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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왕 후보 원태인 "삼적화? 야구만 잘 한다면 좋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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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왕 후보 삼성 라이온즈 투수 원태인. [연합뉴스]

신인왕 후보 삼성 라이온즈 투수 원태인. [연합뉴스]

삼린이(삼성 어린이 팬) 출신, 잘 생긴 외모, 그를 뒷받침하는 실력. 삼성 라이온즈 팬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투수 원태인(19)일 것이다. 시즌 초 불펜투수로 시작해 선발 자리까지 꿰찬 원태인은 LG 정우영(20)과 함께 신인왕 후보로 꼽히고 있다. 구자욱(2015년) 이후 4년 만의 삼성 출신 신인왕을 향해 순항중인 원태인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만났다.

잘 알려진 대로 원태인은 '야구인 2세'다. 원태인의 아버지는 원민구(62) 전 협성경복중 감독이다. 원 감독은 1984년 영남대를 졸업하고, 삼성 지명을 받았으나 프로가 아닌 실업야구 제일은행에 뛰었다. 그는 1997년부터 22년간 경복중 야구부를 이끌며 김상수, 구자욱(이상 삼성), 이재학(NC) 등을 지도했다. 장남 원태진(34)도 경기고를 졸업해 2005년 SK에 지명됐으나 부상으로 1년 만에 은퇴했고, 코치로 아버지를 도왔다. 원태인은 6살 때부터 아버지와 태진을 따라 야구장에 다녔다. 원태인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집에서도 야구공을 던졌다고 하더라. 아버지를 따라가 야구장에 가다보니 자연스럽게 야구선수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원태인은 '야구 신동'으로 불렸다. 중학교 형들과 함께 훈련해도 뒤처지지 않는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삼성에 입단한 뒤 어렸을 때 TV 프로에 출연한 모습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원태인은 "나도 이따금 동영상을 본다. 나도 모르는 영상들도 있어 신기하다"고 웃었다. 원태인은 "(김)상수(삼성) 형 아버님과 아버지가 같은 곳에서 군복무를 하셔서 친하시다. 아버지들끼리 '10년 뒤에 상수랑 태인이랑 같이 뛰면 신기하겠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현실로 이뤄드린 것 같아 뿌듯하다. 아버지께 잘 하는 모습을 오래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프로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버지와 형의 보살핌 덕분이다. 원태인은 "중학생 때는 학교에서 아버지를 '감독님', 형을 '코치님'이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같은 선수로 나를 대하고 더 엄격하게 대하셨다"며 "나도 이해했다. 야구장에서 '아빠'라고 부르면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 좋은 시선으로 볼 수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원태인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 아버지와 형이 나를 위해 정말 많이 애를 써주셨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아버지나 저나 힘든 건 똑같으니까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더 밝게 행동했다. 나중에 기사를 통해 아버지가 '그런게 고맙다'고 하시더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북고에 걸린 원태인 신인왕 기원 현수막. [사진 삼성 라이온즈]

경북고에 걸린 원태인 신인왕 기원 현수막. [사진 삼성 라이온즈]

경복중-경북고 시절 뛰어난 재능을 보인 원태인은 아버지를 지명했던 삼성으로부터 1차 지명을 받았다. 야구선수가 되면서 그린 첫 번째 꿈을 이룬 것이다. 원태인은 "삼성이란 팀을 알고, 1차지명제도란 것을 안 뒤부터 삼성에 가는 게 꿈이었다. 다른 지방 스카웃 제안도 많았는데 그러면 삼성 1차지명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거절했다. 삼성 라이온즈 선발투수란 큰 꿈이자 목표를 이뤄서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원민구 감독은 올시즌 아들이 선발등판하는 날엔 홈,원정 가릴 것 없이 경기장을 찾는다. 후반기 첫 승리를 따낸 28일 대구 한화전도 마찬가지였다. 원태인은 "효도를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했다.

지금도 형은 원태인에게 큰 존재다. 원태인은 "중학교 때까진 형에게 많이 혼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버지보단 형이 편하니까 지금도 나는 형에게 많이 기대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형이 '나는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고, 지금 니가 겪는 것들을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네 감정을 모른다.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주겠지만 너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형에게 너무 고맙다"고 형제애를 드러냈다.

개막 이후 불펜투수로 시즌을 맞이한 원태인은 외국인 투수들의 부진과 부상으로 선발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보란듯이 그 자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전반기 19경기(13선발)에 등판해 3승 5패 2홀드, 평균자책점 2.86이란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유독 승운이 따르지 않아 승리는 많지 않았지만 삼성 선발 중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원태인은 "마음을 편하게 먹은 덕분에 잘 된 것 같다. 사실 선발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기뻤다. 찬스를 놓치면 언제 올지 모르니까 잡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원태인은 후반기 첫 등판에서 6이닝 3실점 호투를 펼쳐 시즌 4승을 따냈다.

1차지명에서 삼성에 선택된 원태인(가운데)

1차지명에서 삼성에 선택된 원태인(가운데)

보통 어린 투수들은 더 빠르고 힘있는 공을 뿌리려는 욕심이 강하다. 하지만 원태인은 다르다. 고교시절엔 최고 시속 150㎞를 뿌렸지만 프로에 온 뒤엔 140㎞대 중반 정도의 공을 던지고 있다. 원태인은 "고교 때는 한가운데로 던져도 안 맞았다. 아무리 공이 빨라도 가운데 몰리면 프로에선 안 통하더라. 그걸 보면서 생각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원태인은 "솔직히 제구 위주 투구가 재밌진 않다. 그러나 계속해서 145㎞가 넘는 공을 던질 순 없다"고 했다.

자연스러운 본보기도 팀에 있다. 바로 삼성 프랜차이즈 최다승(132승)을 거둔 윤성환(38)이다. "윤성환 선배님이 시범경기 땐 안 좋았다. 그런데 막상 시즌을 시작하니 제구가 좋아졌다. '프로는 역시 제구력이구나'란 걸 느꼈다. 전력분석을 해도 제구에 신경썼을 때가 더 좋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구에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원태인은 "올스타 휴식기 동안 코치님과 상의해서 힘을 좀 더 쓰는 쪽으로 연구했다. 구속도 자연스럽게 조금 더 올라갈 것 같다"고 했다.

포수 강민호에게도 고마움을 드러냈다. 원태인은 "민호 형이 후배인 내게 먼저 다가와줬다. 대한민국 최고 포수와 호흡을 맞춘다는 건 내게 행운"이라고 했다. 그는 "민호 형이 있어서 아무래도 마운드에선 편해진다. 큰 고민 없이 던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내가 기죽어 있으면 농담을 하고, 잘 던질 땐 '끝까지 집중하자'고 주의를 준다"고 했다. 원태인은 "6일 창원 NC전(6이닝 2실점 승패없음)이 끝나고 민호 형이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형이 미안하다. 시즌 끝까지 잘 해보자'고요. 선배가 제가 승을 못 딴 걸 배려해주시니까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원태인은 실력 못잖게 잘생긴 얼굴 덕분에 여성 팬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 그는 "외모에 대한 칭찬도 감사하고, 기분좋다. 하지만 야구로 칭찬을 받는 게 훨씬 더 기분이 좋다"고 웃었다. 사실 삼성 라이온즈엔 '삼적화(삼성 최적화의 줄임말)'란 말이 있다. 삼성에 입단한 뒤 체중이 불어서 어린 시절 미모를 잃어버린 선수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원태인은 "아직 1년차니까 모르겠다"고 미소지으며 "사실 체중조절을 하고 있다. 전지훈련 때는 92㎏이었는데 지금은 90㎏을 유지하고 있다"며 "그래도 야구를 잘 하게 된다면 삼적화도 괜찮다"고 했다.

원태인과 함께 신인왕 후보로 꼽히는 LG 트윈스 정우영. [연합뉴스]

원태인과 함께 신인왕 후보로 꼽히는 LG 트윈스 정우영. [연합뉴스]

원태인은 LG 정우영과 함께 신인왕 2파전을 벌이고 있다. 시즌 초엔 정우영이 앞서가는 듯 했으나 원태인이 선발로 자리잡으면서 추격에 성공했다. 남은 후반기 성적에 따라 향방이 갈릴 전망이다. 하지만 원태인에게 신인왕은 그다지 중요한 목표가 아니다. 원태인은 "꼭 하고 싶다면 우영이가 하라고 해야죠"라면서 "생애 한 번 뿐인 기회니까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신인왕만 생각하고 던졌다면 결과가 안 좋았을 것이다. 팀 성적이 먼저"라고 했다. 이어 "삼린이 출신이라 삼성 왕조 시절을 기억한다. 지난 몇 년은 참 안타까웠다"며 "올해는 가을 야구를 하고, 리빌딩이 끝나면 우승까지 이루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대구=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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