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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체인저] "한국 디자인이 대체 뭐야?" 대답하기 위해 시작한 리빙 편집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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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뷰티·리빙 등 레드오션이라 불릴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라이프스타일 시장에서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접근법으로 판을 바꾼 사람들이 있다. 과연 이들이 가진 남다른 한 끗은 무엇일까. 시장의 흐름을 바꿔버린  이 시대의 ‘게임 체인저’들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남다름으로 판 바꾼 '게임 체인저' #④ 박찬호 '서울 번드' 대표

리빙페어 현장마다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부스들이 있다. '서울번드' 역시 그 중 하나다. 이곳 부스에는 늘 사람이 북적인다. 서울번드는 그릇·냄비·커트러리(수저, 포크 등 식사용 도구)·인테리어 소품 등을 판매하는 '리빙 편집숍'이다. 하지만 이곳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느 리빙 편집숍과는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 전통공예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리빙용품들을 기본으로 중국·대만·홍콩·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리빙용품까지 취급한다. 이곳을 이끄는 박찬호 대표는 "단순히 '예쁜' 제품을 떠나, 동아시아 전통 가치를 담은 생활용품을 까다롭게 모은 온라인 편집숍"이라고 서울번드를 소개했다. 특별한 광고나 홍보 활동 없이도 이들의 물건을 알아본 20~40대 여성들 사이에선 벌써 입소문이 났다.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로 사업을 시작한 박 대표는 어떻게 이런 브랜드를 만들었을까.

박찬호 '서울번드' 대표가 서울 서초동 서울번드 쇼룸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의 뒤로 보이는 하얀색 찜기가 첫 판매 제품인 대만 찜기 '지아 스티머'다. 김경록 기자

박찬호 '서울번드' 대표가 서울 서초동 서울번드 쇼룸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의 뒤로 보이는 하얀색 찜기가 첫 판매 제품인 대만 찜기 '지아 스티머'다. 김경록 기자

박 대표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주택가 서울번드의 쇼룸은 한가로웠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온라인 판매를 기본으로 하지만, 직접 물건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때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그 시간엔 그 고객만을 응대한다'는 운영방침 때문인데, 이는 다른 고객들과 겹치지 않게 시간을 조정해 여유롭게 물건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동아시아 전통 공예품이 컨셉트다. 이렇게 정한 이유는 뭔가.

"학창시절을 중국의 국제학교에서 보냈다. 덕분에 여러 나라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는데, 그들이 '한국의 디자인은 뭐냐'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뒤 우리 것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결국 서울번드를 열게 됐다."

다른 아시아 제품도 취급한다. 한국 디자인을 알리고 싶다면 한국 제품만 다뤄야 하는 것 아닌가.

"비즈니스를 위해서다. 군집하면 힘이 생긴다. 우리 목표는 아시아끼리 뭉쳐서 서양에 대응하는 거다. 학창시절 함께 했던 중국·대만·일본 친구들의 영향도 컸다."

생활용품을 선택한 이유는.  

"대중적인 물건을 판매하고 싶었다. 모든 사람에게 스며들 수 있는 상품이 뭘까 고민하다 먼저 그릇·냄비 같은 테이블웨어, 주방용품을 선택했다. 모두 요리와 식사는 하니까."

지난 2018년 3월에 열린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내 서울번드의 부스. "공간에서부터 브랜드의 이미지를 알리고 싶었다"는 박 대표는 심혈을 기울여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공간이 특별하니 사람들이 몰려든 건 당연했다. 서울번드의 부스는 페어에서 ‘눈에 띄는 공간상’을 수상했다.  [사진 서울번드]

지난 2018년 3월에 열린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내 서울번드의 부스. "공간에서부터 브랜드의 이미지를 알리고 싶었다"는 박 대표는 심혈을 기울여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공간이 특별하니 사람들이 몰려든 건 당연했다. 서울번드의 부스는 페어에서 ‘눈에 띄는 공간상’을 수상했다. [사진 서울번드]

‘서울번드 화’의 유기 커트러리와 월반 트레이, 아리타재팬의 식기들. [사진 서울번드]

‘서울번드 화’의 유기 커트러리와 월반 트레이, 아리타재팬의 식기들. [사진 서울번드]

서울번드는 한국의 수도인 서울과 부두라는 의미의 '번드'를 합친 이름이다. '서울 부두'라는 의미인데, 그의 말처럼 동아시아 문화의 허브가 되길 원하는 마음에서 지은 것이다. 현재 입점 브랜드는 50여 개, 취급 제품은 600종이 넘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국내 생산품이다. 브랜드 수를 계속 늘리고 있는 중으로 올해 안에 100개까지 늘릴 예정이다.
박 대표는 한국에서 가구 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중 사업에 대한 확신을 갖고 온라인으로 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냄비 같기도 뚝배기 같기도 한 대만 찜기 '지아(JIA) 스티머'가 첫 제품이었다. 2015년 시작해 1년 차인 2016년에 1억원대의 매출을, 그 다음 해엔 4억원으로 매출이 급성장했다. 해외 유명 브랜드를 소개하는 편집숍은 많지만 동아시아 리빙 제품을 다루는 브랜드는 서울번드가 유일했기에 시선을 끌었다. 물론 여기엔 그만의 감각적인 큐레이팅이 뒷받침됐다. 나라를 떠나 고객이 좋아할만한 '아름답고 좋은 품질을 가져야 한다'는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까다롭게 제품을 선정한다.

판매 제품은 어떻게 선택하나.  

"물건을 보고 물음표가 뜨면 안 된다. 느낌표가 떠야 한다. 이걸 왜 선택해야 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인 기준이 있나. 

"51가지의 선정 기준이 있다. 아예 문항으로 만들어 문항당 1~5점까지 점수를 매기는데 125점 이상이 돼야 합격이다.(만점은 255점)"

박 대표가 만든 기준표는 서울 오피스의 직원뿐아니라 '번더'라고 불리는 외부 인력이 각 나라에서 상품을 발굴할 때도 사용된다. "영업 비밀"이라면서도 살짝 보여준 기준표는 '독창적인 형태인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 형태인가' '재료는 독창적인가' '지속해서 기능이 유지되나' '다른 제품과 연동해 쓸 수 있나' '재활용, 재생 가능한가' 같은 조형성·기능성에서부터 친환경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리빙편집숍 '서울번드'에서 판매하는 유기 커트러리 '라륀' 제품. 송승용 디자이너와 이종오 유기 명장이 함께 현대에 맞게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한 제품. [사진 서울번드]

리빙편집숍 '서울번드'에서 판매하는 유기 커트러리 '라륀' 제품. 송승용 디자이너와 이종오 유기 명장이 함께 현대에 맞게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한 제품. [사진 서울번드]

최근엔 자체적으로 기획해 제작한 상품 비중이 커지는 중이다. '서울번드 화'라는 컬렉션 라인인데, 전통 유기장인과 함께 만든 유기 커트러리 '라륀'이 대표적이다. 송승용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날렵한 모양에 작은 머리를 가진 디저트용 스푼·포크·나이프 구성으로 세련된 모양과 유기가 풍기는 고풍스러움에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비슷한 디자인의 '레플리카'라는 브랜드도 만들어 저렴한 가격(1개 5900원)으로 판다. 왜 이렇게 싸게 파냐고 물으니 "많은 사람이 좋은 디자인의 제품을 쉽게 쓰게 하고 싶어서"라며 웃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 20대 청년의 풋풋함을 보여주는 박 대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김경록 기자

인터뷰가 끝난 뒤 20대 청년의 풋풋함을 보여주는 박 대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김경록 기자

최근 리빙 편집숍이 많아졌다. 경쟁이 치열해져 힘들진 않나.

"경쟁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리빙 편집숍이 쉬워 보여 많이 시작했다가 금방 접는다. 이 사업이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많다. '예쁜 것 좀 모아 놓고 팔겠다'는 생각으론 안 된다. 경영 마인드와 철저한 운영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업태다."

앞으로의 계획은.

"식기는 시작이다. 가구-공간-빌딩까지 확장하는 게 처음부터 목표였다.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제안하는 브랜드가 되는 게 최종 종착지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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