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반려견 돌보고 나무 물 준 조양호家 경비원들, 허가취소 면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운전기사와 경비원 등에게 상습적으로 폭언·폭행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아내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연합뉴스]

운전기사와 경비원 등에게 상습적으로 폭언·폭행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아내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연합뉴스]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택에서 반려견을 돌보고 분리수거도 했던 경비원들이 소속된 경비업체가 해산될 위기에 놓였지만 법원이 이를 막았다.

서울행정법원 11부(재판장 박형순)는 30일 조양호 회장 사택에서 경비 외의 업무를 했다는 이유로 경비업 허가 취소처분을 받은 업체가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해당 경비업체 소속의 경비원들은 조 회장의 평창동 사택에서 경비 일을 하면서 잡일까지 떠맡아야 했다. 강아지 산책이나 배변 정리, 나무에 물주기, 분리수거 등 조 회장과 부인 이명희(71)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이른바 ‘갑질’ 지시는 일상이었다.

경비원들은 관리소장 등 자신의 상사들에게 부당함을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만 돌아왔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부부의 지시에 따랐다.

조 회장 일가의 갑질 논란은 2014년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을 시작으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경비원들에 대한 이 전 이사장의 갑질도 그 중 하나였다. 2018년 5월에는 ‘조 회장 일가가 경비원을 노예처럼 부린다’는 보도가 나왔다. 경비원 중 일부는 이 전 이사장 등 조 회장 일가의 갑질과 폭언에 시달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억울함은 해소됐지만 문제는 경비 외 잡일을 하는 게 법에 어긋난다는 점이었다. 경비업법 제19조는 경비원들이 경비가 아닌 다른 업무를 하면 경비업의 허가를 취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해당 경비업체에게 허가취소처분을 내렸다.

이에 불복한 경비업체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부득이 다른 업무를 일부 수행한 것”이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법원은 “해당 업체가 적극적으로 소속 경비원을 경비업무 외의 업무에 종사하게 한 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설명하며 경비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경비업체가 소속 직원들에게 직접적으로 경비 외의 일을 시키게 주도한 것이 아니라 묵인한 사실만으로는 위법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이 업체는 언론에 보도가 되고 나서야 소속 직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를 파악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전 이사장은 ‘갑질 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이 전 이사장은 이른바 출입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경비원에게 나무를 자르는 데 쓰는 전지가위를 던지거나 구기동 도로에서 차에 물건을 실지 않았다며 운전기사를 발로 차 다치게 하는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첫 재판 기일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