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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 고집했더니 혁신적인 향수가 나왔다"…향수 바이레도 창립자 벤 고햄이 말한 성공 비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06년 이 향수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충격적”이라고 평했다. 향수 강국으로 꼽히는 프랑스 향수도 아니었다. 스웨덴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향수 하나가 전에 보지 못한 형태와 향, 스토리를 무기로 뉴욕·파리 패션피플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 이야기다. 지난 5월 20일 바이레도의 설립자 벤 고햄이 서울을 찾았다. 아시아에서 첫 번째,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문을 여는 바이레도의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혁신’과 ‘남다름’이 성공 키워드가 되는 이 시대에 ‘혁신적인 향수’를 만든 그를 직접 만났다.

지난 5월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앞에 바이레도 창립자 벤 고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향수 '바이레도'의 아시아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것.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 앞에서 그가 포즈를 취했다. 장진영 기자

지난 5월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앞에 바이레도 창립자 벤 고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향수 '바이레도'의 아시아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것.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 앞에서 그가 포즈를 취했다. 장진영 기자

도산공원 앞 거리. 여느 성인 남자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호리호리한 몸매의 남자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바이레도 설립자 벤 고햄은 인도인 어머니와 캐나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토론토(캐나다), 뉴욕(미국), 스톡홀름(스웨덴)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농구 선수로 활동하다 스톡홀름 예술대학에 진학해 순수미술을 공부하고 지금은 향수를 만든다. 이 독특한 이력의 남자가 만드는 향수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향수 강국인 프랑스·이탈리아 태생도 아닌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성공 비결은.
“독특함이 바이레도 향수의 가장 중요한 컨셉트이자 무기다. 향수 강국인 프랑스·이탈리아의 오랜 역사를 가진 브랜드들이 갖고 있지 않은 점이다. 오히려 부족한 경험이 우리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성격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다행히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동의해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뭐가 다른가.
“첫 번째는 향기다. 그 다음은 퍼퓨머리(향수회사) 스타일. 나는 명확성과 주관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향수의 향을 맡았을 때 빨리 어떤 향인지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아주 적은 수의 원료를 사용한다. 어떨 땐 5개 이하로 쓴다. 여느 다른 브랜드의 향수는 60~70가지를 써서 복잡한 향을 만든다. 나는 이런 과정이 불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특징 때문에 우리 향수는 정말 좋아하거나 아예 싫어하거나 양극으로 갈린다.”

-적은 수의 원료로는 고급스러운 향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도 한다.
“예컨대 수프를 만들 때 너무 많은 재료를 넣으면 맛이 망가지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좋은 재료가 가진 본연의 향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나는 고급스러운 최상품 천연재료를 찾는다. 다른 것을 섞지 않아도 천연 재료 안에 이미 복잡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단순함만큼 강렬한 건 없다"는 벤 고햄. 그가 가진 철학을 녹여낸 독특한 향과 향수병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장진영 기자

"단순함만큼 강렬한 건 없다"는 벤 고햄. 그가 가진 철학을 녹여낸 독특한 향과 향수병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장진영 기자

바이레도의 향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디자인의 병 또한 바이레도를 매력적으로 만든 요인이다. 윤경희 기자

바이레도의 향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디자인의 병 또한 바이레도를 매력적으로 만든 요인이다. 윤경희 기자

단순함·명료함에 대한 그의 생각은 직접 디자인한 향수병에서도 드러난다. 투명한 유리병에 검은색 반구 모양의 뚜껑, 하얀 라벨에 검은색 잉크로 새겨진 향수 이름이 전부다. 그는 “연구실이 떠오르는 단순한 용기를 쓰고 싶었다. 향수병보다는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으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단순해 보이지만 향수병 디자인에만 2개월이 걸렸고 완성품이 나오기까지 1년 가까이 공을 들였다.

향수 이름 역시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그가 만든 첫 향수의 이름은 ‘그린’(Green). 어릴 때 가족을 떠난 아버지에게서 났던 냄새가 초록색 완두콩 냄새였다는 것을 회상하면서 만든 향수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바이레도의 향수 ‘블랑쉬’의 뜻은 ‘흰색’이다. 사랑하는 연인의 순수함을 표현한 향이다. 브랜드 이름 ‘바이레도’ 역시 ‘By Redolence’(향기에 의한)의 줄임말이다.
-스스로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향수를 많이 만들었다.
”개인적인 추억을 반영해 향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즐긴다. 재미있는 건 나만의 추억과 경험이 담긴 향이어도 그 향을 맡은 사람이 같은 것을 떠올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걸 ‘컬렉티브 메모리’(집단적 기억)라고 부른다.”

-기억·추억을 소재로 삼는 이유가 있나.
“내가 향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아트스쿨에 다닐 때다. 당시 사진ㆍ미술 등 시각적인 교육을 많이 받았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냄새’가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에 매료됐다. 한 모임에서 우연히 유명 프랑스 조향사 피에르 울프를 만났고, 그와 이야기하면서 기억과 냄새를 조합하는 나만의 컨셉트를 정립할 수 있었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졸업 후 그에게 전화해 향수 제조를 의뢰하고 바이레도를 만들었다.”

-바이레도는 ‘트렌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유가 뭘까.
“지금의 향수 트렌드는 남성 향, 여성 향으로 구분하는 개념이 없다. 요즘은 남자가 플로럴 향을, 여자가 우디 향을 쓰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바이레도는 처음부터 ‘냄새에는 성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게 지금의 트렌드와 딱 맞아 떨어진 것 같다.”

벤 고햄은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향수를 만든다. 장진영 기자

벤 고햄은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향수를 만든다. 장진영 기자

바이레도의 벤 고햄이 선보인 가방. [사진 바이레도]

바이레도의 벤 고햄이 선보인 가방. [사진 바이레도]

이번에 문을 연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향수 외에도 그가 디자인한 가방과 지갑이 함께 선보인다. 일찍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2017년부터 아예 패션 라인으로 만든 것으로, 한국엔 이번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과 함께 처음 공개됐다.
-향수 브랜드인데, 가방을 만든 이유는.
“가죽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관심이 있는 소재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점이 매력적이다. 바이레도를 좋아하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향수가 주는 친밀감을 패션으로도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한 인터뷰에서 리카르도 티시(현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좋아하는 디자이너로 꼽았다. 지금 가장 좋아하는 패션 디자이너는 누군가. 여전히 티시?
“아주 많다. 물론 여전히 리카르도를 좋아한다. 그와 함께 킴 존스(디올 남성복), 버즐 아블로(루이비통 남성복), 크리스 반 아쉐(벨루티)…. 사실 너무 많다. 다 친한 친구들이다. 하하. 참. 그리고 좋아하는 한국 브랜드가 하나 있다. 'Kanghyuk(강혁)'. 이 사람들의 패션 스타일이 너무 좋다.”

-앞으로의 계획은.
“아주 많다. 이케아와 협업한 홈 프레그런스가 올해 말 론칭할 예정이고, 아직 비공개이긴 하지만 메이크업 라인도 곧 선보인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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