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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문 대통령, 친일파 후손 변호”…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중앙일보

입력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5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문재인 대통령은 친일파 후손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재산 환수 소송의 변호를 했다”고 주장했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대응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한국당을 향해 친일 공세를 하는 중에 나온 역공이어서 화제가 됐다.

친일파 재산 환수 소송?

나 원내대표가 언급한 소송은 친일 논란이 있는 부산의 기업인 고(故) 김지태씨의 후손이 제기한 소송을 말한다. 김씨의 자녀들은 1984년 김씨가 남긴 재산을 상속 받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상속세를 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의 변호인이 당시 부산에서 세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소송을 승리로 이끌었고, 김씨 자녀들은 국가로부터 상속세 117억원을 돌려받았다.

'법무법인 부산' 간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이 보인다. 법무법인 부산 홈페이지

'법무법인 부산' 간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이 보인다. 법무법인 부산 홈페이지

노 전 대통령과 김씨 사이엔 인연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김씨가 만든 부일장학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김씨를 “내 인생에 디딤돌을 놓아준 은인”이라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은 그 인연으로 승소사례금으로 1억여원을 받기로 돼 있었지만 4000만원만 받았다고 한다.

3년 뒤인 1987년 김씨 자녀들은 국가를 상대로 법인세와 특별부가세 취소 소송을 제기한다. 상속세 취소에 따라 법인세와 특별부가세도 잘못 부과됐다는 취지였다. 변호인은 법무법인 부산에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일하던 문 대통령이었다. 이 소송도 김씨 자녀들이 이겼다.

따라서 엄밀하게 보면 두 소송 모두 재산환수 소송은 아니었다. 나 원내대표는 26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착각하고 잘못 말한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김지태 씨의 생점 모습. [중앙포토]

김지태 씨의 생점 모습. [중앙포토]

김지태는 친일파?

‘김씨가 친일파냐’는 질문은 또 다른 쟁점이다.

김씨는 1927년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에 입사했다. 동척은 일제가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회사다. 김씨는 동척에서 5년 일하고 폐결핵 때문에 퇴사했다. 그의 이름은 해방 직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명단, 2005년 노무현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명단, 민간 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다. 동척의 하급 직원이어 ‘적극적 친일’을 할 위치가 아니었고 독립운동단체 신간회와 조선청년동맹 부산지부 간부로 활동했다는 점이 고려됐다고 한다.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를 만든 고(故) 김지태 씨의 유족이 2012년 10월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를 만든 고(故) 김지태 씨의 유족이 2012년 10월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공식 명단과 관계 없이 김씨를 친일파로 보는 시각도 분명 있다. 동척을 그만두면서 동척으로부터 울산의 논과 밭 2만평을 10년 간 나눠 갚는 조건으로 불하받아서다. 김씨 평전인 『문항라 저고리는 비에 젖지 않았다』에는 “(김씨는) 동척이 조선인에게 땅을 불하해 주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엄청난 특혜가 아닐 수 없었다”라고 돼 있다. 김씨는 태평양 전쟁 중인 일본에게 군수품을 대는 사업도 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쟁점은 친일파 규정의 문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드라이브 속에서 친일파의 범주는 대폭 확장됐다. 검찰서기·금융조합·교사 등의 경력까지 문제가 됐다. 당시 “그런 기준이라면 일제 시대에 친일파 아니었던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는 반박도 나왔다. 친일과 반일을 이분법으로 딱 잘라 나누는 방식도 문제가 됐다.

2004년 8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정수장학회 진상조사단' 간담회에서 고 김지태씨 유족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4년 8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정수장학회 진상조사단' 간담회에서 고 김지태씨 유족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런 과정 속에서 ‘친일파 낙인’이 상대 진영을 공격하거나 자신을 방어하는 도구로 이용된 측면이 있다. 김씨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후보이던 2012년 야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씨가 만든 부일장학회 등 재산을 빼앗다시피해 정수장학회를 만들었다며 박 후보를 공격했다. 그러자 박 후보 측이 내세운 방어 논리가 “김씨는 친일파다. 친일 재산 청산 차원이었다”였다.

나 원내대표는 “내 발언은 누가 친일파라고 따지고 싶은 게 아니다. 국난 상황인 지금 철부지 어린 애처럼 친일·반일 논쟁할 때냐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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