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뻣뻣한 이진은 잊어라…이효리보다 웃긴 ‘캠핑클럽’ 에이스

중앙일보

입력

예능 ‘캠핑클럽’에 핑클 멤버들과 함께 출연 중인 이진. [사진 JTBC]

예능 ‘캠핑클럽’에 핑클 멤버들과 함께 출연 중인 이진. [사진 JTBC]

JTBC에서 핑클 멤버들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 ‘캠핑클럽’을 만든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리더 이효리의 예능감이야 일찍이 2001년 ‘해피투게더’부터 지난해 ‘효리네 민박’까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멤버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황에서 굳이 14년 만에 한 프로그램에서 만나 서로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지난달 14일 첫선을 보인 이후 3주간의 방송을 지켜본 결과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이효리뿐만 아니라 성유리ㆍ이진ㆍ옥주현 등 멤버 한 명 한 명의 진가가 차례로 드러난 덕분이다.

[민경원의 심스틸러] #14년 만에 예능 프로서 재회한 핑클 #아이돌 부담감 벗고 자유롭게 뛰놀아 #사오진·맥커터 등 별명 부자로 거듭나 #21주년 콘서트 이어 활발한 활동 기대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진(39)이다. 1998년 핑클로 데뷔해 가수로 활동하던 당시에는 다재다능하고 끼 많은 이효리와 압도적인 노래 실력을 자랑하는 옥주현에 밀려 별다른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데뷔 첫 무대에서 실수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자신감 부족에 시달렸던 여고생에서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뉴욕댁이 된 그는 그동안 숨겨온 매력을 마음껏 뽐냈다. 마치 언젠가 ‘재발견’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준비해온 사람처럼 말이다.

‘캠핑클럽’의 새로운 에피소드가 진행될 때마다 이진에게 새로운 별명이 추가되고 있다. [사진 JTBC]

‘캠핑클럽’의 새로운 에피소드가 진행될 때마다 이진에게 새로운 별명이 추가되고 있다. [사진 JTBC]

그녀를 향한 제작진의 관심도 뜨겁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오진’부터 대화의 흐름을 곧잘 끊는 ‘맥커터’, 청결을 중시하는 ‘캠핑 위생 감시원’ 등 제작진이 붙여준 별명만 대여섯개에 달한다. 거기에 이효리가 “수시로 잔소리를 한다”며 붙여준 ‘수잔’이라는 영어 이름까지 생겼다. 한나절이면 하나씩 새로운 별명이 생겨나니 이 속도대로라면 방송이 끝날 때쯤엔 그의 목록에 얼마나 많은 이름이 추가돼 있을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아침잠이 없는 이효리와 ‘모닝 데이트’를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둘이서 얼굴 마주 보고 한 배를 타기에는 아직 어색하다”면서도 용담 섬바위에서 함께 카누를 타고 노를 저은 것도, “오줌이 샐까 봐 불안하다”면서도 가득 찬 변기통을 부여안고 자전거 뒤에 올라탄 것도 모두 이진이었다. 이효리처럼 앞장서서 일을 도모하진 않지만, 툴툴 대면서도 궂은일을 척척 해내는 ‘숨은 살림꾼’인 셈이다. 옥주현이 요리를 하다 손이 부족할 때도, 성유리가 어닝을 펴고 에어소파에 바람을 넣을 때도 곁에는 ‘보조’ 이진의 모습이 함께 잡혔다.

‘캠핑클럽’에서 모닝 데이트를 즐기는 이진과 이효리. 핑클 활동 때는 불화설의 주인공이었다. [사진 JTBC]

‘캠핑클럽’에서 모닝 데이트를 즐기는 이진과 이효리. 핑클 활동 때는 불화설의 주인공이었다. [사진 JTBC]

자연히 그는 프로그램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버팀목이 되었고, 어떤 장면이든 믿고 맡길 수 있는 든든한 개그 콤비가 되었다.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해 못 할 사이도 아니었다”는 이들은 90년대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보냈던 학창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는 한편 이제는 40대에 접어든 주부 팬들과 공감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불편한 이야기를 피하는 대신 그때는 “너 때문에 힘들었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억지 화해나 감동을 이끌어내는 대신 담담하게 과거와 대면하며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서로 달랐기에 지금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말처럼 사실 이진은 처음부터 다른 멤버들과는 조금 달랐다. 은광여고 재학 시절 이미 송혜교ㆍ한혜진과 함께 유명한 ‘3대 얼짱’이었던 그는 가수가 아닌 연기자 지망생이었다.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별밤 뽐내기 코너에서 연장원을 차지하며 기획사 눈에 띈 옥주현을 중심으로 구성된 걸그룹에 급하게 합류하면서 별다른 보컬이나 댄스 수업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눈에 띄게 실력이 늘면서 팬들로부터 ‘성장캐’로 응원을 받기도 했다.

핑클 활동 당시 모습. 1998년 데뷔곡 ‘블루레인’부터 청순한 콘셉트로 큰 인기를 얻었다. [중앙포토]

핑클 활동 당시 모습. 1998년 데뷔곡 ‘블루레인’부터 청순한 콘셉트로 큰 인기를 얻었다. [중앙포토]

2002년 4집 ‘영원’을 끝으로 핑클 활동이 마무리되고, 각자 홀로서기에 나섰을 때도 그는 ‘슬로우 스타터’였다. 이효리가 솔로 가수로 승승장구하고, 옥주현이 뮤지컬 배우로 전향하는 동안 이진은 쉽사리 자리를 잡지 못했다. ‘논스톱 3’(2002~2003)로 오랫동안 꿈꿔온 배우에 도전했지만 양동근ㆍ박경림ㆍ조인성ㆍ장나라 등 전반부를 이끌어온 스타 배우들의 빈자리를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던 탓이다. 함께 배우 도전에 나선 성유리가 ‘천년지애’(2003) ‘황태자의 첫사랑’(2004) ‘어느 멋진 날’(2006) 등 주연급 연기자로 성장하는 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08~2008년 방영된 사극 ‘왕과 나’에서 정현왕후 윤씨 역을 맡은 이진. [사진 SBS]

2008~2008년 방영된 사극 ‘왕과 나’에서 정현왕후 윤씨 역을 맡은 이진. [사진 SBS]

연기자 이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것은 ‘왕과 나’(2007~2008) 부터. ‘대풍수’(2012~2013) 등 사극에서 의외로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일일극 ‘빛나는 로맨스’(2013~2014)에서 첫 주연을 맡기도 했다. 함께 일한 제작진마다 입을 모아 그녀의 성실함을 칭찬했을 정도다.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뒤로 물러서지 않고 차근차근 한 계단씩 밟아온 노력파로서 근성이 빛을 발한 것이다. 하지만 2016년 결혼 후 남편의 직장이 있는 미국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작품 활동도 뜸해졌다.

어찌 보면 ‘캠핑클럽’으로 더 많은 사람이 그녀의 진가를 알아본 지금이야말로 다시 꿈을 펼칠 수 있는 적기가 아닐까. 그때는 1세대 아이돌로서 지켜야 할 것도, 감춰야 할 것도 많은, 한마디로 제약이 많은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솔직하고 담백한 이들이 더 사랑받는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람에겐 저마다 맞는 때가 따로 있다는 말을 본인들도 촬영하며 실감하고 있지 않을까. 당초 ‘캠핑클럽’의 가장 큰 목적은 네 사람이 모여 핑클의 21주년 기념 공연 진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그 공연이 이진이 다시 한번 꽃피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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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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