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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추돌사고 뒤 피신하다 옆 차선에서 2차 사고…法,"선행 사고 차량도 책임있다"

중앙일보

입력

2006년 10월 3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 만호리 서해안고속도록 상행선 서해대교에서 발생한 29중 추돌 사고현장.[중앙포토]

2006년 10월 3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 만호리 서해안고속도록 상행선 서해대교에서 발생한 29중 추돌 사고현장.[중앙포토]

 도로 한가운데서 다중 추돌 사고를 당한 사람이 차에서 내려 다른 차선 쪽으로 향하다 옆 차선 차량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면 최초 추돌 사고로 정차 중이던 차들도 이 사고에 대한 책임이 있을까.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두 사고는 별개의 사고이므로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19일 밝혔다.

서해대교 29중 추돌ㆍ화재…역대 최악의 교통사고

2006년 10월 3일 오전 7시 40분쯤. 왕복 6차로인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에서 29중 추돌ㆍ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12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다친 이 사고는 재산 피해액도 40억원에 달했다.

안개가 무척 심해 가시거리 약 60m 정도로 앞이 잘 보이지 않던 그 날, 서해대교 3차로를 과속으로 달리던 25톤 화물 트럭이 안개 때문에 천천히 달리고 있던 1톤 트럭을 보지 못하고 들이받았다. 이 충격으로 25톤 트럭은 2차로에 멈췄다.

멈춰선 트럭은 2차로의 다중 추돌을 불렀다. 당시 2차로에는 트럭 사고를 목격한 한 승용차가 서 있었는데 뒤따라 오던 택시가 이를 들이받았다. 이어 쏘나타 차량이 또 택시를 들이받았다. 연쇄 추돌사고의 시작이었다.

쏘나타 뒷좌석에 타고 있던 조모(당시 64세) 씨는 뒤차가 또 들이받자 안전한 곳으로 피하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3차로 쪽으로 가려고 했지만, 사고로 난 불 때문에 갈 수가 없었고 1차로 쪽으로 가게 됐다. 그런데 그때 1차로를 달리던 자동차 이송용 차량(카캐리어)이 조씨를 치고 말았다. 조씨는 이 사고로 골반이 부서지고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조씨는 카캐리어 차량의 보험사인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이하 화물운송연합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 2009년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화물운송연합회는 조씨에게 1억9200여만원을 물어줬다.

추돌 후 정차한 차들…옆 차선 사고에도 책임 있을까

2006년 10월 3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 만호리 서해안고속도록 상행선 서해대교에서 발생한 29중 추돌 사고현장.[중앙포토]

2006년 10월 3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 만호리 서해안고속도록 상행선 서해대교에서 발생한 29중 추돌 사고현장.[중앙포토]

억대 배상금을 지게 된 카캐리어의 보험사는 첫 사고를 낸 25톤 트럭과 뒤이어 사고를 낸 택시와 쏘나타 차량의 보험사를 상대로 2017년 구상권 청구 소송을 냈다. 이들도 전방주시 의무를 위반하고 사고 뒤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카캐리어 사고의 일부 원인을 제공했으므로 연대 책임이 있다는 취지였다.

1ㆍ2심은 카캐리어 보험사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차로에서 추돌 사고를 낸 운전자들이 전방주시 의무나 안전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있더라도 2차로의 연쇄 추돌과 카캐리어가 조씨를 친 1차로의 사고는 전혀 별개의 사고라고 본 것이다.

직접 부딪히지 않았더라도…"공동불법행위 인정"

 2006년 10월 3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 만호리 서해안고속도록 상행선 서해대교에서 발생한 29중 추돌 사고현장.[중앙포토]

2006년 10월 3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 만호리 서해안고속도록 상행선 서해대교에서 발생한 29중 추돌 사고현장.[중앙포토]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25톤 트럭 운전자가 최초 사고를 내고 설령 안전 조치를 취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더라도 뒤이어 발생한 사고에 대한 과실이 있다고 봤다. 자신이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 발생할 위험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택시와 쏘나타 운전자 역시 사고 후 차량을 고속도로에 그대로 뒀고, 이는 카캐리어 사고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대법원은 이 사고에서 카캐리어와 트럭ㆍ택시ㆍ쏘나타 사이 직접적 충격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과실과 카캐리어 사고의 인과관계가 단절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카캐리어 사고는 시간적ㆍ장소적으로 가깝게 발생한 연쇄 추돌사고의 일부로 봐야 한다“며 이들 세 차량 보험사가 연대배상책임이 있다고 명시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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