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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1000번 탄 박주선, 유튜브로 뜬 이언주, 예산 전문 추경호…이래야 여의도서 살아남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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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호모 여의도쿠스 ② 

“처음 당선된 순간엔 ‘이제 다 됐구나’ 싶었다. 그런데 딱 1년 좋더라. 그 뒤론 ‘다음 선거는 어떻게 지키지?’라는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겠더라.” 주말마다 지역구로 내려가는 한 야당 초선 의원의 말이다. 한 중진 의원은 아예 “당선된 직후부터 다음 선거만 생각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48.6%. 19대 국회의원 중에 20대 국회 진입에 성공한 비율이다. 19대 의원 두 명 중 한 명만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았단 얘기다. 역대 총선의 물갈이 비율에 비춰보면 이번 20대 의원들도 내년 4월 21대 총선에서 당선되는 경우는 대략 두 명 중 한 명 꼴이 될 공산이 크다.

이처럼 ‘호모 여의도쿠스’의 생존은 험난하다. 운 좋게 여의도 의원회관에 방이 생겼다고 해도 4년 뒤에도 살아남을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본인이 아무리 기를 써봐야 선거때 큰 바람이 한번 불고 나면 추풍낙엽 신세가 되는게 ‘호모 여의도쿠스’의 운명이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탄핵 역풍’을 등에 엎고 과반 의석을 얻었지만, 4년 후 18대 총선에선 한나라당이 ‘뉴타운 바람’을 앞세워 과반을 가져간 게 그런 경우다. 선거는 고사하고 당내 물갈이 대상에 올라 공천조차 못 받는 일이 허다하다.

살벌한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호모 여의도쿠스는 임기 4년 동안 저마다의 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한다. 이들의 생존 전략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여의도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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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미디어 올인형=“정치인에겐 부고 빼곤 다 좋은 기사”라는 말처럼 국회의원들에게 인지도 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다. 인지도를 높이려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길이 최선이다. 그럴려면 주요 당직을 맡는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의원들이 당직에 목을 매는 이유다.

 김정재 자유한국당(포항 북)의원이 4월 8일 오전 포항시청 8층 브리핑룸에서 지진특별법 제정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김정재 자유한국당(포항 북)의원이 4월 8일 오전 포항시청 8층 브리핑룸에서 지진특별법 제정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원내대변인을 맡은 초선의 김정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임기 초반만 하더라도 지역에 가면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원내대변인을 하고, TV 토론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면서 지역 반응이 많이 달라졌다. 요즘은 손을 잡아주시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도 한다”고 말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처럼 스스로 이슈를 만들어 이름을 알리는 사례도 있다. 하 의원은 공격적 여성우월주의를 표방하는 ‘워마드’를 비판하며 젠더 이슈에 불을 붙였다. 본인 스스로도 “이슈 선도형”이라고 칭한다. 이언주 무소속 의원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독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 의원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이언주 TV’는 구독자가 22만명에 달한다.

1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의 및 확대간부회의에서 하태경 최고위원이 자료를 보여주며 워마드를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규정하며 여성가족부의 적극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1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의 및 확대간부회의에서 하태경 최고위원이 자료를 보여주며 워마드를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규정하며 여성가족부의 적극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미디어 정치에 너무 매몰되면 부메랑을 맞는 경우도 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월 국회를 찾은 윤지오씨와 간담회를 갖고 기자회견을 열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윤지오씨가 사기 혐의로 소송까지 당하며 상황이 반전되자 안 의원도 궁지에 몰렸다. 결국 안 의원은 14일 “선한 의도로 도우려 했는데 난처한 입장이 됐다. 모두 제 탓”이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고 장자연 씨 사건의 증언자인 동료 배우 윤지오 씨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장자연 증언자, 윤지오 초청 간담회'에서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고 장자연 씨 사건의 증언자인 동료 배우 윤지오 씨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장자연 증언자, 윤지오 초청 간담회'에서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②지역밀착형=여의도에선 별로 존재감이 없지만 지역구에선 확고부동한 입지를 굳힌 경우도 있다. 전국적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미디어 정치를 포기하는 대신 지역 표밭 다지기에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물론 유권자들에게 잘한다는 평판을 받으려면 오랫동안 물리적으로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한다.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종근 기자]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종근 기자]

지역구를 철저히 관리하기로 소문 난 민주당 박병석(5선, 대전 서갑) 의원은 “행여나 지역에서 다선이라서 거만해졌다는 말이 안 나오게 하는데 가장 신경을 쓴다”며 “매주 4일은 지역구에서 시간을 잡는다. 지난해 KTX 이용을 뽑아보니 300회”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지역 주민들의 발언은 무조건 챙겨 적는다. 그리고 결론이 나오면 반드시 회신을 준다”고 말했다. 박주선(4선, 광주 동을) 바른미래당 의원도 “모든 지역 민원에 결과를 통보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8~2016년 서울-광주간 비행기를 1070회나 탑승해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특별고객상을 받기도 했다.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 [조문규 기자]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 [조문규 기자]

정병국(5선, 경기 여주·양평) 바른미래당 의원은 생일을 맞은 지역당원에게는 꼭 ‘011’로 시작하는 2G폰으로 직접 전화해 축하 메시지를 전한다. 첫 선거때부터 당원들에게 알려진 번호라 바꾸지도 못한다고 한다. 하루에 열 통화가 넘을때도 있다. 전화를 걸기 전에 보좌진이 먼저 당사자의 애로사항이나 근황 등을 파악해서 정 의원이 통화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새누리당 소속으로 호남에서 당선된 정운천(전북 전주을)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역에서 당(黨)을 내세울 수 없으니 철저하게 밑바닥 민심을 잡는데 주력한다”며 “지역민들과 인사를 나누면 꼭 셀카를 찍어 저장해 얼굴과 이름을 각인한다. 대학에 가도 총장이나 교수보다는 환경미화원이나 경비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지역구 민원사업을 챙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함진규(2선, 경기 시흥갑) 한국당 의원은 지역 개발과 직결된 국토건설교통위원회만 7년째 맡고 있다. 함 의원이 여당세가 강한 시흥에 출마해 19·20대 총선에서 연거푸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강길부(4선, 울산 울주) 무소속 의원이 17대 열린우리당, 18대 무소속, 19대 새누리당, 20대 무소속 등 당을 바꿔가면서도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 탁월했기 때문이다. 강 의원 측은 “건교부 차관 출신으로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장을 맡으며 지역 사업을 적극 유치한 게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 [변선구 기자]

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 [변선구 기자]

안규백(3선, 서울 동대문갑) 민주당 의원도 수도권에서 지역구 관리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안 의원 측은 “팔도에서 사람들이 모여든 서울에선 어느 한쪽 편에만 잘 보여선 성공하기 어렵다. 중요한 건 진심”이라며 “야당 핵심당원의 민원까지 챙겨준다”고 말했다.

물론 유력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 사업에 예산을 과다하게 끌어당기는 건 경제적 관점에서 자원 분배를 왜곡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매번 국회 예산심의때 마다 지역구 민원과 관련한 ‘쪽지 예산’이 언론의 비판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호모 여의도쿠스’에게 그런 비판 기사는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지역구를 챙기는지를 보여주는 홍보자료가 된다.
여당의 한 다선 의원은 “연말에 예산안 처리가 끝나면 어느 실세가 지역구 예산을 얼마나 더 챙겼는지 따지는 비판기사가 나오는데 사실 당사자들은 그런 비판 기사가 가급적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과 안규백 의원(왼쪽)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과 안규백 의원(왼쪽)

③고공플레이형=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의원도 아니고, 지역 평판도 평범한데 고비때마다 살아남는 의원들이 있다. 바로 당 지도부가 필요로 하는 전략·정책통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원들은 개별 지역구 관리엔 소질이 없어도 선거 전략을 짜거나 공약을 개발하는데 능통하다.
민주당에선 비례대표 초선인 이철희 의원이 대표적 경우다. 이 의원은 내년 총선 출마 여부가 미정이지만 당에선 출마를 권유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 의원의 주가가 높은 건 그가 당내에서 손꼽히는 기획ㆍ전략통이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국회 입성하자마자 원내부대표ㆍ원내수석부대표ㆍ민주연구원부원장 등을 거치면서 전형적인 참모 코스를 밟았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현동 기자]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현동 기자]

2015년 6월 9일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황 후보자(왼쪽)가 청문회 속개를 기다리던 중 추경호 당시 국무조정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5년 6월 9일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황 후보자(왼쪽)가 청문회 속개를 기다리던 중 추경호 당시 국무조정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당에선 전략기획부총장을 맡고 있는 추경호 의원이 정책통의 표본이다. 기획재정부 1차관, 국무조정실장, 여의도연구원장 등을 거친 추 의원은 한국당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주요 정책에는 대부분 관여하고 있다. 특히 예산이나 세금과 관련해서는 국회에서 손꼽는 전문가로 통한다. 이런 전문성 때문에 추 의원은 홍준표 대표 시절에 이어 현 황교안 대표 체제에서도 계속 중책을 맡고 있다.

2017년 3월 15일 바른정당에 입당한 지상욱 의원이 입당식에서 유승민 의원과 포옹을 하고 있다. [뉴스1]

2017년 3월 15일 바른정당에 입당한 지상욱 의원이 입당식에서 유승민 의원과 포옹을 하고 있다. [뉴스1]

‘심은하의 남편’으로 유명해진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도 기획통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 정치인에 속한다. 유승민 의원의 ‘복심’으로도 통하는 그는 얼마 전 바른미래당을 뒤흔든 패스트트랙 파동 때도 바른정당계와 안철수계를 묶는 작업을 물밑에서 주도했다.
특별취재팀=유성운·현일훈·이근평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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