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붐@월드컵 <11·끝> 지단, 아무 해명도 하지 않길 바랐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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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났다.

4년 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독일의 축구 팬들은 월드컵 없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걱정을 한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더위 속에 매일 호텔에서 호텔로 전전하며 원 없이 축구에 빠져 보낸 한 달 반이었다. 그런데 막상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으니 개운하지가 않다.

결승전에서 나온 지단의 퇴장. 맘껏 축복해 주고 싶었던 그의 마지막 경기였는데 아쉽다. 나는 그가 아무 해명도 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동료 해설위원(신문선)의 도중하차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내 경험이 떠올라 더 착잡하고 힘들었다(※차 감독은 프랑스 월드컵 대표 감독 시절 멕시코에 1-3, 네덜란드에 0-5로 지자 월드컵 도중에 경질됐었다). 온 가족이 힘들었고 나를 사랑하는 팬들까지 가슴 아파했던 기억들. 그걸 견딘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내가 맡고 있는 프로축구 수원 삼성의 부진한 성적표다. 상식이나 기준에 어긋나는 일을 과감하게 해 버릴 만큼 배짱이 없는 나에게 월드컵 해설은 정말 큰 부담이었다. 여러 가지 당위성을 들이대며 나 자신을 설득해 보지만 역시 당당할 수는 없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모두 독일로 몰려가 북적대다 썰물처럼 빠져나온 그 자리에 아들 두리를 혼자 남겨 두고 오니 그것도 왠지 마음이 아리다.

클린스만의 독일 대표팀 감독직 거부. 미국 영주권자인 그가 독일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법으로 정해져 있다.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하는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를 충족시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미국인 아내와 아이들, 그는 가족을 택했다. 100명이 넘는 기자가 그에게 한마디라도 더 묻고 싶어 호텔 로비를 맴도는데, 두리가 있는 방으로 와 따로 인터뷰를 해 준 클린스만. 그 역시 따뜻한 가정을 가진 아버지이기에 아들 같은 두리의 대표팀 탈락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고마울 뿐이다.

베켄바우어. 한때는 독일에서 태어난 당신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당신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가 스타를 만들고 아낄 줄 아는 독일 국민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했었지. 그러나 25년여의 세월을 지켜본 지금. 이제는 당신처럼 너그럽고 따뜻한 스타를 가진 독일이 부럽네. 또 당신처럼 많은 것을 팬들에게 돌려주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당신은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늘 따뜻한 눈빛으로 당신의 마음을 전했었지. 그간 당신이 베풀고 쌓아 온 그 많은 사랑과 친절 때문인가. 이상 저온에 월드컵 내내 비가 올 것이며 개막전에 비 올 확률이 80% 이상이라던 기상청 예보도 당신 앞에서는 맥을 못 추더군. 기껏 겨울 코트까지 새로 사게 해놓고서는 개막 이틀 전부터 날씨가 활짝 개는 건 뭔지. 아무튼, 그간 당신이 쌓은 '덕' 덕분에 뜨거운 월드컵을 즐길 수 있었네.

우리 대표 선수들. 나에게는 후배라기보다 아들 같은 존재다. 가나와의 평가전을 지켜볼 때만 해도 주저앉아 버릴까봐 걱정했는데 너희가 포기하지 않아 줘 우리는 힘이 났다. 원정 월드컵에서 1승1무1패의 성적표. 잘한 거야. 다음에는 더 잘하자. 이제는 K-리그에 온 힘을 쏟을 때다. 여기는 관심도, 관중도 적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장 소중한 일터다. 경기장이 조금만 더 북적이고 흥이 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관심을 두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운동장을 찾지 않는 그들을 비난할 수도 없다. 좋은 경기와 따뜻하고 아름다운 일들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수밖에 없다.

그간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중앙일보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진심으로.

차범근 중앙일보 해설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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