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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 한국 역할 확대” 주문에 머뭇거리는 한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10월 남북한, 유엔군사령부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JSA 비무장화 논의를 하고 있다. 북한은 이 논의에서 유엔사가 빠지라고 요구하면서 JSA 자유왕래가 무산됐다. 북한은 유엔사 해체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연합]

지난해 10월 남북한, 유엔군사령부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JSA 비무장화 논의를 하고 있다. 북한은 이 논의에서 유엔사가 빠지라고 요구하면서 JSA 자유왕래가 무산됐다. 북한은 유엔사 해체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연합]

미국이 올해 초 유엔군사령부에서 한국군의 역할을 늘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미국에 입장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고 있는 북한을 고려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올초 미국 측 "유엔사 직위 99개 중 20개 맡아달라" 부탁 #국방부는 "여러 사항 검토 중"이라며 6개월째 답신 안 줘 #전문가, "유엔사를 인정 않으려 하는 북한 의식한 듯"

7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1월 한ㆍ미연합군사령부를 통해 유엔사의 평시 직위 99개 중 최소 20개를 한국군이 맡아달라고 우리 국방부에 요청했다. 정부 소식통은 “대부분의 유엔사 직위는 연합사의 인원들이 겸직하고 있다”면서 “유엔사가 지난해 경기도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로 내려간 반면 연합사는 당분간 서울에 남게 됐다. 미국이 두 개의 사령부를 채울 사람이 부족하다며 한국에 도와달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유엔사의 한국군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 대표(소장급) 등이 있지만, 대부분 연합사의 한국군 참모와 실무자들이 함께 맡고 있다. 순수 유엔사 소속 한국군은 소수다. 지금과 달리 20명의 한국군 장교를 새로 보내달라는 게 미국의 요구사항이다.

인력난은 겉으로 드러난 명분이며, 미국의 속내는 따로 있다는 게 이 소식통의 전언이다. 미국은 유엔사의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원래 유엔사는 1978년 한국을 방위하는 임무를 연합사에 넘겨준 뒤 정전협정을 유지하는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다. 연합사령관이 유엔사령관 ‘모자’를 함께 쓰며, 연합사 참모가 유엔사 참모를 겸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지난해부터 유엔사 참모 자리를 별도로 채우고 있다. 또 유엔사 부사령관에 지난해 에어 캐나다 육군 중장에 이어 올해 스튜어트 메이어 호주 해군 소장을 임명했다.

특히 로버트 에이브럼스 연합사령관이 유엔사의 기능 강화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그는 지난해 9월 미 의회에서 “남북은 대화를 계속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은 유엔사에 의해 중개ㆍ심사ㆍ사찰ㆍ이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반년째 미국에 답을 못주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여러 사항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왕래 논의에서 유엔사가 빠지라'는 등 유엔사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을 정부가 의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사항에 정통한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정부가 기본적으로 유엔사의 역할 확대에 부정적”이라고 귀띔했다. 그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유엔사를 통해 연합사에 개입할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 이후 유엔사 해체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철재 기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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