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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아우라…유난히 빛나는 그 남자의 금목걸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22)

주얼리는 ‘반짝이는 사진첩’ 같은 존재입니다. 주얼리는 일상생활 속의 물건 중에서도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담고 있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문득 서랍 속 한쪽에 있던 반지를 보면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목걸이를 보면 그 목걸이에 얽힌 사람이 생각나 그리움에 사무치기도 합니다. 당신의 ‘내 마음의 보석상자’가 궁금합니다. 내 마음의 보석상자를 열어 소중한 주얼리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승준 씨의 금목걸이는 9명 사나이의 우정이 담긴 물건이다. 그는 절친한 친구들이 마련해 준 240만 원으로 이 목걸이를 샀다.

전승준 씨의 금목걸이는 9명 사나이의 우정이 담긴 물건이다. 그는 절친한 친구들이 마련해 준 240만 원으로 이 목걸이를 샀다.

어느 모임에서 처음 만난 50대 중반의 남성인 전승준 씨는 단정하면서도,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이 첫인상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연륜에 맞게 조금은 근엄해 보이는 분이었는데, 목에 금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번쩍거리는 금목걸이가 조금은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금목걸이에 관해 물었다. 그는 “절친한 친구 9명과의 우정이 담긴 목걸이”라면서 사연을 들려줬다. 순간 뜬금없어 보이던 그 금목걸이로 인해 주위가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50대 중반 9명 사나이의 우정

그는 대학 시절 만난 친구 9명과 지금도 연락하면서 지낸다고 한다. 아니, 그냥 연락하고 지내는 정도가 아니라, “9명이 없는 내 인생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더 자주 만나는 그들은 이벤트를 하나 진행했다고 한다. 나이 반백살 생일을 맞는 친구에게 특별한 선물을 했다는 것이다. 1인당 30만원을 모아 240만원을 생일인 한명에게 주는 이벤트였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있었는데, 240만원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써선 안 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친구에게, 또는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 이벤트였던 셈이다.

9명의 친구들(위)과 50세 생일날 친구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받는 장면(아래). [사진 전승준]

9명의 친구들(위)과 50세 생일날 친구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받는 장면(아래). [사진 전승준]

재밌는 건 9명이 240만원을 쓰는 방법이 각기 달랐다는 점이다. 각자의 성향에 맞게 어떤 사람은 모임에서 한턱내는데 240만원을 단숨에 써버렸다고 했다. 다른 어떤 사람은 자전거를 샀고, 혼자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9명 중 한명, 편의상 A 씨는 자기 자신에게 돈을 쓰는 방법을 몰라 그 돈을 쓰는데 1년 넘게 걸리기도 했다고 한다. 늘 자녀와 가정을 위해 헌신하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분이 아마 A 씨 뿐은 아닐 것이다.

그의 선택은 금목걸이를 사는 것이었다. 120만 원짜리라고 했다. 나머지 절반은 새 안경을 사는 것과 피부관리를 하는 데 썼다고 한다. 그의 직업은 소아치과 전문의였다. 그는 왜 금목걸이를 사는 것으로 결정했을까. 그가 240만원을 쓰는데 고려해야 했던 사항은 크게 두 가지였다고 한다.

첫째, 아내가 싫어하지 않을 만한 것을 선택하는 것. 둘째, 80세까지 현역에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그는 80세까지 현역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환자에게 주는 이미지 관리가 중요하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래서 평소에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피부 관리를 선택했다고 한다.

아내가 골라준 금목걸이

아내가 골라준 그 남자의 금목걸이. 볼드한 체인 대신 매일 착용해도 부담 없을 디자인의 제품을 골랐다.

아내가 골라준 그 남자의 금목걸이. 볼드한 체인 대신 매일 착용해도 부담 없을 디자인의 제품을 골랐다.

금목걸이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그는 평소 목욕탕에서 금목걸이를 찬 남성을 여럿 보았다. 항상 모범생이라는 틀 안에 살던 그에겐 그게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나도…”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됐다는데, 어쨌든 그에겐 상상 속의 물건 같은 것이었다.

그런 그는 40세 되던 해 대장암을 앓았다. 약 1년간 암과 싸워 결국은 이겨냈다. 암 투병에서 승리한 것은 누구에게든 큰 변화일 것이다. 암 투병 후의 삶은 제2의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런데 50세 생일에 오롯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돈, 240만원이 생긴 순간, 그는 금목걸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한다. 예전에는 상상 속의 물건이었지만, 직접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때까지 목걸이나 주얼리를 사 본 경험이 전무했던 그는 주얼리를 좀 안다는 친구에게도 물어보고, 종로에 있는 주얼리 가게와 주위에 있는 금방에 들러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시세를 알아보았다. 두꺼운 체인을 원했지만, 생각보다 가격이 만만찮았다. 아내도 탐탁지 않아 할 것 같아, 아예 목걸이의 디자인 선택은 아내에게 일임했다고 한다.

소아치과 전문의인 전승준 씨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금목걸이에 관한 사연을 들었다. 그에게 금목걸이는 상상을 실현시켜준 매개체이자 '자유'를 상징했다.

소아치과 전문의인 전승준 씨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금목걸이에 관한 사연을 들었다. 그에게 금목걸이는 상상을 실현시켜준 매개체이자 '자유'를 상징했다.

결국 아내와 같이 집 근처 백화점에서 튀지 않는 디자인의 제품을 샀고, 그래서 마련한 것이 지금의 목걸이였다. 이후로 그는 목걸이를 매일 착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와 대화하는 동안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아내, 친구, 환자였다. 그에게 “목걸이의 의미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이라고 물었다. 그는 “제2의 삶을 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도전의 표현이면서 나 자신의 ‘자유’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혹시 어떤 분들은, “요즘같이 팍팍한 세상에 누구나 다 240만원을 자기를 위해 쓸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반론을 하실지 모르겠다. 9명의 친구가 “오로지 너를 위해서 한번 써봐라”고 모은 우정의 종잣돈으로, 그는 의미가 담긴 물건을 하나 찾으려고 행복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금목걸이였으니, 그런 과정 자체가 소중한 의미가 아닐까. ‘240만’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240만에서 동그라미 하나가 빠지면 어떤가. ‘내 마음의 보석상자’에 그런 의미 있는 물건 하나쯤은 담아 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민은미 주얼리 마켓 리서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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