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안혜리의 시선

김제동씨, 그 정도면 뇌물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방송인 김제동과 가까운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자문위원(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2월 문재인 정부엔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취지로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단지 맘에 들지 않는 공연을 했다는 이유로 밥줄을 자르고 감시·사찰해 공연장 섭외조차 어렵게 만들어 결국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블랙리스트다.” 앞서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7월엔 김제동의 토크콘서트 동반자인 법륜스님 등이 만든 4대강 생명살림 불교연대가 주최한 생명평화 대화마당에 나와 ‘본인이 연출한 노무현 추모 콘서트에 김제동이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방송에서 다 하차하게 됐다’고 했다. 김제동이 보수 정권의 대표적인 블랙리스트 피해자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보수 정권 때 피해 안 본 ‘피해자’ #‘블랙리스트 보상’ 받듯 세금 챙겨 #유시민 “1000만원은 합법적 뇌물”

탁 전 행정관 말대로 정치적 지향이 다르다고 밥줄 자르고 공연장 섭외조차 못 하게 만드는 건 범죄다. 문재인 정부 들어 요란하게 벌인 전 정권과 전전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수사를 통해 탁 전 행정관 발언은 사실로 공인받았고, 김제동은 공식적으로 블랙리스트 피해자가 됐다. 김제동이 보수 정권 10년 동안 방송 다 끊기고 공연장 섭외도 못 해 큰 피해를 본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 불거진 지자체 고액 강연료 논란으로 전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방송이 끊긴 적도 공연장 섭외에 어려움을 겪은 적도 없었다는 뜻밖의 사실 말이다. 문재인 정권 이후 공영방송 KBS의 시사프로그램 ‘오늘밤 김제동’과 MBC ‘굿모닝FM 김제동입니다’ DJ를 꿰차기 훨씬 이전인 2011년부터 ‘힐링캠프’(SBS)와 ‘톡투유’(JTBC)를 각각 5년, 2년간 진행했다. 중도 하차했지만 2016년 예능 ‘미운 우리새끼’에도 어머니와 출연했다. 감시와 사찰로 공연장을 못 구하기는커녕 ‘김제동 토크콘서트 노브레이크’ 홍보문구에 나온 대로 2009년 시작 이래 전국 각지의 크고 작은 공연장에서 지난 4월까지 총 309회 공연을 했다. 또 비록 지금 문제가 된 시간당 1500만 원 수준은 아니지만 2012년과 2014년에도 100만~300만 원씩 받고 지자체 강연까지 할 건 다 했다.

밥줄 잘라 모든 걸 포기하게 하는 게 블랙리스트라는 탁 전 행정관 정의대로라면 김제동은 블랙리스트 피해자 축에도 못 낀다. 이쯤 되면 오히려 보수 정권에선 블랙리스트 피해자 코스프레로 박수받으며 돈을 벌고, 정권 교체 이후엔 정권 핵심 인사들과 가깝다는 데 주목하는 여당 소속 단체장의 전국 지자체를 한 바퀴 돌며 세금을 자기 주머니로 쓸어담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김제동처럼 문재인 정부 이후 지상파에 입성한 나꼼수 출신 김어준은 서울시 세금으로 운영되는 tbs 교통방송의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출연료는 시장이 결정한다”고 편을 들었다. 법륜스님은 “가격을 낮게 책정하면 덤핑”이라고도 했다. 초등생도 안다. 지자체는 시장이 아니라는 걸. 세금으로 퍼주는 강연료는 개인의 능력이나 자본주의 논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알고도 이런 발언을 했다면 교묘하게 본질을 흐리려는 나쁜 의도일 테고, 모르고 했다면 무식하다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정부의 연사초청 강연에는 대기업 회장급의 특1급 강사가 시간당 최대 40만 원, 비영리민간단체에 지원할 땐 이보다 더 적은 시간당 30만 원이라는 정부의 명확한 지급기준이 있지 않나. 원칙에 어긋난 과한 강연료를 받은 게 알려져 공분을 사고서도 ‘공감의 아이콘’이라는 김제동은 그가 평소 그렇게 같이 아파하고 응원한다던 청춘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긴 데 대해 최소한의 유감 표명은커녕 “기획사에 연예인이 나 혼자인데 식구 6명이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본질에서 벗어난 엉뚱한 해명만 늘어놓았다.

만약 그가 강연했던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나 광주MBC 무대에서 1000만 원을 받았다면 “판사 망치와 목수 망치 값어치가 같아야 한다”던 그의 평소 위선을 지적할 수는 있겠으나 언론이 정색하고 비판할 일은 아니다. ‘오늘밤 김제동’을 통해 유사 언론인 행세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김영란법 적용을 받는 언론인도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지지자들 주장대로 그저 보수 언론의 흠집 내기일까. 아니다. 오히려 뇌물 수수라는 중범죄로 봐야 한다. 김제동과 가까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주장이다. 유 이사장은 2016년 ‘썰전’(JTBC)에서 “두 시간 강의하고 강연료 1000만 원은 강연료가 아니라 뇌물”이라고 했다. 합법적인 뇌물수수 수단이라는 얘기다. 맞는 말이다.

김제동씨, 이건 뇌물입니다. 참, 지자체 300만 원, 기업 1550만 원이 본인 강연료 균일가라는 탁 전 행정관에게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