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월드컵은 스타 또는 심판 놀음 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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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탈리아 축구팬들이 고대 로마의 노천 경기장인 시르쿠스 막시무스에서 결승전을 관전하며 열광하고 있다. [로마 로이터=연합뉴스]

한 달간 지구촌을 환호와 탄식으로 들끓게 한 독일 월드컵이 10일(한국시간) 끝났다. 독일 월드컵은 축구의 새로운 방향과 유행을 만들어냈다.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본다.

◆ 독일 월드컵은 (광장의 축제)다.

월드컵의 중심이 경기장에서 광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보다 '팬 페스트'라는 이름의 응원광장이나 거리에서 응원한 사람이 네 배 이상 많았다. 비싼 입장료 부담을 느끼지 않고,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가까운 곳에 모여 잔치를 즐겼다. 2002년 한국에서 시작된 '거리 응원'이 2006년 독일을 거치면서 '광장 응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국제축구연맹(FIFA)은 재빨리 '장외 응원권(public viewing right)'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걷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발이 만만치 않다.

◆ 독일 월드컵은 (디지로그)다.

이번 대회는 본질상 아날로그인 축구가 디지털의 도전을 받아 디지로그(digilogue: digital+analogue)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잉글랜드를 축구의 '종주국'이라고 하는 건 틀렸다. 그들은 수천 년 전부터 행해지던 '공차기'를 19세기에 규범화하고 널리 전파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돼지 오줌보든, 해골이든 가리지 않고 찬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둥근 나무 열매를 차면서 노는 아이들이 있다. 이번 대회부터 헤드셋을 착용한 주.부심이 등장했다. 이들은 무선으로 대화하며 판정을 상의한다. 더욱 선명해진 TV 화면은 선수들의 땀이 어느 쪽으로 튀는지까지 잡아낸다. 결승전에서 베를린경기장의 관중은 지단이 왜 퇴장당했는지를 몰랐지만 TV 시청자들은 알았다. FIFA는 골.노골을 알려주는 칩을 내장한 축구공까지 도입하려 한다. 독일 골키퍼 레만은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의 승부차기 두 개를 막아냈다. 2년간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킥 방향을 비디오로 분석한 결과다.

◆ 독일 월드컵은 (올림픽 마라톤)이다.

올림픽의 꽃은 마라톤이지만 기록은 썩 좋지 않다. 신기록보다는 우승을 노리기 때문이다. 월드컵도 닮아가고 있다. 선수와 감독은 화끈하고 재미있는 경기보다 이기는 경기를 원한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정도만 빼고는 대부분 수비를 탄탄히 하다가 역습을 노리는 전략으로 나섰다. 수비진은 포(4)백에 중앙 수비형 미드필드 2명을 합쳐 기본이 6명이고, 여기에 좌우 미드필더도 공격보다 측면 방어에 주력했다. 4-2-3-1 포메이션이 대세였다. 이러니 골이 많이 날 수가 없었다. 이번 대회는 64경기에서 147골이 나와 경기당 2.14골을 기록했다. 사상 최저 골이었던 2002 한.일 월드컵(161골.평균 2.52골)보다 더 적다. FIFA는 당황해하고 있다. 공격 축구를 유도하기 위해 오프사이드 규정의 해석을 완화했고, 공인구인 '팀 가이스트'의 반발력도 커져 골 풍년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베를린=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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