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케 공방’이나 벌일 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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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일식당에서 정종(사케)을 마신 걸 놓고 여야가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코미디 같은 일이다. 지금이 어느 땐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고 한국 정부는 대일 경제 전면전을 선포한, 그야말로 비상한 시기 아닌가.

이 와중에 공당의 ‘입’ 노릇을 한다는 야당 대변인들이 내놓은 논평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대표가 일식당에서 식사한 것만으로도 부적절하고 신중치 못한 처신”(한국당), "국민 정서를 배반한 경솔한 행동”(바른미래당), "집권당 대표가 대낮부터 술타령이라면 문제 있다”(평화당). 문제 인식도, 사유의 수준도 경박하고 저급하기 짝이 없다. 국민들의 반일 감정과 불매운동 열기에 편승한 무책임한 여론 선동이요 상대 당 흠집내기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얄팍한 계산일 뿐이다.

민주당도 큰소리칠 처지는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식자재로 장사하는 일식당도 가지 말라는 것인가”라고 반박하지만, 반일 감정을 부추기거나 방관해 온 집권 세력의 태도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는 점에서 자업자득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한 달 넘게 무차별적 일본 불매운동이 이어지면서 적잖은 중소 상인·기업들이 타격을 입고 있다. 일본과 관련 있을 것으로 보이는 기업·브랜드·상점의 매출이 감소하고, 이 와중에 일식당과 같이 일본과 직접 관련이 없는 데까지 애꿎은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도 여권은 국민들에게 냉정을 되찾기를 호소하기는커녕 ‘죽창’ ‘배 12척’ ‘국채보상운동’에 이어 ‘신흥무관학교’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반일 감정을 파고들지 않는가.

외교적 타결을 주문하는 언론·정치인을 친일파로 매도했던 조국 전 민정수석은 어제 "전국의 일식집 업주와 종업원들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정치공세”라고 야당을 비난했다. 앞장서서 편가르기를 하고 반일 감정을 선동·조장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일식집들 망해야 하는가’라며 기만적인 언동을 보인다. 끝내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그러니 모교인 서울대 제자들까지 나서 ‘조국 교수님 그냥 정치를 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대자보를 붙이고 교수 사퇴 운동을 벌이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