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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재산 환수 소송 11년···국가가 되찾은 건 '땅 1평'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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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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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가 친일파 이해승의 재산을 환수하려 낸 민사 소송에서 약 1평(4㎡)의 땅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나머지 토지는 이해승 후손의 소유로 남게 돼 법까지 바꿔가며 친일파 재산 환수에 나섰던 정부가 사실상 패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고법 민사 13부(부장판사 김용빈)는 26일 국가가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 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소유권 이전을 청구한 필지 중 1개 필지(4㎡)의 소유권 이전을 명령하고, 이 회장 측이 과거에 토지를 판 대금 3억 5000여만원을 국가에 돌려줘야한다고 판결했다

이해승은 1910년 한일합병조약 직후 일제로부터 조선 귀족 중 최고 지위인 후작 작위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식민 통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공으로 일제로부터 상을 받고, 황국신민화 운동에 자발적으로 나서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귀족의 지위와 특권을 누렸다. 그가 가진 토지 중 많은 부분은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받거나 일제로부터 이전받은 것이었다. 이 토지는 손자인 이 회장에게 상속됐다.

'친일재산' 환수 가능케한 특별법 허점에 후손에 땅 재반환

그런데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 재산조사위원회는 이해승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다. 당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국가귀속에관한특별법(친일재산귀속법)에 따르면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를 한 자’의 재산은 국가로 귀속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에 이 회장은 경기 포천 선단동 임야 등 토지 192필지를 국가에 돌려줬다. 당시 시가로 300억대로 추정됐다.

이듬해 이 회장은 국가 귀속 결정을 취소하라며 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1심은 이 회장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2심은 이 회장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 회장 측은 “할아버지가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것은 맞지만,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 황실의 종친이라는 이유로 후작 작위를 받았다”며 귀속처분의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2심 재판부는 “이해승이 한일합병의 공으로 후작 작위를 받았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며 “재산권을 박탈당하는 처분 대상자에게 법령을 지나치게 불리하게 확장하거나 유추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2010년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고 땅은 다시 후손에게로 돌아갔다.

비난 여론이 일자 2011년 국회는 법 개정에 나섰다. 친일재산귀속법을 고쳐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기준 중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라는 문구를 없애고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로 고쳤다. 부칙으로 법 개정 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이들에게도 개정법을 소급해서 적용할 수 있게 했지만, 만약 개정 전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았다면 이를 적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민사 법원 “대법 확정 판결 났다면 소급 어려워”

2015년 국가는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며 재심을 청구했지만 이미 청구 기간이 지난 후였다. 민사 소송에도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지난해 4월 1심 재판부는 “국가가 청구한 토지는 이미 귀속 대상이 아니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토지”라며 소송을 기각했다. 2심 재판부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다만 국가가 소송을 낸 땅 중 약 1평 남짓인 4㎡는 이전 대법원 확정판결에 포함된 땅이 아니므로 돌려줄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 회장이 이미 팔아버린 땅 대금 중 3억 5000여만원도 국가에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회장 측은 대금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시효인 5년이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런 주장이 신의성실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반환 대상이 되는 8필지가 팔린 시점은 친일재산귀속법이 논의·제정됐던 2004년~2005년 사이 집중됐다. 법원은 “친일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킬 공익이 피고가 입을 불이익 보다 압도적으로 크다”고 판결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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