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블랙 먼데이…국민 불안감 줄여 줄 정책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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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코스닥지수가 7.5%나 폭락했다. 코스피지수는 2.6% 하락했고, 원화가치 역시 뚝 떨어졌다. 일본 닛케이지수가 1.7%, 중국 상하이지수가 1.6% 떨어지는 등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세계 주식시장이 동반하락 하기는 했다. 그러나 한국 주식시장은 유난히 크게 흔들렸다. 원인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불안감이다. 일본으로부터의 소재·부품 공급이 차질을 빚어 국내 산업·경제가 휘청거릴 것이라는 우려가 시장과 투자자를 사로잡았다.

재탕·삼탕식 부품 소재 대책에 시장은 실망 #북미사일 도발 속 ‘평화경제론’ 설득력 부족 #나라 개조한다는 각오로 규제 확실히 손봐야

이날 아침 일본의 보복에 대한 대응책으로 정부가 발표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방안’도 별무신통이었다. 골자는 “100개 핵심 소재·부품 기술개발 등에 연간 1조원가량을 투입해 조기에 소재·부품 공급을 안정화한다”는 것이다. 전날 고위 당·정·청 협의에서 “내년에 1조원 이상을 소재·부품 산업에 투입하겠다”고 한 연장선이다. 이는 크게 새로울 것이 없는 대책이다. 지난해 말 산업통상자원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와 거의 판박이다. 당시 산자부는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R&D)에 매년 1조원 규모로 대대적 투자를 해 자립하겠다”고 했다. 올 6월 말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및 전략’을 발표할 때는 또다시 “100대 핵심 소재·부품·장비 기술개발에 매년 1조원을 집중 투자한다”고 밝혔다. 어제 제시한 방안은 그 재탕·삼탕 복사판에 다름 아니다. 일본의 보복이 현실화됨으로써 한국 경제와 기업은 훨씬 심각한 상황을 맞았으나 정부 대책은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시장과 기업들이 실망하고 여전히 불안을 호소하는 이유다.

어제 오후엔 문재인 대통령이 메시지를 보냈다.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발언에서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경제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했다. “일본은 결코 우리 경제의 도약을 막을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시장은 주저앉은 채 요지부동이었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 속에 대통령의 느닷없는 ‘평화경제’ 메시지는 설득력이 없다는 방증이다.

금융 쪽에서도 불안감이 생겨나고 있다. 바로 엔화 대출 문제다. 금융위기 때 원화가치가 폭락하면서 엔화를 빌렸던 수많은 기업·개인의 빚이 앉아서 두 배로 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정도의 상황은 되풀이되지 않겠지만, 조짐은 심상치 않다. 일본이 화이트 리스트 배제 조치를 발표하고 단 이틀 만에 엔화 대비 원화가치는 5% 넘게 급락했다. 그런데도 점검과 준비는 없다. 금융감독원은 엔화 대출 총액이 얼마인지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

불안은 시장을 뒤흔들어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더 키우는 요소다. 그래서 일본의 보복에 대해 경제 주체들의 신뢰를 받을 획기적 대응책이 필요하다. 당장 발목이 잡힌 소재·부품·장비 분야에만 머물러서는 효력을 보기 어렵다. 문 대통령도 “ 부품·소재 산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과 함께 경제 전반의 활력을 되살리는 폭넓은 경제정책을 병행해 나가야 하겠다”고 했다. 그 말대로다. 탈원전과 주 52시간 근로제를 비롯해 경제·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정책과 규제 전반을 과감하게 손봐야 한다. 나라를 개조한다는 ‘리셋 코리아’의 각오로 규제 전체를 혁파해야 지금 상황을 전화위복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 한편에서 한·일 정부가 서로 윈윈하는 외교적 타협안을 찾아내는 게 최상의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