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최저임금액 맞추려 택시 근로시간 줄이는 계약은 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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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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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했다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택시 기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택시 회사에서 최저임금법을 회피하기 위해 소정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은 최저임금법을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라고 결론지은 것에 따른 후속 판결이다.

택시 처우 개선하려 만든 특례조항에…꼼수 등장

경기 수원 등에서 택시 기사로 일한 강모씨 등 20명은 매년 노조를 통해 회사와 임금계약을 맺었다. 2006년 1일 7시간 20분이었던 소정근로시간은 2010년 1일 6시간 40분, 2011년ㆍ2012년에는 1일 4시간 20분으로 줄었다. 매년 소정근로시간이 줄어든 것은 실제 근무 시간이 줄어서가 아니라 2007년부터 바뀐 최저임금법 때문이었다.

2007년 개정된 최저임금법 특례조항 제6조 제5항은 택시근로자들의 최저임금에 넣을 임금 범위에 ‘생산고에 따른 임금’(초과운송수입금)을 제외했다.

예를 들어 정액 사납금제로 임금을 받는 택시기사라면 운전해서 번 돈(운송수입금) 중 일정액은 사납금 명목으로 회사에 낸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운송수입금은 기사가 가지는데, 이 금액은 택시기사의 최저임금 산정액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사납금과 초과운송수입금을 제외하고 택시기사가 회사로부터 받는 일정한 고정급이 최저임금액 이상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기사들의 최저임금액을 맞추기 위해서는 기본급을 올리라는 것이 법 취지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소정근로시간을 줄여 기본급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계약 연장이 이뤄지는 곳이 많았다. 기사들의 기본급을 올리면 사납금도 함께 올려야 한다는 회사측 주장이 현실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강씨의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법 개정 전 7시간 20분이었던 하루 근로시간이 2012년 4시간 20분으로 서류상으로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 12시간(4시간 휴게시간) 교대 근무인 근로 시간은 거의 변한 것이 없었다. 기사들은 실제 초과근무시간 등을 고려해 임금 차액을 달라며 소송을 냈다.

1ㆍ2심 “택시 특수성ㆍ노사 양측 이익 고려한 합의”

1ㆍ2심은 택시기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뀐 최저임금에 따라 회사측과 택시기사들이 노사 이익을 고려해 자발적으로 소정근로시간을 줄인 것이므로 이를 무효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소정근로시간을 줄이는 대신 사납금의 급격한 인상을 막으면서 기사들이 직접 벌 수 있는 초과 운송수익금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소정근로시간 단축이 전체적으로 기사들에게 불리하게 변경됐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또 “소정근로시간 감축을 그 자체로 최저임금법 적용을 피하기 위한 탈법적 수단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근로시간을 줄이기로 한 노사 합의가 존중돼야 한다고 봤다.

대법,“실제 운행시간 같은데 소정근로시간 단축은 탈법”

대법원은 4월 판례 개정 취지에 비춰 “실제 근무 형태나 운행시간 변경 없이 서류상 소정근로시간만 단축하기로 한 합의는 최저임금법상 특례조항을 위반한 탈법행위로 무효”라며 원심을 완전히 뒤집었다. 소정근로시간을 줄여 시간당 고정급이 겉으로는 늘어나 보이게 하는 회사측 꼼수를 명백하게 탈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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