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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국서 한국 왜 빼나" 묻자···日 "문제 없을 수도" 자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2일 오전 일본 정부가 한국 기자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었다.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한 뒤 일본 정부가 한국기자들만 따로 부른 것은 처음으로, 특정 사안에 대해 고위 당국자가 직접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국 측이 요청한 국장급 협의에는 응하지 않은 채, 수출 제도를 담당하는 일본 정부의 고위 당국자가 한국 기자들을 상대로 여론전만 펼친 것이다.

보복조치 아니라며 군색한 설명 #'부적절 사안' 있다며 끝까지 함구 #대화 거부하며 여론전 속내 노출

일본 정부 측은 설명회 참석자 수를 1사 1인으로 한정하고, 녹음을 금지하는 등 취재 환경을 제한했다. 기자가 관련 부처 측에 “일본어로 진행되는 만큼 녹음은 필수”라고 여러 차례 제기했지만 끝내 거절당했다. “녹음된 내용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고위 당국자의 설명이기 때문에 녹음은 허용할 수 없다”는 등 설명도 오락가락했다.

이날 설명회는 도쿄에 주재하고 있는 각 언론사 특파원 10여명이 참석했다. 일본 측 당국자가 이번 수출규제 조치의 내용과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특파원들이 질문하는 형식으로 약 1시간 반에 걸쳐 이뤄졌다.

이 당국자는 이번 수출규제 조치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무관하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그러나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등 정부의 핵심 인사가 수출규제 발표 직후 “한국과의 신뢰관계 손상”의 배경으로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까지 만족스러운 답변이 없었다”고 말한 데 대해선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0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0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이 당국자는 “수출규제 조치 배경에 강제징용 문제를 비롯한 한·일 관계가 재료가 됐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하나하나가 한·일 사이에 신뢰관계를 구성한다”고 말했다. 보복 조치와 강제징용 문제와의 연관성을 부정하면서도 실제론 연관성이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답변이 오락가락했다.

‘화이트 국가’ 배제 방침과 관련해선 “한국이 운용하고 있는 제도에 불비(不備)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국이 운용 중인 ‘캐치올 제도’가 일본보다 미흡하다고도 주장했다. 이 당국자는 “한국은 일본에 비해 제도의 운용의 범위가 좁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제도의 불비’로 인해 실제 문제가 발생했는지에 대해선 함구했다. 이 당국자는 “실제 문제가 발생했는지는 모른다. 있을 수도 있고 없었을 수도 있다”는 말까지 했다. 발생하지도 않은 문제를 우려해서 한국에 대한 우대 조치를 박탈했다는 점을 자인한 셈이다. 그러면서 “수출관리 상 발생한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고 ‘부적절한 사안’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끝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또 “2016년 이후 한국 수출당국과 대화가 끊겼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한국 측에 이 문제를 놓고 대화를 요청했는지에 대해선 답변을 피했다. 이 관계자는 “양국 간 협의에 대해선 공표할 수 없다. 일반론적으로 얘기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1일 수출규제 조치가 시행을 불과 사흘 앞두고 갑자기 발표된 데 대한 설명도 궁색했다. 이 관계자는 “시간을 충분히 둘 경우, 수출허가 신청이 몰려들 가능성이 있어서 긴급 대응을 한 것”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 [연합뉴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 [연합뉴스]

이 당국자는 한국이 ‘화이트 국가’에서 배제되더라도 ‘포괄허가’대상이 전부 ‘개별허가’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한국은 4대 국제수출관리 기구에 가입한 국가로, ‘일반포괄허가’와 ‘특별일반포괄허가’ 가운데 ‘특별일반포괄’은 유지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별일반포괄’은 경산성으로부터 관리인증을 받은 기업만 가능한 것으로 한국에 대해서만 우대조치를 취소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웠다.

이날 당국자의 설명은 기자의 의문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 하면서도 명확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아 ‘보복조치’ 의혹을 더 키웠다. 일본 정부는 이번 설명회를 시작으로 앞으로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한 영어 설명회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WTO(세계무역기구)에서의 논의를 염두에 둔 여론전 작업으로 관측된다. 일본 정부는 여론전에 앞서 투명한 절차 공개와 상대국이 납득할만한 근거 제시를 요구하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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