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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산모 가짜 진단서로 청약당첨···건강보험 새나간 돈 66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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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건강보험 신분 확인 제도가 허위 임신진단서 발급 등에 악용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이미지 사진 [중앙포토]

허술한 건강보험 신분 확인 제도가 허위 임신진단서 발급 등에 악용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이미지 사진 [중앙포토]

다른 사람의 건강보험증을 대여하거나 도용해 부정사용했다가 붙잡힌 사례가 2014~2018년 5997명이고 이들이 쓴 건강보험 급여가 66억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건강보험 부정사용 사례 분석 자료를 25일 공개했다.

건강보험공단은 부정 사용자들이 5년 간 쓴 건강보험 진료비 65억7800만원 가운데 41억8400만원만 환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국내 모든 의료기관에선 이름ㆍ주민번호만 제시하면 별도의 신분 확인 절차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 명의로 진료를 받더라도 잡아낼 방법이 없다. 이렇게 허술한 건강보험 신분 확인 제도는 부동산 브로커들에게 악용되기도 한다.

부동산 투기 브로커 A씨는 채팅 어플을 통해 신혼부부와 임신부를 모집했다. 그는 이렇게 모집된 신혼 부부에게 1200만원을 주고 이들 부부의 청약통장을 사들였다. A씨는 임신 중인 여성에게100만원을 주면서 청약통장 명의자인 신혼 부부 아내 B씨의 신분증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게 했다. 병원에선 임신 여성이 B씨인 줄 알았고,  B씨 이름으로 임신진단서를 발급해줬다. 브로커 A씨는 이렇게 받아낸 임신진단서를 청약 서류로 제출해 경기도 용인의 아파트 신혼부부 특별공급 청약에 당첨됐다. 그는 이 아파트를 팔아 1억5000만 원의 프리미엄을 챙겼다.

브로커 A씨는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특사경)이 지난 4월~7월 진행한 부동산 기획수사에서 적발됐다. 25일 특사경에 따르면 불법 전매와 부정 청약에 가담한 180명이 적발됐다. 이 중 신혼부부ㆍ다자녀 특별공급 분양에 대리 산모를 내세워 받아낸 임신진단서 제출한 사례가 9건으로 드러났다.
특사경의 김선호 수사관은 “수사 당시에 실제 청약자를 데리고 병원에 갔더니 병원에서 ‘임신진단서를 받아간 분이 이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건강보험의 신분 확인 절차가 허술하다보니 병원은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신분증 사진과 본인 얼굴이 많이 다르다보니 신분증 확인도 의미 없다고 한다. 경기도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런 사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의원을 운영 중인 이모(42)씨는 “환자가 작심하고 신분을 속이려고 하면 의사는 속을 수 밖에 없다. 다른 사람 이름ㆍ주민번호를 외워서 대면 어떻게 걸러내겠냐”며 “건보공단에선 신분확인할 대안도 주지 않고 병원 탓만 한다”고 말했다.

정춘숙 의원은 “청약에 필요한 임신진단서를 제출하기 위해 대리 산모로 진단서 받는 사례는 건강보험 부정 사용이 쉽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례다. 5년간 건강보험 부정 사용으로 적발된 사람은 5997명이지만 실제 부정사용 규모가 얼마나 많을지 추정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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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부정사용 방지를 위해 지난해 12월 건강보험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도용자 신고 포상금 제도를 도입하고, 부정수급자 처벌도 강화됐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건강보험 가입자 신분 확인을 강화하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의원은 “지문 인식 시스템 도입 등 확실한 신분 확인 절차를 마련해서 건강보험제도를 악용하는 이들을 막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건보공단은 2015년 지문ㆍ홍채 등 생체인식 기술을 활용한 전자 건강보험증 제도 도입을 검토했지만 시민단체 반대 등으로 무산됐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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