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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민노총 “노동탄압” 주장, 초법적 특권 달라는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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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하경효 전 한국노동법학회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하경효 전 한국노동법학회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탄력근로제 확대를 반대하는 국회 앞 집회과정에서 경찰 폭행과 담장 파손 등의 불법행위를 계획하고 주도했다는 혐의로 지난 6월 21일 구속됐었다. 이후 구속적부심을 통해 엿새 만에 석방됐으나, 민주노총은 이를 노동탄압으로 규정하고 총파업을 비롯해 일련의 대정부 투쟁을 결의했다.

위원장 ‘구속 사태’ 또 초래한 노조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면책 안 돼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속 사태와 이후의 과정들은 여러 측면에서 씁쓸하다. 정부 여당의 “안타깝다”는 반응도 단순히 민주노총과의 우호적 관계가 깨지거나, 이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우려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진짜 안타까운 점은 다른 데 있다. 민주노총 출범 이래 이번까지 구속(적부심 석방 포함)된 위원장이 5명이나 되고, 이번에 구속사유로 적시된 범죄 혐의가 시위과정에서 폭행과 재물파손을 조직·주도했다는 점, 그리고 이를 노동탄압으로 규정하면서 대정부 투쟁을 선언한 민주노총의 태도와 인식이 더 문제다.

위원장 구속 사태와 관련해 민주노총의 노동탄압 주장이 공감을 얻으려면 노조 활동에 대해 법 적용과 집행을 특별히 엄격하거나 불리하게 하는 측면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결코 수긍하기 어렵다. 만약 소상공인연합회 같은 다른 단체가 집회 과정에서 동일한 불법행위를 했을 경우에 검찰과 법원이 달리 판단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아무리 노조 활동에 대한 특별한 법적 보호를 넓게 인정하더라도 폭행과 장비·시설의 파손행위마저 용인될 수는 없다.

비록 이런 불법행위가 근로자를 위한 노조의 활동과정에서 이뤄졌거나 정부나 사용자의 잘못된 대응이 일조했더라도 이 같은 사정은 책임의 구체적 내용을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뿐 책임 자체를 면제해 주는 요소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은 범죄 혐의와 구속 여부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판단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대정부 강력 투쟁을 통해 마치 자신들을 건드리면 큰일 난다는 듯이 정부를 압박한다.

이런 민주노총의 태도와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어쩌면 민주노총은 집단적 행위가 근로자의 이익 보호를 위한 정의로운 행위이므로 설령 그 과정에서 폭력이나 파괴행위가 발생하더라도 용인될 수 있다고 여기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헌법상 노동기본권 보장에서 전혀 고려하지 않은 초법적 특권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잘못된 생각이다.

그런데도 집회 과정에서 불법 폭력을 행사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정당한 법 적용을 민주노총이 노동탄압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노사 문제와 관련해 국가가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는 노사관계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이해 조정자의 역할과 책임이 있다. 따라서 국가는 노사관계 법제를 마련하면서 노사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들면 안 된다. 노사 대등성이 구조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친노동 또는 친기업의 편향적 노동정책이나 입법은 국가의 기본적 역할과 책임에 반하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 주52시간제 입법 과정에서 정부가 탄력적 근로 시간제 등 파문을 줄일 방안을 함께 챙기지 못해 민주노총의 폭력 시위로 이어진 것은 유감스럽다. 외국에서도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경우에 탄력적 운영의 확대 방안을 함께 논의해 노사 간 접점을 찾고 새롭게 규율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52시간제 입법을 하고 나서 별도로 탄력적 근로운영을 확대하는 법제를 추진하는 바람에 노조의 반발을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민주노총의 폭력적 행동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지금은 민주노총의 힘과 역량을 투쟁에 모을 때가 아니다. 고용 환경 변화에 따라 노동운동의 방향과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하경효 전 한국노동법학회장·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