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하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일본의 보복 쓰나미가 예상보다 빨리, 거세게 덮쳐왔다. 정부의 안이함이 결정적이지만, 공인된 지일파 이낙연 총리도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나는 믿는다.
아베 총리 등 일본 내 인맥 두터워 #“친일 시비 걱정에 몸사려” 지적도 #큰 꿈 꾼다면 해법 조율 앞장서야
이 총리는 정부 내 거의 유일한 실세 지일파다. 도쿄 특파원 3년에 한일의원연맹 부회장도 지냈다. 재작년 인사청문회 때는 “지일을 넘어 일본을 너무 좋아하는 호일(好日) 아니냐”는 지적도 들었다. 실제로 그는 2000년부터 그때까지 85번 해외출장을 갔는데 73%인 62번이 일본행이었다. 2011년에는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위치와 관련, “논의가 필요하다”며 일본을 편드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그의 총리 내정 소식이 나오자 “지일파 총리가 나왔다”고 일본 언론들이 반겼던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더 주목할 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의 인연이다. 이 총리는 지난해 9월 러시아 동방경제포럼에서 아베 총리를 만났다. 보좌진이 배석한 회담장에서 그는 그들의 인연을 상기시켰다. “2005년 (아베) 총리가 관방장관이 되기 직전 서울에 와 비 오는 주말에 소주를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 자리에서 총리에게 한센 피해자 문제의 개선을 부탁했고 총리는 그것을 깨끗하게 해결해 줬다. 아베 선생이 해결해 줬으니 선생이 발표하고 싶으면 하라고 말했고 그 약속을 지켜서 지금까지 나는 언론에 자랑하지 않았다.”(존칭·경어 생략) 물론 아베는 흐뭇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이 총리가 부탁한 건 한국 한센인들에 대한 보상 문제였다. 일제는 한국·일본·대만 내 한센인들을 강제로 격리수용했다. 해방 후 인권 논란이 불거지자 일본 정부는 한센 피해자들에게 보상했는데 한국·대만인은 뺐다. 이들이 갇혔던 소록도 등이 일본의 ‘국립요양소’가 아니라는 거였다. 하지만 아베의 힘이 통했는지 일본 정부는 2006년 초부터 한국인 피해자에게도 보상금을 준다.
이 에피소드에서 보듯, 이 총리의 일본 인맥은 두텁다. 그가 지명되자 가까운 인사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교수,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전 도쿄도지사 등 거물들의 이름이 일본 언론에 보도됐다. 그가 한·일 관계 개선에 큰 역할을 할 거라는 기대가 높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총리도 처음엔 의욕에 넘쳤다. 자신의 지명과 관련, 그는 일본인 지인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을 중시한다는 뜻으로 ‘일본과의 가교가 되라’는 것”이라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취임 4개월 후 인터뷰에서는 “일왕이 퇴위 전 한국을 방문하길 희망한다”는 주목할만한 목소리도 냈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강제징용 판결 이후 무대에서 사라졌다. 민간공동위원회를 꾸린다더니 신통한 방안을 못 내놨다. 일본도 별 성과가 없자 패를 던졌다. 지난 5월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이 “이 총리가 대책을 마련할 거로 믿고 대응을 자제해 왔지만, 그가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해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밝힌 것도 그에 대한 기대의 크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일문제라면 발 벗고 나섰던 이 총리가 왜 이렇게 됐나. 일본 전문가 사이에선 그가 유력 대권후보로 거론되면서 변했다는 소리가 나온다. 대권을 의식한 그가 친일 시비에 휘말릴 일은 피한다는 관측들이다. 공교롭게 이 총리가 대권후보 1위로 올라선 때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이 난 지난해 말 무렵이었다.
어쩜 오해일 수도 있다. 반일 정서를 국내 정치에 써먹으려는 세력에 갇혀 이 총리가 힘을 못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그가 큰 꿈을 꿀수록 이제라도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총리는 대통령 다음가는 행정부 2인자다. 나라의 위기를 목도하며 자신의 능력을 썩히는 건 공인의 도리가 아니다. 눈치나 보며 몸 사리기에 급급한 지도자를 누가 찍겠는가.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