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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베트남 여성을 ‘선호’한 한국 남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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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차마 영상을 끝까지 볼 수 없었다. 어깨 문신이 선명한 한국인 남편은 구석에 쪼그린 베트남 아내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발로 차고 소주병으로 때렸다. “아내의 서툰 한국어”가 이유였다. 폭행 영상을 페이스북에 공개한 아내의 베트남 지인은 “한국 정말 미쳤다”는 글을 함께 올렸다. 국내는 물론이고 베트남에서까지 비판 여론이 들끓자 경찰은 이례적으로 강경 대응에 나섰다. 남편을 초고속 구속했다. 아내는 베트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 친구들도 (남편들에게) 많이 맞았지만 한국말이 서툴고 경찰이 한국인 편이라는 우려로 신고를 거의 안 한다. 저도 샌드백처럼 맞았지만 증거가 없어 신고하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충격적인 베트남 아내 폭행 사건 #다문화가구원 100만 시대 진입 #성차별 인종차별 함께 개선해야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 920명의 42.1%인 387명이 가정폭력을 경험했다. 이주여성 10명 중 4명이 매 맞는 아내라는 결과다. 19.9%는 흉기로 협박당했다. 또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2007~2017년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결혼이주여성은 19명에 달했다. 한국 남성들이 국제결혼을 가장 많이 하는 베트남 여성들의 피해가 제일 커, 19명 중 13명이나 됐다. 결혼이주여성의 가정폭력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란 얘기다.

이같은 가정폭력 뒤에는 한국사회의 공고한 가부장주의, 성차별, ‘가정폭력=집안일’이라는 사회적·사법적 방관이 숨어 있다. 경제적 우위에 있는 한국인 남성이 나이 어린 외국인 여성과 결합하며 맺은 수직적 관계를 이용해 아내를 인격 아닌 물건 취급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결혼이주여성이 국적을 취득할 때 한국인 배우자가 전권을 행사하는 법 조항이, 이주여성을 배우자에게 종속시키고 가정폭력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 많다. 이혼도 쉽지 않다. 이혼하면 결혼이주여성은 체류 자격을 잃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성차별 외에 아시아 개도국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차별과 편견도 만연하다. 최근 TV 외국인 프로그램을 분석한 김도연 국민대 교수 등에 따르면, 같은 국제결혼 가정이어도 백인 가족은 가족 리얼리티 같은 오락 프로에, 동남아 가족은 이주 가정 문제·고향방문 소재를 다루는 교양 프로에 더 많이 출연했다. 백인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라 오락 프로에서 시청률을 견인하는 요소가 되지만, 결혼이민자와 다문화가족 자녀는 온정을 베풀어야하는 타자로 교양 프로에 주로 나온다는 분석이다. 이 차이 뒤에는, 백인은 선망하고 동남아시아인은 내려보는 인종차별적 의식이 숨어 있다고 논문은 강조했다.

사실  이번 베트남 아내 폭행 사건을 접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지난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베트남 여성 선호” 발언이었다. 정확히는 친딩중 베트남 경제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 여성들과 결혼을 많이 하는데, 다른 여성들보다 베트남 여성들을 아주 선호하는 편”이라고 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함께 사는 여성을 “좋아한다”“호감 있다”가 아니라 매대에 놓인 물건 고르듯 “선호한다”니, 인권감수성 제로인 표현에 깜짝 놀랐었다. 굳이 양보하자면 A 업종에서는 B라는 특징을 가진 C 나라 노동자를 ‘선호한다’고 인력‘시장’에서나 쓸 법한 표현 아닌가. 무심코 한 말이라지만, 이처럼 무심코 드러낸 가부장적 인식이 쌓여 끔찍한 가정폭력의 뿌리가 된다는 얘기는 새삼 할 필요조차 없다.

이제는 국내 체류 외국인 237만명(2018), 다문화 가구원 96만4000명인 (2017)인 ‘다문화 시대’다. 결혼이주자와 그들의 자녀가 한국인으로 함께 잘 살아가는 일이 미룰 수 없는 사회적 과제인 이유다. 우선 매 맞는 이주여성 문제를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인권 일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일이 시급하다. 이 와중에 정헌율 전북 익산시장은 다문화 가족 아이들 앞에서 “잡종 강세”“튀기” 등의 무개념 발언으로 상처를 줬다. 인권감수성, 젠더감수성이 부족한 정치인들은 그 입을 좀 다물면 좋겠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