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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업에 “일본의 경제 보복, 사전에 몰랐냐”고 묻는 정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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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 정부는 올해 초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경제 보복의 칼을 갈고 있다고 예고해 왔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는 송금 제한과 비자 발급 제한을 거론했고, 앞으로 꺼낼 보복 카드는 190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나날이 악화하는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반(反)시장·반기업적 ‘소득주도 성장’ 정책실험이 3년째 계속되면서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급격히 약화하고 있다. 급기야 올해 성장률은 2.4%까지 주저앉을 전망이다.

이에 대한 자성이나 대비책은 없다. 사달이 나면 그저 핑계만 늘어 놓거나 뒷북치기 대책만 쏟아내고 있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서도 안이한 태도로만 일관하다 허를 찔렸다. 여기서도 진지한 대책보다는 유체이탈식 변명만 쏟아지고 있다. 정부 정책을 지휘하는 청와대로부터는 “지금 무대응이지 무대책은 아니다”는 4차원적 설명까지 나왔다.

무엇보다 외교적 대응 실패 책임이 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대응 자세는 가관이다. 그는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일본의 보복이 거론되자 “보복 조치가 있을 경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답변하더니 보복이 시작되자 “앞으로 상황을 보면서 (후속 대책을) 연구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대비책을 세웠어도 감당하기 어려울 판에 이제서야 연구한다니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어이없는 건 산업통상자원부 관료들의 블랙코미디다. 일본의 경제 보복 소식이 처음 전해진 지난달 30일 정승일 차관과 유정열 산업정책실장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LG디스플레이 등 관련 기업 임원들을 부른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복수의 참석자에 따르면 산자부 측에서 “기업은 언제 이 사태를 알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나아가 한 관료는 “일본에 지사도 있고 정보도 많을 텐데 사전 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느냐”고도 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정부가 제 역할도 못 하면서 민간기업에 왜 사태 파악을 못 했느냐고 책망하는 꼴 아닌가. 이 모든 블랙코미디는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 직후부터 일본 정부가 반발하면서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한·일 기업이 공동 기금을 마련해 배상하자는 방안을 사전 협의도 없이 툭 제시하자 1시간 만에 거부했다. 이미 보복의 칼을 갈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어제 올해 성장률을 2.4~2.5%로 낮춘 이유를 대외 여건 악화 탓으로 돌린 것도 무대책의 결과 아니겠나. 정부는 고장난 정책실험만을 고집하기보다 내부의 난맥상부터 먼저 풀어나가길 바란다. 그래야 문제 해결에 제대로 나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