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취재일기] 화장품까지 손뻗친 돈스코이호 사기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김정연 환경팀 기자

김정연 환경팀 기자

“유명한 모델이 광고하니 좋은 건가 보다, 했지”

러시아계 스타 모델 안젤리나 다닐로바가 광고하는 ‘순금 골드앰플’은 110mL에 15만원이다. A씨는 “한동안 써봤는데, 효과는 잘 모르겠다”며 “잔뜩 싸게 사서 판매에 나서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 앰플은 ‘유니코스메틱’이라는 화장품 회사에서 판매하고 있다. 지난 4월 세워진 신생 회사로, 지난해 ‘러시아 상선 돈스코이호 인양’을 내세워 투자자를 모집했던 신일그룹의 후신으로 추정된다.

회사 이름도 다르고, 이사진도 조금씩 다르게 내세워 법적으로는 ‘다른 회사’지만, 신일그룹 투자자들은 그대로 유니코스메틱으로 이어졌다. 경찰은 신일그룹이 신일골드코인~SL블록체인그룹~유니버셜그룹~유니코스메틱 순으로 변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신일그룹 관계자 4명은 지난 5월 1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실형이 선고된) 피고인 B씨의 친동생인 유승진이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건 전체를 지휘한 ‘머리’격인 유씨는 신병 확보가 안 돼 기소 중지 상태다. 유씨가 돈스코이호 사기 사건에서 사용한 ‘송명호’라는 대리인은 지금도 ‘유니코스메틱’ 투자자들이 모인 메신저 방을 지휘한다.

유니코스메틱 관계자들은 지금도 전국 각지를 다니며 ‘설명회’를 열고 있다. 설명회 주제는 유니코인·유니페이·골드앰플 등 매번 달랐다. KBS 아레나홀, 코엑스 회의장 등을 빌린 큰 행사에는 수천 명이 참석했다.

지난해 7월부터 만난 투자자 수십명은 대부분 큰 부자도, 아주 가난하지도 않은 ‘보통 사람’이었다. 대부분 50대 이상이고 80대도 있었다. 전 재산을 투자해 거액을 노리는 전문 투자자나, 생계가 힘들어 마지막 수단으로 투자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1년간 사건을 취재하면서 ‘왜 저걸 믿을까’ 생각했지만, 한 제보자는 “될듯 될듯 계속 말을 해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들은 초기처럼 ‘보물선’, ‘금광’을 내세우지 않고, 화장품이나 식품유통업 등 생활밀착형 아이템으로 파고들었다. 교통카드 ‘티머니’를 제공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실물 대가는 이들이 이전에 진행했던 코인·페이 사업과 연계돼 재투자를 유도한다. 이런 것들이 ‘보통사람’을 붙잡고 있는 셈이다.

‘되면 대박’이라는 한 마디에 소액을 취미처럼 투자한 돈이 모여 거액이 됐다. 1심에서 사기로 인정된 금액만 89억이지만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 지금도 남아있는 투자자는 1000명이 넘고, 금액은 더 늘어났다. “혹시 언젠가 잘되지 않겠느냐”는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이기도 한다.

물론 투자는 자유다. 그러나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기 범죄율 1위인 ‘사기 공화국’이다. 여윳돈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투자라도 늘 주의는 필요하다. 한 수사관의 말처럼 “실현 가능성이 제로인 투자는 사기나 마찬가지”다.

김정연 환경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