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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타, 그 운명의 현장에 서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통일자원봉사대원」두사람이 판문점을 돌파하는 장면을 텔리비전화면으로 보노라니 문득 지난6월 어렵사리 방문한 얄타가 생각났다. 그런 혼란스러운 순간에 정신적인사치를 하자고해서가 아니라 얄타와 판문점을 잇는 역사의 악연때문이다.
미·영·소 3거두회담과 관련해 역사책에서 읽은 얄타는 가마득히 구름위에나 있을법한 갈수없는 신비의 도시로만 생각되었다. 그렇지않고서야 어떻게 그 도시의 이름을 딴 전후체제라는 것이 거의 반세기나 지속되면서 우리로 하여금 아직도 『우리의 소망은 통일』을 외치게 할수있단 말인가.
독일철학자 헤겔은 「절대정신」이라는 하느님같은 존재가 있어가지고 자신이 미리 세운 계획을 지상의 하수인을 시켜 실현하는것이 바로 역사라고 주장하는것 같다. 백마를 타고 전선으로 가는 나폴레옹을 그가 「마상의 절대정신」이라고 부른 것도 그런역사이론에 따라서다. 1945년2월 얄타에 모인 루스벨트, 처칠, 그리고 스탈린도 무력한 약소국의 시민들에게는 절대정신의 하수인들쯤으로 보였을는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44년뒤 마침내 한국인에게도 제한적으로 개방된 얄타는 반신반인의 도시가 아니라 인간의도시였다. 그리고 그해 2월의 얄타는 죽음을 눈앞에 둔 몽롱한 정신의 루스벨트와 열강 소련의 꿈에 도취된 스탈린과 전후의 세계를 내다보는 사안을 가지고도 스탈린의 횡재를 질투밖에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처칠이 벌이는 냉혹한 현실정치의 무대일 뿐이었다.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로 불과 2시간거리. 흑해로 조심스럽게 돌출한 크리미아반도의 끄트머리에 엎드려 있는 얄타. 아이페트리산이 북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온화한 지중해성기후는 인구10만의 이절경의 도시에 연간 7백만명의 휴양객을 불러들인다.
안톤 체호프가 『벚나무 밭』, 『세자매』등의 명작을 쓴곳도 얄타다. 3거두회담이 열린 리바디아궁은 로마노프왕조 최후의 황제였던 니콜라이2세가 1911년 여름별장으로 지었지만 불과 6년의 영화끝에 볼셰비키혁명을 만나 레닌은 레닌답게 이 백악의 궁전을 노동자요양원으로 만들어버렸다.
3거두가 여덟차례의 회담을 가진 화이트흘과 루스벨트의 숙소로 쓰인 서재, 비밀협정에 서명한뒤 세사람이 역사책에 자주 나오는 그사진을 찍은 정원을 거닐면서 우연이라는것과 역사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때 루스벨트의 건강은 천의 얼굴을 가진 스탈린의 술수를 감당할 정도가 못되었다고 해서 그뒤오랫동안 미국조야에서 논쟁거리가되었다. 특히 공화당측은 정신을 제대로 가누지못한 루스벨트가 스탈린의 보트카축배와 요설에 홀려 동북아시아와 동구를 소련에 헌납했다고 비난했다. 사그라져가던 루스벨트의 건강까지 역사의 필연일 이유가 없다면 왕성한 정신력의 루스벨트였다면 신탁통치와 그뒤의 38선설정등 한국문제처리가 달라질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안타까운 의문을 제기해 본다.
리바디아궁은 우리에게는 우리의 운명이 남의 손에 의해서, 남의 이익에 따라서 결정된 역사교실로 지금도 그때 그대로 남아있다. 얄타회담전날 미군은 마닐라에 입성했고, 사이판도에 기지를 둔 미전략공군은 일본본토를 폭격하고 있었다. 그래도 루스벨트는 일본의 전쟁수행능력을 과대평가하여 소련군의 참전이 없으면 대일전쟁은 1947년까지 계속될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정세오판의 대가를 엉뚱하게 한국과 중국이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것은 전후사가 말해준다. 8월8일 광도에 원폭, 10일 소련의 대일선전포고였으니 우리에게는 얼마나 야속한 역사인가. 얄타에서 루스벨트는 소련의 대일참전을 얻고 스탈린은 동북아시아를 얻은 꼴이다.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 리바디아궁 정원에서서 얄타체제의 퇴색을 음미한다. 그리고 한국에 있어서 얄타의 극복은 자주적·민주적이어야할 당위성을 확인한다. 이념서적 몇권 읽은 지식을 가지고 마르크스, 레닌은 고사하고 스탈린조차도 전율할 김일성의 장기·세습독재의 아늑한품에서 남한체제를 반통일세력이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것은 자주적도 민주적도 아닌, 역사의 평형감각을 잃은 행위다.
50년의 정치풍상을 겪은 얄타는 세계의 도처에서 형체만 남겨놓고있는데 유독 한반도에서만 참으로 천천히 죽으려고 한다. 북한당국과 우리의 「통일 일꾼」들은 판문점같은 민감한 지역에서 보란듯이 휴전협정을 위반하는것이 얄타를 자주적, 민주적, 민족적으로 극복하는데 어떤 역기능을 할것인가를 깊이 반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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