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ㆍ일 구름, 한ㆍ일 가뭄, 북ㆍ미 소나기…ARF 기상도

중앙일보

입력 2019.07.30 15:16

업데이트 2019.07.30 19:06

 31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태국 방콕에 한ㆍ미ㆍ중ㆍ일ㆍ러와 동남아국가연합(ASEAN) 등 20여 개국 외교장관들이 집결한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AMM) 참석을 위해서다. 매해 열리는 연례 다자회의지만, 한국 입장에서 이번에는 ‘외교 난이도’가 높다. 일본의 경제 보복과 중ㆍ러의 영공 침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도발 등 한국 외교가 다층적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어느 때보다 치열한 외교전을 치러내야 한다. 주요 회담의 기상도를 예측해봤다.

31일부터 내달 3일까지 태국서 ARF 포럼
한·일 갈등 속 한·미·일 외교수장 한 자리에
北이용호 불참 통보…북ㆍ미, 남북 만남 불발

한ㆍ미ㆍ일 외교장관 회담 ‘구름 많음’

강경화 외교부 장관(앞줄 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오른쪽) 미국 국무장관, 고노 다로(가운데) 일본 외무상이 지난해 6월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갖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앞줄 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오른쪽) 미국 국무장관, 고노 다로(가운데) 일본 외무상이 지난해 6월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갖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번 ARF에서 3국 외교장관 회담의 성사 여부는 고조되는 한ㆍ일 갈등 국면에서 미국이 어떤 역할을 할 지 확인할 수 있는 가늠자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신임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최근 방한했을 때 한ㆍ미 간에는 이미 3국 장관회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앞서 차관보급 3국 회담은 거부했던 일본도 이번에는 다소 다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각의 결정이 2일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회담 성사 여부만큼 시점도 중요하다.

강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외상은 31일 오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일 오전 현지에 도착한다. 이에 따라 1~2일 중으로 일정을 조율중이지만, 회의 기간이 짧은 데다 3국 모두 아세안 국가 외교장관들과 각기 회담 일정이 잡혀 있어서 세 장관이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3국 장관이 한 자리에 모이더라도 얼마나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논의의 장은 마련하지만, 적극 중재하지 않는다는 미국 입장에는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어렵게 만났어도 원론적 논의를 되풀이하며 꿉꿉한 장마철같은 자리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26일(현지시간) 폼페이오 장관의 ARF 참석과 관련한 전화 회견에서 “우리는 한국과 일본이 생산적이고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법으로 갈등을 풀도록 장려하는(incentivize)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ㆍ일 외교장관 회담 ‘가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뉴스1]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뉴스1]

강 장관과 고노 외상은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후인 지난 26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조속히 다자회의 등 각종 계기를 활용해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해 나가자”고 합의했다. 사실상 ARF를 계기로 한 양자회담 가능성을 열어놨다. 한ㆍ일 외교장관 회담이 이뤄지면 1일이 유력하다고 한다.

정식 회담이 아니어도 두 장관이 만날 기회는 있다. 1일 저녁 환영 갈라 만찬, 2일 오전 아세안+3(한ㆍ중ㆍ일) 외교장관회의 및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2일 오후 ARF 회의에 강 장관과 고노 외상이 모두 참석한다. 약식회담도 가능하다.

하지만 만나도 양국 관계에 쉽게 단비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두 장관은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도 짧게 회동했고, 불과 사흘 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나왔다. 고노 외상은 강 장관에게 미리 언질조차 주지 않았는데, 실제 외무성도 발표 전날에야 정확한 내용을 알았다고 한다. 일본에서 한국 때리기를 주도하는 것은 총리 관저이고, 한국에서는 청와대가 대일 전선을 이끌고 있다. 외교 수장끼리 만나 갈등을 푸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일본 정부가 2일 화이트 국가 배제 조치에 나설 게 확실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당일이나 그 직전(1일)에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갖는 데 부담감을 느낀다는 얘기도 있다.

정부는 양자회담과 별개로 다자회의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 문제를 제기할 방침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적절한 계기에 참석국들에게 우리 입장을 표명하게 될 것”이라며 “다자회의 협의체마다 결과물로 의장성명 등을 채택하는데, 이런 우리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을 직접 거론하기보다는 자유롭고 공정한 세계 무역 질서의 중요성 등 원칙을 강조하며 일본 조치의 부당함을 부각한다는 계획이다. 화이트 국가 관련 각의 결정에 따라 정부 입장 표명의 강도도 달라질 전망이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 [연합뉴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 [연합뉴스]

북ㆍ미 ‘예측불허 소나기’

지난 2017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강경화 장관과 이용호 북한 외무상의 모습. 올해 북한은 이 외무상이 ARF에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주최측에 통보했다. [연합뉴스]

지난 2017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강경화 장관과 이용호 북한 외무상의 모습. 올해 북한은 이 외무상이 ARF에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주최측에 통보했다. [연합뉴스]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불참하면서 북ㆍ미 및 남북 간 장관 회담은 불발됐다. 앞서 북한은 주최국인 태국 측에 이 외무상이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북한에서 고위급 실무자가 참석한다면 북·미 간 접촉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이번에 미국에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참석하는 만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올 경우 회동 가능성이 열린다. 다만 북한은 그간 ARF에 통상 외무성 국제기구국 인사가 참석했다. 최선희는 물론 대미 라인이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 교도통신은 30일 “이번 ARF에 북한 측 대표로 김제봉 주태국 대사가 참석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김 대사는 2009년 이후 10년 만에 ARF에 불참하는 이용호 외무상 대신 참석하게 됐다.

북한이 연일 한국은 빠지라고 공개 비난하며 단거리 미사일 도발까지 하는 상황에서 남북 접촉은 더 힘들어 보인다. 북한이 참석하는 유일한 행사인 ARF와 갈라 만찬 등에서 북측 대표가 폼페이오 장관이나 강 장관과 조우할 기회는 있다. 현재 실무협상 시작을 앞두고 북한이 미사일까지 쏘며 난항을 겪고 있지만 언제든 반짝 갤 수 있는 소나기처럼 예측불가한 게 북ㆍ미 관계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성 김 주필리핀 대사가 갑자기 ARF 회의장에서 이용호 외무상에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는 돌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방콕=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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