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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진단에 신약까지…한국 ‘유전체 빅데이터 시대’ 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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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대전 대덕특구에 자리잡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유전체맞춤의료연구단 김선영 박사 연구팀 연구원들이 유전체 분석 장비로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대전 대덕특구에 자리잡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유전체맞춤의료연구단 김선영 박사 연구팀 연구원들이 유전체 분석 장비로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50대인 A씨는 1년에 한 번 받는 건강검진 도중 폐암세포를 발견했다. 그러잖아도 최근 들어 기침이 잦고, 몸이 갑자기 나빠지는 것을 느꼈는데, 알고 보니 왼쪽 폐 속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다. A씨는 폐의 절반을 잘라내는 대수술과 함께 항암치료까지 받느라 머리카락까지 다 빠졌지만, 차도가 별로 없었다.

생명연 유전체 분석시스템 사업 #장비구축·7000명 정보 확보 #UNIST도 1만 명 연구 목표 #세계 주요국 빅데이터 경쟁 치열

하지만, 지인의 권유로 유전자 검사를 받고 폐암의 원인이 ‘EGFR’이라는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A씨는 자신의 폐 암세포에 맞는 표적 항암제를 처방받아 단기간 내에 폐암을 극복할 수 있었다.  유전자 분석을 통한 개인 정밀치료가 일반화되는 세상의 가상 시나리오다.

한국인 표준 유전체 지도 생산 계획

우리나라에도 ‘유전체 빅데이터 시대’가 열리는 걸까. 전 세계적으로 인간 유전체 빅데이터 확보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일부 대학과 바이오기업에서 시작한 유전체 지도 및 분석과 관련한 연구가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출연연구소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11일 유전체맞춤의료전문연구단 김선영 박사 연구팀이 ‘유전자 의약산업진흥 유전체 분석시스템 구축사업’ 총괄기관에 선정됐다고 밝혔다. 대용량 유전체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최신 염기서열 분석 장비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질환자 중심으로 총 7000명의 유전체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유전체 빅데이터 생산은 물론 한국인 표준 유전체 지도를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생명연은 또 유전체 빅데이터를 저장·관리하는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장 유전체·엑솜·전사체·메타게놈 등 질환 종류에 맞게 생산되는 다양한 유전체 정보를 분석하는 파이프라인·해석 시스템도 운용할 방침이다. 이 사업에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대전시가 2022년까지 총 140억원을 투입한다.

김 박사는 “앞으로 유전체 분석을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질병 진단과 같은 정밀 의료가 발전하고 산업화를 할 것”이라며 “이런 정밀 의료, 개인 맞춤형 질환 관리를 위해서는 유전체 해독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인간 유전체 해독 비용은 1000 달러 아래까지 떨어졌는데, 이번 사업을 통해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기술의 발전과 분석 비용 감소가 기대된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유전체 분석 시스템 개발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은 이미 10만 명 지도 확보 끝내”

한국인 유전체 빅데이터 분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의 박종화 (생명과학부) 교수는 2016년 11월 전국 각지에 사는 한국인 41명의 게놈지도를 통합한 국민 표준 게놈지도 ‘코레프(KOREF:KORean REFerence)’를 완성했다.

박 교수는 또 울산시와 함께 울산시민 1만 명 유전체 분석을 통한 한국인 표준 지놈구축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박 교수는 “올해 말까지 1만 명 유전체 분석이 목표였지만, 예산 부족으로 지난해 말 기준 1000명을 넘겨서 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유전체 분석 전문기업’을 자처하는 코스닥 상장기업 마크로젠도 인간 유전체 빅데이터 확보와 함께 분석 서비스를 하고 있는 기업이다.

인간 유전체 빅데이터 확보는 영국·미국·중국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사활을 걸고 경쟁하고 있는 분야다. 개인 맞춤 정밀의료와 신약개발 등 미래 생명공학과 산업의 기본이 되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박종화 UNIST 교수는 “영국은 이미 지난해 말 10만 명 유전체 지도 확보를 끝내 세계 경쟁에서 가장 선두에 있다”며 “영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은 이제 100만 명 유전체 확보를 위해 뛰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누가 더 많은 인간 유전체 빅데이터를 확보하느냐가 곧 그 나라, 기업 생명과학 산업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다소 늦었지만 한국 정부 역시 이 같은 세계의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5월 충북 오송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비전 선포식’이 대표적이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최대 100만 명 규모의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관련 예산 편성과 내년 연구사업 공모를 통해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을 위한 연구개발(R&D)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서경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생명기술과장은 “희망자를 대상으로 유전체 정보, 의료이용·건강상태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인체정보는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 등에 안전하게 보관하면서, 환자 맞춤형 신약·신의료기술 연구개발에 활용할 계획”이라며 “우선 1단계 사업으로 내년부터 2년간 2만 명 규모의 유전체 기반 바이오빅데이터 구축 사업을 시작해 2029년까지 100만 명 규모의 빅데이터 구축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남명진 가천대 의생명과학과 교수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주민등록과 지문,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DNA 정보에도 정보 유출은 물론 ‘빅브라더’의 감시와 같은 우려가 제기되는 만큼 100만 명 유전체 확보와 같은 거대 사업에는 사회적으로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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