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택 비과세 폐지’ 설문 돌연 삭제…증세 간보기 들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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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기획재정부가 5일부터 “1세대 1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유지해야 할까요?” 설문을 진행하다 11일 돌연 삭제해 논란이 일었다. 올해 1~4월 국세 수입이 지난해보다 5000억원 감소한 상황 등과 맞물려 야당에서는 “증세를 위한 사전 작업을 하다 급히 발을 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기재부 “실무자, 보고 없이 올려” #설문 응답자 91%가 “비과세 유지” #한국당 “증세 사전 작업 아니냐”

기재부가 진행한 설문은 지난 5일 정부의 국민참여 플랫폼인 국민권익위원회 ‘국민 생각함’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현행 제도는 1세대 1주택자가 매매가 9억원 이하 주택을 2년 이상 보유(투기과열지구는 2년 이상 실거주)할 경우 양도소득세를 면제해 준다. 기재부 설문은 이 정책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물었다.

기재부는 게시글을 통해 “①과도한 양도차익으로 무주택자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②다주택자는 양도세를 부과받는데 1주택자는 면제해 주는 게 조세형평성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있다”고 밝혔다. 현행 1세대 1주택 양도세 비과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설문에 들어간 것이다. 설문은 두 가지, 즉 “국민의 주거생활 안정을 위해 현행 양도소득세 체계를 유지할 것인지”와 “1세대 1주택자에 대한 비과세 체계를 전면 개편해 양도세를 부과할 것인지”를 나누어 진행했다.

설문 중간 결과는 326명의 참여자 가운데 298명(91.4%)이 현행 세법을 유지해야 한다(11일 기준)고 응답했다. 게시글 아래에는 “1주택자에게 양도세를 걷으면 아예 이사하지 말라는 거냐” “또 세금을 올리겠다는 거냐” 등 기재부의 이번 설문을 비판하는 댓글이 달렸다.

기재부는 11일 오후 해당 설문을 갑자기 중단하고 게시글을 삭제했다. 원래 12일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실무자가 상부 보고 없이 글을 올린 것이라 뒤늦게 확인 후 삭제를 지시했다. 파장이 클 수 있는 데다 내용 역시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며 “상부에서 큰 질책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실제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 향후 검토 계획도 없다”며 “해프닝성 사건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재부가 설문을 삭제한 뒤에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는 설문 캡처본이 떠돌며 기재부를 비판하는 의견이 잇따랐다.

이와 관련, 국회 기재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추경호 의원은 “재정만능주의에 빠진 현 정부가 총선 이후에는 본격적인 증세 움직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며 “현 정부가 포퓰리즘 정책에 중독돼 세금을 마구 뿌려대다 보니 착실하게 돈을 모아 간신히 집 한 채를 마련한 서민·중산층에게도 이젠 세금을 거두려는 것”이라고 했다.

기재부의 월간 재정동향 6월호에 따르면 실제 올해 1~4월 국세 수입은 109조4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5000억원 감소하는 등 세수확보에 적신호가 켜졌다. 또 다른 기재위 한국당 관계자는 “일주일가량 설문을 진행하다 온라인 등에서 반발 여론이 높아지자 허겁지겁 설문을 중단하고는, 뒤늦게 실무자 잘못으로 몰아가는 게 지난해 말 신재민 전 사무관 사건과 판박이”라며 “끈끈하면서도 엘리트 의식이 강했던 기재부가 언제부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조직으로 전락했는지 안타깝다”고 전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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