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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사귀지 마" 불같이 화내던 친구 엄마의 기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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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22)

응급실에 교통사고를 당한 어린 환자가 들어왔다. 환자의 상태를 본 부모는 오열했다. 그런데 부모가 자식 걱정에 예민했던 건지 안전요원의 통제 지시가 문제였던 건지, 안전요원에게 모욕적인 언사와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응급실에 교통사고를 당한 어린 환자가 들어왔다. 환자의 상태를 본 부모는 오열했다. 그런데 부모가 자식 걱정에 예민했던 건지 안전요원의 통제 지시가 문제였던 건지, 안전요원에게 모욕적인 언사와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중학생 때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즐거운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친구 어머님이 예상보다 일찍 집에 돌아오셨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같이 화를 냈다. 아무 친구나 사귀지 말라며 아들을 혼내고는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을 모두 쫓아냈다. 나는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혼자 그 집에 남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평생 둘이 친하게 지내라며 웃으며 말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아주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그가 어떻게 사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사실 그 친구와의 관계는 그날로 끝이 났었다. 문밖으로 밀려난 자존심, 죄의식과 면목 없음, 너무 이른 현실의 경험. 우리는 각자 다른 이유로 상처를 입었고 그것은 친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유리처럼 연약한 마음을 지닌 사춘기 소년들이었다.

얼마 전 일이다. 응급실에 교통사고 환자가 들어왔다. 어린 학생이었는데 상태가 심각했다. 지혈하고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부모는 그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이 손을 붙잡고 펑펑 울었다. 응급실에선 늘 있는 평범한 광경. 따라서 나는 급한 처치를 끝내고는 무심하게 돌아섰다. 사건은 그 이후 벌어졌다. 멀리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그 보호자가 삿대질하고 있었다.

"네가 의사야? 아무것도 아닌 새끼가. 네가 뭔데 우리보고 나가라고 해?"

안전요원 한 명이 욕을 먹고 있었다. 그는 맡은 업무를 수행 중이었다. 응급실은 감염 등의 이유로 보호자를 1인으로 통제한다. 보호자에게 한 명만 남고 나머지는 밖에서 대기해주길 요청했다. 자그마치 네 명이나 안에 들어와 있었으니까. 불행하게도 보호자는 통제 지시를 갑질로 받아들였다. 사무적인 말투가 문제였을까? 아이 걱정에 예민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중재가 필요했다.

"보호자분, 이러시면 저희가 치료에 전념할 수 없습니다. 통제에 따라 주십시오."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응급실에서 한 환자가 의료진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폭력적인 언행을 계속하자 보안 직원들이 대응하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응급실에서 한 환자가 의료진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폭력적인 언행을 계속하자 보안 직원들이 대응하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그는 못 이기는 척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나가는 내내 입은 쉬지 않았다. 심지어 문밖에서도 욕설을 계속했다. 숫제 인신 모욕이었다. 그 정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안전요원은 온몸으로 욕을 받아냈다. 옆에서 듣고만 있어도 미안할 지경이었다. 이제 겨우 이십 대 초반. 안전요원의 새파랗게 어린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 나는 가늘게 떨고 있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응급실에서 화내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갑자기 찾아온 불행은 사람을 쉽게 분노하게 한다. 거기에 태생적으로 부족한 응급실의 서비스가 더해지면 갈등은 필연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례함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자신의 불행을 타인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상대가 누구든지 표현은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대할 때는 더더욱. 사람들은 흔히 그 사실을 망각한다.

일단 상대가 낮다 싶으면 말이 짧아지고 언성이 높아진다. 레지던트나 인턴이라고 하면 진짜 의사를 데려오라고 한다. 그나마 의사는 낫다. 간호사는 노골적으로 업신여김받는다. 이년 저년은 흔한 호칭이고 툭하면 반말에 윽박이 일상이다. 더구나 상대가 여자면 하대는 극에 달한다. 아가씨란 호칭으로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의료진에게도 이럴지니 미화부 여사님이나 안전요원 같은 경우는 더 말해 무엇하랴?

"네깟 놈들이 감히"
"간호사 주제에"
"안전요원 따위가"

사회에서는 차마 쓰기 힘든 표현에도 거침이 없다. 인격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상대에게 온갖 수모를 안겨주고도 죄의식이 없다. "나는 지금 응급 상황이라 눈깔이 뒤집혔으니 건드리지 마시오"라는 말을 이마에 써 붙이고 있어서다. 그게 양심에 면죄부를 주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분노는 내 앞에 오면 사그라든다. 교수라는 명찰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전혀 달갑지 않은 현실이다.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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