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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가입자들이 알고도 행동 안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34)

요즘처럼 금리가 낮아 수익률이 바닥을 칠 때 원리금보장상품으로만 자산을 굴리면 불리하다. 하지만 근로자는 투자지식과 경험이 거의 전무해 새로운 상품을 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중앙포토]

요즘처럼 금리가 낮아 수익률이 바닥을 칠 때 원리금보장상품으로만 자산을 굴리면 불리하다. 하지만 근로자는 투자지식과 경험이 거의 전무해 새로운 상품을 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중앙포토]

근래 들어 퇴직연금제도에서 ‘디폴트 옵션 도입’이라는 언론 기사가 종종 등장한다. 디폴트 옵션이란 확정기여형(DC) 근로자가 별도의 운용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사용자가 사전에 설정한 운용상품에 자동으로 적립금을 운용하는 옵션을 말한다. 그 배경에는 적립금 운용에 관한 지시를 근로자만 할 수 있게 하니, 근로자의 일천한 투자지식이나 경험으로 대부분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자산운용을 하게 된 것이 발단이다.

그런데 문제는 퇴직연금제도 초기 사업자들이 원리금보장상품 고금리 경쟁을 하던 상황이 끝나고, 현재와 같은 저금리가 굳어지면서 수익률이 매우 낮다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퇴직연금 수익률은 불행히도 2018년을 기준으로 지난 3년간 수익률이 2%를 넘어 선 경우가 없었다. 심지어 2018년은 1%를 겨우 넘긴 참담한 실정이었다.

물론 이에는 원리금보장상품만이 원인은 아니다. 하지만 퇴직연금제에 가입한 근로자는 적립금의 ‘돈 가치’가 떨어지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공부하건 귀동냥을 하건 투자를 해서 수익률을 올릴 가능성도 거의 없다. 공부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고 노력대비 결과를 확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귀동냥은 윈리금보장상품의 금리보다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왜 근로자들은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자신의 퇴직적립금을 운용할까?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앞에서 지적했듯이 근로자는 퇴직연금 운용 노하우, 정확히는 투자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하다. 둘째, 이것은 결코 단시간에 좋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셋째,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투자손실 공포의 경험을 가졌다는 것이다. 넷째, 투자 능력이 부족한 근로자를 지원해 줄 시스템이 거의 없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

2017년 삼성생명의 후원으로 열린 위스타트 인성·금융 교실에서 송탄중학교 학생들이 보드게임으로 교육을 받고 있다. 학창 시절의 기본 금융 교육이 실제 삶에서 경제적 요소를 활용하는데 기반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해외 선진국과 달리 의무 교육 기간 동안 금융, 투자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정규 수업이 없다. [사진 위스타트]

2017년 삼성생명의 후원으로 열린 위스타트 인성·금융 교실에서 송탄중학교 학생들이 보드게임으로 교육을 받고 있다. 학창 시절의 기본 금융 교육이 실제 삶에서 경제적 요소를 활용하는데 기반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해외 선진국과 달리 의무 교육 기간 동안 금융, 투자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정규 수업이 없다. [사진 위스타트]

그래서 이를 극복할 방편으로 디폴트 옵션을 우리나라 퇴직연금제도에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의 금융지식 부족으로 운용지시 능력이 없거나 자발적으로 운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할 때 합리적인 선택을 돕고, 퇴직연금 자산운용 행태를 개선할 수 있다. 이로써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퇴직연금의 목적을 살리고자 하는 것이다.

투자지식의 부족은 단순히 원리금보장상품 선택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퇴직연금제도나 상품에 대해서 무관심한 근로자를 양산하는 핵심 이유다. 무엇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사실 모두가 피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알려고 노력한다고 투자에 따른 위험이 쉽게 통제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냥 퇴직연금제가 귀찮아지는 것이다. 언론에서 저조한 수익률을 운운하면 화만 내고 말아 버리는 것이다.

이래서는 우리 노후 안정에 퇴직연금제가 기여하기 매우 힘들다. 그러니 어떤 장치, 즉 디폴트 옵션을 통해 운용지시가 없을 경우 자동으로 특정 상품에 적립금이 납입되는 구조를 만들어 수익률 증가를 꾀해야 한다. 이는 투자 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근로자를 돕는 보호장치가 될 수 있다.

해외의 퇴직연금 선진국에서는 이런 디폴트 제도가 일반화했고 운영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미국은 2006년 적격 디폴트 상품, 호주는 2014년 My Super, 칠레는 2002년 멀티펀드, 일본은 2018년 지정 운용방법이라는 디폴트 옵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 외 대부분의 퇴직연금 선도 국가들은 이와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으로 금융 문맹을 꼽았다. 세계에서 손 꼽히던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는 이 사태를 비롯한 일들로 2008년 9월 간판을 내렸다. [중앙포토]

미국 재무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으로 금융 문맹을 꼽았다. 세계에서 손 꼽히던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는 이 사태를 비롯한 일들로 2008년 9월 간판을 내렸다. [중앙포토]

이들 국가가 디폴트 옵션 제도를 운용하는 이유는 그들 나라의 퇴직연금 가입자라고 해서 우리 국민보다 투자에 더 우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 근로자가 투자라는 의사결정을 하기에는 그들 나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어려운 작업이다. 그 예로 미국의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의 원인에 대한 미국 재무부의 최종 결론은 미국 국민의 ‘금융 문맹(financial illiteracy)’이라고 내렸다.

미국의 경우 투자 교육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게 제공한다. 그런데도 서브프라임 사태를 낳고 만 것이다. 하물며 우리나라처럼 투자에 대해 가르치는 정규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없는 나라에서는 반드시 제도적 지원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디폴트 옵션이 효과가 있으려면 지금과 같이 적립금 운용 대상 상품 중 하나로 제공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것은 제도이지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디폴트 옵션의 적격상품의 타당성, 신뢰성, 상품선택절차, 사후관리에 대한 명확한 체계를 선행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또 당연한 지적이지만, 이 제도 도입 이전에 가입자에게 정확히 알리고 공감을 구하고 책임도 공유하는 퇴직연금 이해관계자의 전반적인 노력은 꼭 필요하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제 발전이 기대한 만큼 만족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는 가입자의 이해도 부족도 들 수 있다. 이 이해를 통해 근로자의 위험수용 태도도 점차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가입자도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투자의 세계는 가입자가 쉽게 익숙해질 수 없다. 그리고 요행을 바라서도 안 된다.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투자를 지원할 제도가 있다면, 이제는 활용해야 할 때다. 머뭇거리기에는 우리의 퇴직연금 연금 수익률이 너무 열악하다.

김성일 한국연금학회 퇴직연금 분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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