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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자사고는 알고 싶다, 왜 떨어졌는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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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전민희 교육팀 기자

전민희 교육팀 기자

“평가 결과 나오기 전부터 5년 전 점수 미달이었던 학교들을 떨어뜨린다는 얘기가 돌았는데 말 그대로 됐네요. 이게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답변만 해)’ 평가가 아니고 뭡니까.”

서울의 한 자사고 교장은 9일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고 헛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왜 떨어졌는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교육청의 평가는 총 6개 영역으로 구성됐다. 학교운영, 교육과정, 교원의 전문성, 재정·시설 여건, 학교 만족도, 교육청 재량 평가 등이 여기 포함됐다. 이들 영역은 또 12개 항목, 31개 세부항목으로 나눠진다.

하지만 서울교육청은 학교에 평가 결과를 통보하면서 총점과 영역별 점수, 평가위원의 종합의견 등만 알렸다. 학교 입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뭐가 부족해 자사고 지정이 취소됐는지 전혀 파악할 길이 없다. 또 다른 자사고 교장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평가를 진행했으면 세부 지표별 점수를 학교 측에 알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기도교육청도 안산동산고의 재지정평가 결과를 공개하면서 세부항목에서 몇 점을 받았고 어떤 부분에서 점수가 깎였는지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지역 자사고들은 서울교육청의 평가가 시작부터 깜깜이였다고 주장한다. 학교들은 2014년 평가 기준에 맞춰 학교를 운영해왔는데 지난해 말 갑자기 달라진 평가기준이 나왔기 때문이다. 감사 지적사항을 기존 5점에서 12점으로 늘리고, 자사고에 유리한 교육활동 우수사례 항목을 없앤 게 대표적이다. 특히 2014년에 이어 또다시 위기에 놓인 자사고들은 “5년 전에 지금과 같은 평가기준을 알려줬으면 그에 맞춰 학교를 운영했을 것”이라며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려고 노력한 것이 평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억울하다”고 말했다.

평가위원·지정운영위원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올해 자사고 평가 100점 만점 중 57점 정도가 평가위원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감사 지적 사례를 포함해 교육청의 재량평가 배점도 기존 20점에서 24점으로 늘었다. “정량평가에서 만점을 받아도 평가위원이 떨어뜨릴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학교 측은 이런 상황을 우려해 평가를 시작할 때부터 서울교육청에 평가위원과 평가과정을 공개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다. 하지만 서울교육청은 “개인 신상털이가 우려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자사고연합회 측은 “정보공개와 함께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겠다”고 예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식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자사고 폐지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평가는 학교나 학부모·학생이 납득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서울교육청은 “이번 평가가 엄정하게 이뤄졌다”고 설명했지만, 자사고 폐지가 조희연 교육감의 평소 소신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년에는 자사고뿐 아니라 외국어고 등을 포함해 더 많은 학교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올해같은 평가가 반복된다면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만 커질 것이다. 평가가 공정해야 결과가 정의롭다.

전민희 교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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