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손병두 서강대 'CEO 총장' 취임 1년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서강대 손병두(65) 총장은 "학교도 기업만큼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좋은 제품을 만들어 고객에게 서비스하듯 학교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해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취임(2005년 7월 18일) 1년을 맞는 손 총장을 10일 오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내내 대학 운영과 기업 경영을 비교하며 경제용어를 자주 사용했다. 손 총장은 지난 1년 동안 학교발전기금으로 160억원을 모았다. "동문들을 찾아다니며 학교의 비전을 설명하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얻은 결과"라는 설명이다. "앞으론 기업에서 더 많은 기금을 유치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정부의 고교평준화 정책과 개혁 노선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차별화가 있어야만 특색 있는 교육이 있을 수 있고, 이것이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또 "개혁이란 게 사람을 피곤하고 우울하게 하면 안 된다. 그건 하수다. 변화에 즐겁게 동참하도록 하는 게 개혁이며 진정한 리더십"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인과 총장의 역할에 대해선 "기본 원리는 똑같다. 시장(기업)에 최고의 제품(인재)을 내놓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퇴임 후 성공한 총장이라는 평가를 받아야만 대학과 기업 간의 인사 교류가 활발해져 각자가 더 큰 경쟁력을 갖추지 않겠느냐"는 포부도 내비쳤다.

-서강대는 그동안 '소수 정예'를 추구해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한 학년에 160명 정도씩 모집하던 1960년대에는 소수 정예가 가능했다. 다른 대학에 비해 지금의 서강대 규모(학부.대학원 학생 1만2000여 명)는 적정한 편이다. 앞으로는 서강대의 장점을 되살리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인성.인품 교육, 국제화 교육, 실력 배양이란 세 가지 교육 목표를 갖고 있다."

-가톨릭대와의 통합 얘기가 나오는데.

"미국 하버드 대학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비즈니스 스쿨(MBA), 메디컬 스쿨(의학전문대학원)이 유명하다. 서강대는 의대가 없어 약하다. 이런 점에서 가톨릭대와 공감대가 형성됐다. 교류.협력을 촉진해 나가자고 합의한 단계다. 통합론이 근거 없이 떠돌던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은 실질적인 협력을 진행 중이다."

-취임 1년 만에 발전기금 160억원을 모금했다는데.

"기업체보다는 동문 위주로 모금했다. 동문을 조직화하고 학부모에게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내년부터는 기업체들에 학교의 비전을 설명해 직접 기부토록 할 계획이다. 취임 전만 해도 학교 안팎에 패배주의.냉소주의가 배어 있었다. 이젠 구성원들 간의 불협화음이 크게 완화돼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본다."

-대학이 예전의 '상아탑'이란 이미지와는 많이 변했다.

"오늘날 사회는 급격히 변화하면서 대학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도 달라졌다. 대학 졸업자들은 기업으로 간다. 하지만 기업에서 대학 졸업자를 쓸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제는 수요자 중심으로 우수 인재를 공급하는 곳이 대학이 돼야 한다. '불량 인재'는 기업에서 외면당한다."

-최근 학교와 학생 사이에 갈등을 빚는 대학이 많다. 바람직한 사제관계는.

"나는 대화론자다. 대화를 하다 보면 뭐든지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요구 중 정당한 것은 수용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설득해야 한다. 요즘 학생들과 e-메일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교환한다."

-학사 과정 강화, 교수들에 대한 성과급(인센티브) 지급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데.

"학교의 역할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출석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게 제도를 강화했다. '서강고등학교'를 재현하고 싶다. 이를 소홀히 하면 학교는 학부모에 대한 '죄인'이 된다. 일정 기준의 토익 성적을 요구하는 영어졸업 인증제를 도입했고, 'English zone(영어 전용 기숙사)'을 만들었다. 교수 중 절반에게 연구 실적에 따라 최고 50%의 성과급을 지급할 계획이다."

-과거의 '서강학파'를 재현하겠다고 했는데.

"서강학파는 한국 경제발전을 견인해온 주역이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민주화를 거쳐 선진화 단계에 있다. 선진화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선 시장경제만이 그 대안이다. 정책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제대로 된 시장경제 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내길 기대하고 있다."

-정부가 입시 등에서 대학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있다.

"학교에 와 보니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규제 축에도 못 낄 정도로 간섭이 심하다. 국가경쟁력은 교육에서 나오고 교육경쟁력은 차별화에서 시작한다. 학교마다 특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대학은 조직 하나 바꾸는 것, 학생 한 명 뽑는 것까지 간섭당하고 있다. 영국의 한 관리는 '삼성전자가 성공한 비결은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예전에 반도체가 뭔지 잘 몰라 규제를 안 했기 때문'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업이 사원을 선발하는데 산업자원부에서 간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학에 대한 규제를 확 풀어야 할 때다."

-학생들이 사회적 현안에 너무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발등의 불은 취업 문제다. 취업한 뒤에야 꿈이고 이상이고 실현할 수 있다. 무관심한 게 정상이라고 본다. 학생들은 어학능력, 전공 등 '기본 체력'을 강화할 때다. 하지만 국민들의 안보 무감증은 걱정된다. 기업에서 합병을 하다 보면 강할 때 더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된다. 통일을 원한다면 우리가 더 강한 힘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1년을 정리한다면.

"신부가 아닌 가톨릭 평신도인 데다 CEO 출신이어서 처음엔 부담이 컸다. 교수 출신이 아닌데 총장을 제대로 하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경영 노하우 등 그동안 경제 현장에서 배운 바를 학교 경영에 접목하려 했다. 계획했던 일이 거의 차질 없이 진행돼 다행으로 생각한다."

정리=김호정 기자
사진=정지영 인턴기자

손병두 총장은

서강대 개교 이래 신부(神父)가 아닌 평신도 출신의 첫 총장이다. 전경련 부회장을 지낸 'CEO 출신 총장'으로 4년 임기 동안 무보수로 일하며 1000억원의 학교발전기금을 모으겠다는 포부를 밝혀 주목을 끌었다. 활발한 대외활동으로 넓은 인맥을 갖고 있으며, 끝까지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3개월치 약속이 잡혀 있는 다이어리와 각종 아이디어, 외부 인사 조언을 빼곡히 적은 수첩을 갖고 다닌다. 요즘 하루에 10여 명의 외부인사를 만나며 하루에 일곱 번이나 식사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총장직을 '인생을 마감하는 하산길'로 비유하며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인재 양성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했다.

?약력=▶경남 진양(65세)▶경복고.서울대 경제학과▶동서경제연구소 소장▶금융개혁위원회 위원▶전경련 부회장▶서강대 총장(2005년 7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