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잎이 초속 10㎝로 흩날리던 지난해 4월, 일본의 한 신문 만평이 눈길을 끌었다. 동북아 6개국 정상이 벚꽃 잎으로 묘사됐는데, 그 가운데 아베 신조 총리의 꽃잎만 꽃대에서 홀연히 떨어지고 있었다. 1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아베 총리만 외톨이처럼 떨어져나가는 모습이었다. 일본만 북한 비핵화 논의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을 묘사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약 1년. 지금 상황은 어떤가. 여전히 아베 총리는 관계국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지 못한 유일한 정상이다. 물밑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조건없이 만나자”는 러브콜에 북한은 여전히 답을 않고 있다. 그런데 북한과 멀어진 건 아베 총리 뿐만이 아니다. 북한 관계에 올인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북·미관계가 교착된 뒤, 설 땅이 좁아진 상태다. 떨어진 꽃잎은 아베 총리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평양에서 들리는 소식으로는 북한 지도부는 이제 아예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별개로 취급하고 있다고 한다.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외교분야의 전면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대외관계를 총괄했던 김영철 부위원장이 통일전선부장 자리에서 물러난 게 그 결과다. 김 부위원장의 휘하에서 한 몸처럼 움직였던 외무성과 통전부가 분리됐다는 걸 의미한다.
1년전 “남·북·미가 양 수레바퀴처럼 함께 굴러가고 있다”(대북소식통) 고 했지만, 이제는 남북과 북·미가 전혀 다른 수레를 끌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는 북·미관계에 더 이상 한국이 낄 자리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수시로 친서가 오갈만큼 직접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말라”는 말이 나온 배경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한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 4월 11일 미국 방문이었다고 전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논의하러 간 문 대통령에게 크게 실망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인데 배짱이 없다”고 봤다고 한다. 대화 동력을 살리긴커녕 북·미 양쪽에서 미운털이 박힌 셈이다. 중재자 외교의 험난한 일면이다.
벚꽃에 이제 누가 남아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짜피 꽃잎은 시간이 지나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 다음이 문제다. 시진핑 주석이 20일 방북까지 하면서 각국 정상들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중재자 외교, 촉진자 역할도 차분하게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설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