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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눕터뷰]'넥타이 벗고 음악을 입다' 뮤직 티셔츠 마니아 백영훈

중앙일보

입력

70년생, 89학번, 지천명(知天命)을 한살 앞둔 남자가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했다.

백영훈씨가 300여벌의 뮤직티셔츠들 중에서 가장 아끼는 것들만 골라 촬영에 임했다. 장진영 기자

백영훈씨가 300여벌의 뮤직티셔츠들 중에서 가장 아끼는 것들만 골라 촬영에 임했다. 장진영 기자

“중학생 때 처음 들었던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은 정말 충격이었어요. 그 강렬함에 사춘기 소년의 가슴이 쿵쾅댔죠. 이후 아바, 신디 로퍼, 컬쳐클럽, 듀란듀란 등을 팝 음악으로 만났죠. 저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라면 팝이 전해준 부푼 낭만으로 가득했던 그 시대를 기억할 거예요”

미국에 다녀온 친구로부터 선물받은 듀란듀란의 티셔츠. [사진 백영훈]

미국에 다녀온 친구로부터 선물받은 듀란듀란의 티셔츠. [사진 백영훈]

평범한 회사원 백영훈(49)씨의 이야기다. 영미권을 중심으로 번진 팝 음악의 전성기에 자라 자칭 '팝 키드'였던 그는 지금은 자신을 '뮤직 티셔츠 마니아'라고 소개한다. 20여년 전부터 국내·외 뮤지션들과 관련된 티셔츠를 모으기 시작해 현재 300여벌을 소장하고 있다. 백씨는 주말이면 갑갑한 넥타이를 벗어 던지고 음악을 입는다.

지난 2017년 지산 록페스티벌에서. [사진 백영훈]

지난 2017년 지산 록페스티벌에서. [사진 백영훈]

“청소년기부터 음악과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빌리진을 들은 이후로 팝의 세계가 더 넓게 펼쳐졌죠. 기타리스트 제프 벡의 ‘People Get Ready’로 록의 세계에 호기심이 생겼고, 혈기 왕성했던 고등학교 때는 메탈리카에 빠져들었습니다. 고3 수험생 시절은 U2와 함께 버텼어요. 운동장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몰래 듣던 'With or Without You’는 설렘 그 자체였습니다”

블랙사바스의 티셔츠를 입고 데이비드 보위 포스터 앞에 섰다. 백씨가 입은 티셔츠는 영화 어벤저스에서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입었던것. [사진 백영훈]

블랙사바스의 티셔츠를 입고 데이비드 보위 포스터 앞에 섰다. 백씨가 입은 티셔츠는 영화 어벤저스에서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입었던것. [사진 백영훈]

그때부터 ‘음악을 모으는 행위’를 시작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하곤 했어요. 나름의 편집 음반을 만들어 좋아했던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했고요. LP도 모았는데 돈이 없던 시절이라 청계천에서 빽판(해적판)을 많이 샀습니다. 종로와 대학로에 있던 음악감상실도 많이 다녔어요. ‘나만 아는 공간’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죠” 그는 팝에 대한 호기심으로 영문학과에 진학해 외국계 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선·후배들 보다 문화적인 혜택을 많이 누린 세대라고 생각해요. 세상을 향한 활동보다 개인 취향 만족을 우위에 놓을 수 있었죠.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새로운 뮤지션들의 음반이나 공연 관람을 별 어려움 없이 소비할 수 있었습니다”

백씨가 특별히 아끼는 다섯개의 티셔츠. 검은색 'Reckless Records 티셔츠'는 영국 런던 소호에 위치한 레코드점에서 구입한 것이고, 흰 색 '데이빗 보위 블랙 스타-폴 스미스 에디션 티셔츠'는 소장한 것들중에서 가장 고가이다. 세번째는 첫 해외원정 공연관람인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티셔츠'이고, 네번째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 High Fidelity의 대사 한 부분이 새겨진 티셔츠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긴팔 티셔츠는 록음악의 세계에 빠지게했던 제프 벡의 연주 모습이 담긴 맞춤 티셔츠다. 장진영 기자

백씨가 특별히 아끼는 다섯개의 티셔츠. 검은색 'Reckless Records 티셔츠'는 영국 런던 소호에 위치한 레코드점에서 구입한 것이고, 흰 색 '데이빗 보위 블랙 스타-폴 스미스 에디션 티셔츠'는 소장한 것들중에서 가장 고가이다. 세번째는 첫 해외원정 공연관람인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티셔츠'이고, 네번째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 High Fidelity의 대사 한 부분이 새겨진 티셔츠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긴팔 티셔츠는 록음악의 세계에 빠지게했던 제프 벡의 연주 모습이 담긴 맞춤 티셔츠다. 장진영 기자

그렇게 음악을 즐기던 그는 지난 95년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음악을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 내한공연을 가진 팻 메스니(Pat Metheny)의 공연에서 그들이 그려진 티셔츠를 처음 만났다. “이국적인 여행의 이미지들과 앨범명이 콜라주 된 디자인이었어요. 등 쪽에는 그해의 월드투어 장소들이 적혀있었죠. 그 공연의 첫 곡이 ‘Have You Heard’였는데 그 옷을 입고 연주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 올랐어요” 그때부터 그는 음악을 입기 시작했다. 그렇게 20여년 간 하나 둘 모은 뮤직 티셔츠는 현재 300여벌이 넘는다.

폭염속 떼창을 이끌었던 라디오헤드의 뮤직 티셔츠. [사진 백영훈]

폭염속 떼창을 이끌었던 라디오헤드의 뮤직 티셔츠. [사진 백영훈]

음악을 입고 직접 듣기 위해 해외 원정도 시도했다. "영국 록 그룹 라디오 헤드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유독 한국에만 내한 공연을 오지 않아 직접 보러 가기로 결심했죠. 2003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스위스로 향했습니다. 몽트뢰는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사랑했던 고장으로 제네바호가 잘 보이는 곳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기도 한, 음악적 영감으로 가득한 도시죠"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라디오헤드의 공연을 직관하는 데 실패했다. 페스티벌 입장티켓은 구했으나 현장 판매하는 라디오헤드 공연의 티켓을 구매하지 못했다. 대신 다른 공연들로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허탈한 실패 후 9년이 지나서야 라디오헤드를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열린 지산록페스티벌 무대에 라디오헤드가 오른 것이다. "2~30대와 어울려 폭염 속에서 떼창을 했습니다. 그간의 기다림 덕인지 그들이 불렀던 스물 다섯곡의 노래에서 하나하나 각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물론 라디오헤드를 입은채 말이죠!!!"

백씨는 "뮤직 티셔츠를 입는다는건 음악 수집 여정의 기록이자 소소한 취향의 반영"이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백씨는 "뮤직 티셔츠를 입는다는건 음악 수집 여정의 기록이자 소소한 취향의 반영"이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그의 ‘뮤직 티셔츠 예찬론’은 이렇다.

“해골을 뚫고 전기의자에 박력 있게 새겨진 메탈리카의 로고, 녹색과 노란색 배경에 여전히 평화롭게 반복되는 밥 말리, 에비 로드를 지나가는 전설의 딱정벌레들(비틀즈), 숫자 ‘3’의 상징만으로도 멋진 챈스 더 래퍼, 로봇 머리 두 개가 반짝이는 다프트펑크의 아이콘 등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는다는 건 내 음악 수집 여정의 기록이자 소소한 취향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주제로 나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아이템이죠. 목이 꽉 끼는 셔츠를 벗어 던지고 가슴에 그려진 ‘S’자를 뽐내며 하늘을 나는 슈퍼맨의 기분이랄까요. 한 벌에 3~4만원을 넘지 않고, 옷장에 모셔두지만 않는다는 원칙도 있으니 철없는 어른으로 생각하지는 말아주세요”

사진·글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눕터뷰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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