븐 비건 대표의 유명한 '한반도 바인더.'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그를 국무부 사무실에서 직접 만났던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좋은 질문을 참 많이 해서 인상적이었다”고 하더군요. 김 교수의 질문에도 성실히 답했다고 합니다. 그의 사무실은 국무부에서 핵심 층에 있다고 합니다. 폼페이오 장관과 같은 층이죠. 국무부에선 ‘장관 층(the Secretary floor)’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비건 대표는 “내 방은 너무 작다”고 푸념했다고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이 그만큼 그를 가까이 두겠다는 의지가 방 배치에서도 읽히는 셈입니다.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 국무부 장관과 스티븐 비건 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 국무부 장관과 스티븐 비건 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이 안 만나줘도 포기를 모릅니다. 지난해 12월 19~22일 방한했을 때 일인데요, 그의 일정 중 하루가 텅 비어있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기자들은 난리가 났죠. 나중에 보니 판문점엘 혼자 갔더군요. 한국에서 북한에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는 곳을 골라 간 겁니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에게 보낸 일종의 메시지였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죠.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약 한 달 후인 올해 1월, 비건 대표의 나홀로 판문점 방문 이후 그를 만났습니다. 그것도 무려 3박4일간의 일정으로요.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함께였습니다. 회담은 스웨덴 스톡홀름 인근의 산장에서 열렸죠. 당시 회담 사정을 잘 아는 당국자는 “상세한 회담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서로 굉장히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기회가 됐다”고 했습니다. 이후 비건 대표는 2월28~29일에 열린 하노이 회담을 앞두고 평양에 들어가 직접 당시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를 만나 실무협상을 벌였습니다.

평양에 들어가기 직전엔 스탠퍼드대에 들러 강연을 했습니다. 이례적이었죠. “영변과 그 이상(beyond Yongbyun)의 플루토늄 및 우라늄 농축 시설 폐기→포괄적 핵신고 및 전문가들의 사찰ㆍ검증→핵 물질과 무기,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제거 및 파괴”를 거론했습니다. 방북 직전, 북한에게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일종의 ‘강연 외교’인 셈입니다.

비건 대표와 찰떡 궁합인 이도훈 본부장도 지난 4월 연세대 강연에서 강연 외교를 펼쳤습니다. “대화가 재개될 때 조기 수확(early harvest)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제재만으로는 해결 못 한다. 대화 회의론이 독버섯처럼 확산하고 있지만, 회의론은 대화의 대안이 못 된다”고 말했습니다. 비건 대표는 강연이 끝나자마자 이도훈 본부장에게 e메일을 보냈다고 합니다. “더 이상 동의할 수 없을 정도로 동의한다”는 게 요지였다고 하네요. 이 본부장과 비건 대표는 서로를 ‘훈(Hoon)’ ‘스티브’라고 부를 정도로 절친합니다.

이도훈(왼쪽)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5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워킹그룹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이도훈(왼쪽)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5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워킹그룹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비건의 봄날이 왔다  

비건 대표의 또 다른 장점은 오픈마인드입니다. 기업 출신이다 보니 다양한 아이디어가 많다고 하네요. 김현욱 교수는 “국무부 내에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정통 국무부 스타일과는 많이 다르다”며 “민간 전문가들 의견도 많이 듣고 오픈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를 만났던 아산정책연구원의 최강 부원장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고 성품도 좋다”고 합니다. 칭찬 일색이죠.

비건 대표는 사실 요즘 말로 하면 ‘어공(어쩌다 공무원, 별정직)’입니다. 국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외교관 출신이 아니죠. 지금 자리엔 지난해 8월23일 임명됐는데, 당시엔 자동차 회사인 포드에서 국제 담당 부회장으로 근무했습니다. 대관 업무를 한 것이죠. 미 국무부도 당시 그의 임명을 발표하면서 “행정부와 의회 및 민간 부문에서 30년 넘게 경험을 쌓았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외교·안보 분야의 정통 전문가는 아니지만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는 뜻이 녹아있는 말이죠.

그렇다고 비건이 외교·안보 문외한인 것은 아닙니다. 사회생활을 의회 보좌관으로 시작했는데, 공화당의 외교·안보 전문가로 통했던 빌 크리스트 전 원내대표 밑에서 일을 했습니다. 1994년 북ㆍ미 제네바 합의 당시엔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실무를 봤습니다.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으나 한반도 비핵화 업무엔 일찌감치 눈을 뜬 셈입니다.

이후 조지 W 부시 정부에선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발탁돼서 국가안보회의(NSC) 사무국장(executive secretary)과 NSC의 업무 집행 최고책임자(Chief Operating Officer)로 활약했습니다. 이 자리는 미국의 외교안보 현안 전체를 조율하는 핵심 요직입니다. 이후 2008년엔 존 매케인 당시 대선 후보의 외교 자문역을 맡았고, 세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를 보좌하기도 했습니다.

포드자동차의 국제 담당 부회장으로 옮긴 뒤엔 한국과 악연을 맺기도 했습니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포드의 이익을 대변하며 충돌을 한 것이죠. 당시 비건 대표는 ”한국이 자유무역의 원칙이 뭔지 깨달을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강제 조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발언했습니다. 반한(反韓)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일하는 기업을 위해 충성을 다한 발언으로 봐야 한다는 게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얘깁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5월10일 오후 청와대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면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습니다. 콜라캔이 인상적입니다. [청와대 제공=뉴스1]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5월10일 오후 청와대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면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습니다. 콜라캔이 인상적입니다. [청와대 제공=뉴스1]

마침 한ㆍ미 FTA 협상의 주역이었던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지금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을 맡고 있는 것도 인연입니다. 김 차장이 임명된 뒤 비건 대표는 지난 5월 방한해 ”김현종 차장을 만나고 싶다“고 콕 집어 요청을 했고, 김 차장과는 코카콜라를 놓고 장시간 대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비건 대표가 과연 국가안보보좌관 감투를 쓸 수 있을까요. 답은 트럼프 대통령만이 알 겁니다. 비건 대표 이외에도 더글러스 맥그리거 예비역 육군 대령도 하마평에 올라 있습니다. 예측 불가인 트럼프 대통령의 성정을 보면 볼턴을 그대로 유임시키는 선택도 배제할 수 없지요. 여튼 확실한 건 하나 있습니다. 비건 대표가 이달 중순 열릴 것으로 전망되는 북ㆍ미 실무협상에서 주역으로 뛸 것이라는 점이고, 그의 봄날은 한동안 계속될 거라는 점입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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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비건 대표의 영어 이름 스펠링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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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 스티븐 비건 대표의 영어 이름 스펠링은 무엇일까요?

정답 : 2번 Stephen Biegun( 답은 2번, Stephen Biegun 입니다. )

문제 중 문제 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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