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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광적인 스토커? 너무 집착하면 잘못을 모르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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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호 19면

[셀럽 라운지] 연극 ‘미저리’로 5년 만에 무대 서는 김성령

김성령이 5년 만에 출연하는 연극 '미저리'는 드라마 PD 출신 황인뢰 연출이 영화처럼 스릴넘치는 무대로 구현해 지난해 초연 당시 큰 호응을 얻었다. [신인섭 기자]

김성령이 5년 만에 출연하는 연극 '미저리'는 드라마 PD 출신 황인뢰 연출이 영화처럼 스릴넘치는 무대로 구현해 지난해 초연 당시 큰 호응을 얻었다. [신인섭 기자]

대형 뮤지컬 일색인 공연 예매 차트에 연극 한 편이 불쑥 등장했다. 지난 5월 22일 티켓 오픈과 동시에 인터파크 전체 공연 랭킹 1위를 차지한 ‘미저리’(7월 13일~9월 15일 세종문화회관)다. 지난해 국내 초연 이후 1년 3개월 만의 재연이지만, 캐스팅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다. 김상중·안재욱 등 작가 폴 역 배우들의 존재감도 크지만, 가장 이목을 끄는 건 여주인공 애니 윌크스 역의 김성령이다.

스티븐 킹 원작 서스펜스 스릴러물 #싱크로율 0% ‘미스터리 여인’역 #흰머리 늘어날 정도로 집중 연습 #대사 잊을까봐 뇌영양제까지 먹어 #관심 분야 늘리는 게 젊게 사는 법

잘 알려진 대로 ‘미저리’는 스토킹을 주제로 한 스티븐 킹 소설 원작의 동명 영화(1990)가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던 대표적인 서스펜스 스릴러물이다. 이 영화로 사생팬의 대명사이자 광적인 집착의 아이콘이 된 케시 베이츠의 명연기가 우리 뇌리 속에 박혀 있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우아하고 세련된 중년 여성의 ‘워너비’로 사랑받아온 김성령이 자신과 싱크로율 0%인 미스터리 여인 애니 윌크스가 되려는 이유는 뭘까.

26일 오후 연습시간을 쪼개 만난 김성령은 그런 생각이 ‘선입견’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이 작품에서 외모는 아무 의미 없어요. 애니는 그저 어떤 사람을 너무 좋아하게 된 보통 사람일 뿐이거든요.”

작년부터 슬럼프 … 다시 열정 일깨워

연기 변신에 대한 욕구가 있었나요.
“사실 작년부터 약간 슬럼프였는데, ‘미저리’를 통해 다시 한번 열정을 일깨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황인뢰 연출과도 인연이 있죠. 제가 처음 영화로 연기데뷔를 하고 첫 드라마 콜을 주신 게 황 연출인데, 그때 ‘저는 영화배우’라면서 거절했었거든요(웃음). 그후에도 매번 저를 생각해서 러브콜을 주시는데 실망시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아시다시피 제 나이가 되면 다양한 역할을 해볼 기회도 별로 없는데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나 싶기도 했구요.”
지금껏 맡아온 역할들과 결이 다른데.
“초연 배우 이지하씨가 쉽지 않은 작품이라 했었는데, 그 말을 진짜 실감하고 있어요. 살짝 후회될 정도로 힘이 드네요. 대사량도 보통 연극의 두세 배가 되고, 두 시간 동안 엉덩이도 못 붙이고 계속 혼자 움직여야 되거든요. 밤에 잠도 잘 못 자요. 오늘 미장원에 갔더니 흰머리가 많이 늘었다길래 충격 먹었어요. 원래 거의 없었거든요. 그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데, 잘될지 모르겠네요. 관객은 그냥 재밌게 보실 테지만요.”
연극 ‘미저리’ 포스터.

연극 ‘미저리’ 포스터.

김성령이 연극 무대에 서는 건 5년 만이다. 2014년 영화 ‘역린’ ‘표적’이 동시에 개봉되며 최고의 주가를 올릴 때 생뚱맞게 무대로 향했었다. 당시 원맨쇼에 가까운 연극 ‘미스 프랑스’에서 1인 3역으로 맹활약하며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던 그녀는 ‘미저리’와의 만남도 “운명같다”고 표현했다. “연극은 다른 걸 동시에 할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니거든요. 근데 마치 연극을 하라고 시간이 비워질 때가 있어요. 이번에 잘 맞아떨어졌죠. 결정하고 나니 들어오는 영화나 드라마도 맘에 들지 않더군요.”

‘미스 프랑스’도 힘든 작품이었는데.
“그땐 몸이 힘들었지 기분 좋게 방방 뛰기만 하면 됐어요. 지금은 감정을 폭발시키고 소리 지르는 게 쉽지 않죠. 해보지 않았던 부분이라 굉장히 도전이 돼요. 노화가 온 것도 있죠. 대사 잊을까봐 뇌영양제까지 먹고 있어요(웃음). 극장 규모가 커진 부담감도 있구요. 그런 두려움 때문인지, 오늘 아침 요가하는데 다리 하나를 못 들겠더군요(웃음).”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고 있나요.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있으니 처음엔 기본적으로 맞춰가려 했는데, 결국 저 자신과 잘 버무려져 가는 것 같아요. 섬찟하고 우울한 역할이라는데, 전 안 우울하거든요. 좋아하는 남자를 우리 집에 데려왔는데 너무 기쁘지 않을까요. 케시 베이츠의 이미지는 저도, 관객도 뛰어넘어야 할 벽인 것 같아요. 뉴욕 공연에 브루스 윌리스가 나왔을 때도 케시 같은 이미지의 배우가 아니었듯, 앞으로도 다양한 배우들이 계속 새로운 ‘미저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겠죠. 더블캐스팅인 길해연 선배와도 완전 달라요.”
김상중씨와 안재욱씨도 전혀 다르겠죠.
“너무 다르죠. 김상중 선배는 진지하면서 코믹한 부분을 살리려 하고, 안재욱씨는 원래 코믹한데 진지하려고 하죠. 같은 말을 해도 재욱씨가 하면 너무 웃겨요. 첫 대사부터 고비죠. 웃음을 못 참아서 정말 큰일이에요(웃음).”
애니의 집착 심리가 이해가 가나요.
“음악을 좋아하면 가수도 좋아하게 되듯,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 같아요. 하다 보니 제게는 스릴러 같지가 않아요. 그냥 좋아서 그런 건데. 뭔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면 자기 잘못을 모르게 되나봐요. 제가 애니가 되버린 걸까요.”
열광적인 팬덤을 경험해 봤나요.
“K팝을 너무 좋아해 한국에 와서 영어 선생님이 된 미국인과 친한데, 그 친구는 ‘세븐틴’을 너무 좋아해서 도겸이 출연하는 뮤지컬 ‘엑스칼리버’를 매일 보더군요. 지극히 정상적인 보통 사람이에요. 제 중국 팬클럽도 굉장해요. 생일 때 한국말로 녹음해서 선물도 보내고, 중국에 제 이름을 걸고 나무도 심었더군요. 중국에 촬영을 가면 어떻게들 알고 따라 오세요.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식사도 같이 하고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김성령은 미스코리아 진 출신의 공인미녀이자 세월이 비껴가는 ‘안티에이징’의 대명사지만, 스스로 털털한 여자라고 말한다. “평소엔 그냥 평범한 아줌마다” “관리 안 하는 것이 비결이다” 같은 ‘망언’도 자주 한다. “진짜냐”고 따져 물었다. “사실은 관리를 많이 하죠. 스타일리스트가 갖다 주는 옷을 잘 소화해야 하니 운동을 안 할 수 없어요. 워낙 부지런한 성격이라 일단 시작하면 멈추지 않구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니 관절이 아파 요가교실에 가기 귀찮았지만 억지로 갔어요.”

김성령에게도 갱년기가 왔을까요.
“애들이 아직 사춘기라, 사춘기가 갱년기를 이겼나봐요. 애들한테 치여 정신없이 지내고 있죠. 반환점을 돈 느낌은 있어요. 40대는 30대처럼 살았죠. 몸도 마음도 30대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괜히 ‘50’이란 숫자에 대한 마음의 선입견인 것도 같아요.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요. 쉬어야지 싶다가도 이틀만 쉬면 불안해 지니까요. 나이 들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첫 번째 화두가 건강이죠. 뭐든지 건강해야 할 수 있잖아요.”

“케시 베이츠 이미지는 넘어야 할 벽”

케시 베이츠.

케시 베이츠.

완벽해 보이는데, 콤플렉스도 있나요.
“사실 너무 많아요. 자학하는 스타일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부정적인 걸 긍정적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노력하게 되더군요. 제가 운동을 쉬지 않는 것도 집에 디스크 내력이 있어서예요. 운동을 쉬면 바로 디스크가 오거든요. 저희 집에서 저만 수술을 안 했죠. 엄마가 저에게 디스크를 주셔서 운동하게 됐고, 감사한 일이라 생각해요. 연기도 그래요. 늘 부족하다 생각하니까 연극까지 하게 됐죠.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한쪽 문이 열리는가 봐요.”

그는 50대 여배우로서 자신에게도 다양한 역할의 기회가 없다는 것은 쿨하게 인정했다. 30년 동안 배우하면서 아침드라마부터 시트콤, 연극, 오페라까지 다 해봤기에 당장 은퇴를 해도 미련은 없단다. 하지만 모든 문화 콘텐트가 젊은세대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쉬워 했다.

“대학로만 해도 그래요. 걷다 보면 민망할 정도로 젊은 사람들만 있죠. 정작 돈 쓰는 건 중년인데 왜 모든 걸 20대에 맞출까요. 점점 고령화사회가 되고 있는데, 이건 좀 모순인 것 같아요. 중장년층이 깨우쳐야죠. 한국 영화가 외국에서 상 받은 것도 주변에선 모르더군요. 제게 동안 비결을 묻는데, 연극도 영화도 자주 보러 다니고, SNS도 하면서 요즘 정보에도 민감한 게 젊게 사는 비결이에요. 우리부터 생각이 열려야겠죠.”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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